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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샤 기트리
다른 표기 언어 Sacha Guitry 동의어 알렉상드르-피에르 조르주 기트리, Alexandre-Pierre Georges Guitry, 기트리출생 | 1885년 2월 21일 러시아 상트 페테르부르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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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망 | 1957년 7월 24일 프랑스 파리 |
본명 | 알렉상드르-조지 피에르 기트리(Alexandre-Georges Pierre Guitry) |
수상 | 1937년 베니스국제영화제 외국어 각본상(<왕관의 진주>) |
데뷔 | 1935년 <파스퇴르>(Pasteur, 프랑스) |
요약 사샤 기트리는 30여 년 동안의 영화감독 이력동안 왕성한 창작활동을 보여준 프랑스 고전기의 거장이다. 출중한 표현 능력을 지닌 배우이자 재미있고 지적인 코미디를 생산해내는 작가였을 뿐 아니라 연극연출가로도 큰 족적을 남겼다.
생애와 이력
러시아 제국(현 러시아) 출신의 프랑스 영화감독, 연극연출가, 작가, 배우. 1885년 2월 21일 러시아 상트 페테르부르그(St. Petersburg)에서 태어났다. 본명은 알렉상드르-조지 피에르 기트리(Alexandre-Georges Pierre Guitry). 아버지 뤼시앙 기트리(Lucien Guitry)는 1930년대 프랑스에서 극작가 겸 무대 배우로 활동하면서 최고의 위치에 올랐던 위대한 배우였다. 반항적인 학생이었던 사샤 기트리는 1894년 파리의 잰슨데새일리고등학교(Lycee Jeanson de Sailly)에 입학한 뒤 1902년까지 무려 12개의 학교를 전전하였다. 학교 보다 아버지의 아파트에 모여들었던 파리의 문화, 예술계 인사들에게 더 많은 것을 배웠던 그는 열일곱 살 때 첫 희곡을 썼고, 1904년 아버지 뤼시앙 기트리와 함께 배우로 데뷔했다.
1905년 기트리는 단막극 「Le K.W.T.Z」와 「노노(」Nono)의 대본을 쓰면서 극작가로서 본격적인 행보를 시작하였다. 다음 해부터 그는 정신적이고, 신랄한 코미디 작품들을 통해 엄청난 인기를 끌었다. 1907년 기트리는 자신이 쓴 연극 「Chez les Zoaques」에서 연기를 하기 위해 무대로 돌아갔고, 이후에 쓴 후속작들 대부분에서 배우로도 활약했다. 자작 희극을 직접 연출하면서 ‘연극의 귀신’이라는 별칭이 붙었을 정도로 명성을 누렸던 기트리는 각본가로 영화에도 참여하기 시작했다.
사샤 기트리가 만든 첫 번째 영화는 오귀스트 르누아르(Auguste Renoir)나 오귀스트 로댕(Auguste Rodin) 같은 프랑스 예술가들의 작품을 소재로 한 다큐멘터리 영화 <우리들 안의 그들>(Ceux de chez nous, 1915)이었다. 1918년 사샤 기트리는 르네 헤르빌(Rene Hervil), 루이 메르샹똥(Louis Mercanton)이 연출한 영화 <사랑과 모험의 소설>(Un roman d'amour et d'aventures)의 시나리오를 썼고, 배우로도 참여했다.
작품 세계
<사랑과 모험의 소설>에서의 경험이 좋지 않았던 기트리는 영화계를 떠났다가 1935년 프랑스의 화학자이자 미생물학자인 루이 파스퇴르(Louis Pasteur)의 생애를 다룬 전기영화 <파스퇴르>(Pasteur, 1935)를 통해 감독 겸 배우로 복귀하였다. 이 영화는 사샤 기트리의 실질적인 극영화 데뷔작이었다. 1919년 썼던 희곡에 기초한 이 영화는 상업적으로 실패하였지만, 촬영을 하는 동안 기트리는 영화를 제작하는 과정의 즐거움에 매료되었다.
1930년대 중반부터 기트리는 연극계와 영화계를 오가며 왕성한 창작활동을 보여주었다. 1936년에만 4편의 영화를 연출하였는데, 그 중 <꿈을 꾸다>(Faisons un reve..., 1936)와 <아버지가 옳았다>(Mon pere avait raison, 1936)는 1916년과 1919년에 각각 써두었던 희곡을 시나리오로 각색하여 만든 작품이었다. 가벼운 소극풍의 <꿈을 꾸다>는 부르주아들의 위선적인 태도와 허위적인 결혼관을 풍자하는 코미디였다.
1930년대 중반 사샤 기트리는 자신의 명성을 확고히 해주는 두 편의 최고작을 발표하였다. <어느 사기꾼의 이야기>(Le roman d'un tricheur, 1936)와 <왕관의 진주>(Les perles de la couronne, 1937)가 그것이다. 1934년 자신이 썼던 소설을 각색한 <어느 사기꾼의 이야기>는 부정의 대가에 관한 면도칼처럼 날카로운 논평을 담고 있는 작품이다. 영화는 거짓말에 대한 처벌로 저녁을 굶게 된 한 소년이 사기꾼으로 변모하게 된 연원을 보여준다. 모든 가족들이 독버섯이 든 음식을 먹고 사망한 와중에 저녁을 먹지 못한 소년은 살아남는다. 자신이 저지른 잘못에 의해 살아남게 되는 아이러니의 세계에서 사기꾼이 되기로 결심한 소년은 20년 동안 각종 수법을 통해 부유해진다. 가장 혁신적인 기트리의 영화로 거론되는 이 영화는 미국에서도 크게 성공하였다.
크리스티앙-자크(Christian-Jacque)와 공동으로 연출한 <왕관의 진주>는 야심적인 판타지 역사극이었다. 화려한 캐스팅과 많은 제작비를 쓴 이 영화에서 기트리는 실제 사건과 사람들을 이용하여 트릭을 써서 실험적인 연출을 보여주기도 했다. 이듬해에는 <왕관의 진주>의 성공에 힘입어 이와 유사한 스타일의 <샹젤리제를 오르다>(Remontons les Champs-Elysees, 1938)를 발표하기도 했다. 2차 세계대전 기간에도 기트리는 서사극 <데지레 클레리의 믿기 힘든 운명>(Le destin fabuleux de Desiree Clary, 1942), 감상적인 멜로드라마 <나의 마지막 정부>(Donne-Moi Tes Yeux, 1943), 전기영화 <말리브란>(La Malibran, 1944)을 연출하면서 활동을 멈추지 않았다. 이 기간 동안 그는 종종 점령군들과 왕래하면서 관계를 쌓았는데, 이로 인해 해방 이후 강력한 비난에 시달렸을 뿐 아니라 나치 부역 협의로 체포되었다.
두 달 후 풀려나기는 했지만, 좀체 명예회복을 하지 못하다가 1947년 마침내 비난의 시선으로부터 자유로워졌다. 그러나 과거의 명성에는 치명적인 흠집이 난 이후였고 그는 나치추종자라는 낙인을 벗어버리기 위해 시나리오를 썼다. 나폴레옹을 정계로 이끈 역사적 인물이었던 샤를-모리스 드 탈레랑-페리고(Charles-Maurice de Talleyrand-Perigord)에 관한 이야기였는데, 기트리는 탈레랑의 일생을 통해 전쟁통에서도 활동을 지속했던 자신의 경력을 합리화하려 했다. 그러나 시나리오가 정부로부터 거부당하면서 영화화가 여의치 않자 이를 희곡으로 각색하여 무대에 올렸다. 평자들은 “자기 합리화에 몰두한다”며 그를 비난하였지만 연극은 성공을 거두었고, 1948년 이 이야기는 <절름발이 악마>(Le diable boiteuxl)라는 영화로 만들어졌다. 이 영화에 묘사된 탈레랑의 삶은 기트리에게 중요한 지침이 되었는데, 이는 후기작인 <나폴레옹>(Napoleon, 1955)을 통해서도 드러난다. <나폴레옹>은 나폴레옹의 사망 소식을 들은 탈레랑이 들려주는 나폴레옹의 인생이야기였다.
종전 직후 사샤 기트리의 작품은 이전에 비해 활력을 잃었다는 평가가 지배적이었다. 그러나 신랄한 유머감각을 보여주는 <라 쁘아종>(La poison, 1951) 같은 영화는 당대에는 부정적인 평가를 받았지만 오늘날에는 그의 최고작 중 하나로 거론되기도 한다. <베르사이유에 대해 말한다면...>(Si Versailles m'etait conte, 1954)은 침체기를 벗어날 수 있는 거대한 상업적 성공을 거둔 대작 판타지였다. 그러나 그 즈음 기트리의 건강은 악화되어가고 있었고, 그는 1953년을 끝으로 연극 무대를 떠났다. 상황은 좋지 않았지만 <베르사이유에 대해 말한다면...>의 성공을 이어가기 위해 그는 <나폴레옹>과 <파리 이야기를 우리에게 해준다면>(Si Paris nous etait conte, 1956)을 연달아 만들었다. 마지막까지 기트리는 앙리-조르주 클루조(Henri-George Clouzot)와 마르셀 아샤르(Marcel Achard)를 프로듀서로 고용하여 이력의 마지막에 해당하는 <살인자와 도둑>(Assassins et voleurs, 1957), <셋이 한 쌍을 만들다>(Les Trois font la paire, 1957)를 연출하였다. 이들 영화를 끝으로 1957년 7월 24일 일흔두 살의 나이에 프랑스 파리에서 사망하여 몽마르트(Montmatre) 묘지에 묻혔다.
영화사적 평가
사샤 기트리는 30여 년 동안의 영화감독 이력동안 왕성한 창작활동을 보여준 프랑스 고전기의 거장이다. 출중한 표현 능력을 지닌 배우이자 재미있고 지적인 코미디를 생산해내는 작가였을 뿐 아니라 연극연출가로도 큰 족적을 남겼다. 120편 이상의 희곡을 썼고, 이들을 각색하여 영화로 만들기도 했다. 프랑스에서 만든 그의 작품들은 낙천적이었고, 기지와 해학이 넘쳤다. 폐부를 찌르는 대사와 거침없는 풍자, 논쟁을 불러일으킬만한 묘사는 당대 표현 범례들의 수위를 넘어섰다.
영감을 요리하는 천부적인 재능의 소유자였기 때문에 사샤 기트리의 몇몇 영화들은 열흘 전후한 제작기간 동안 신속하게 완성되기도 했다. 프랑스 영화감독 장-뤽 고다르(Jean-Luc Godard)는 영화비평가로 활동하던 시절 사샤 기트리의 영화를 열렬히 지지했고, 고다르의 동료이자 영화감독인 프랑수아 트뤼포(Francois Truffaut)는 “프랑스의 에른스트 루비치(Ernst Lubitsch)”라고 그를 평가하기도 했다.
작품 목록
<우리들 안의 그들>(Ceux de chez nous, 프랑스, 1915, 다큐멘터리)
<사랑과 모험의 소설>(Un roman d’amour et d’aventures, 프랑스, 1918, 각본)
<예지자>(La voyante, The Clairvoyant, 프랑스, 1924, 각본)
<카밀의 연인>(The Lover of Camille, 미국, 1924, 각본)
<슬리핑 파트너스>(Sleeping Partners, 미국, 1930, 각본)
<블랙 앤 화이트>(Le blanc et le noir, Black and White, 프랑스, 1931, 각본)
<파스퇴르>(Pasteur, 프랑스, 1935)
<굿 럭>(Bonne chance!, Good Luck, 프랑스, 1935)
<회복된 두 사람>(Les deux couverts, 프랑스, 1935, 단편, 각본)
<코미디-프랑스의 밤>(Un soir a la Comedie-Francaise, 프랑스, 1935, 다큐멘터리, 각본)
<꿈을 꾸다>(Faisons un reve..., Let’s Have a Dream, 프랑스, 1936)
<아버지가 옳았다>(Mon pere avait raison, 프랑스, 1936)
<어느 사기꾼의 이야기>(Le roman d’un tricheur, Confessions of a Cheat, 프랑스, 1936)
<무례>(Le nouveau testament, Indiscretions, 프랑스, 1936)
<왕관의 진주>(Les perles de la couronne, The Pearls of the Crown, 프랑스, 1937)
<캠브론의 말>(Le mot de Cambronne, 프랑스, 1937, 단편)
<욕망>(Desire, 프랑스, 1937)
<샹젤리제를 오르다>(Remontons les Champs-Elysees, 프랑스, 1938)
<매달린 심장>(L’accroche-coeur, 프랑스, 1938, 각본)
<매매용 빌라>(Villa for Sale, 영국, 1938, TV 단편, 각본)
<제곱>(Quadrille, 프랑스, 1938)
<아홉 명의 미혼남>(Ils etaient neuf celibataires, Nine Bachelors, 프랑스, 1939)
<럭키 파트너스>(Lucky Partners, 미국, 1940, 각본)
<데지레 클레리의 믿기 힘든 운명>(Le destin fabuleux de Desiree Clary, Mlle. Desiree, 프랑스, 1942)
<1907년 6월 21일의 행동>(La loi du 21 juin 1907, 프랑스, 1942, 단편)
<나의 마지막 정부>(Donne-Moi Tes Yeux, My Last Mistress, 프랑스, 1943)
<말리브란>(La Malibran, 프랑스, 1944)
<필립 페탄의 잔 다르크>(De Jeanne d’Arc a Philippe Petain, 프랑스, 1944, 다큐멘터리)
<코미디언>(Le comedien, The Private Life of an Actor, 1948)
<절름발이 악마>(Le diable boiteux, The Lame Devil, 프랑스, 1948)
<비둘기 두 마리와>(Aux deux colombes, 프랑스, 1949)
<법정>(Toa, 프랑스, 1949)
<캉트냑의 보물>(Le tresor de Cantenac, The Treasure of Cantenac, 프랑스, 1950)
<당신은 나의 은인>(Tu m’as sauve la vie, 프랑스, 1950)
<라 쁘아종>(La poison, Poison, 프랑스, 1951)
<데부라우>(Deburau, 프랑스, 1951)
<아드히마르와 치명적 장난감>(Adhemar ou le jouet de la fatalite, 프랑스, 1951, 각본)
<나는 그걸 세 번 했어>(Je l’ai ete trois fois, I Did It Three Times, 프랑스, 1952)
<어느 정직한 사람의 생>(La vie d’un honnete homme, The Virtuous Scoundrel, 프랑스, 1953)
<베르사이유에 대해 말한다면....>(Si Versailles m’etait conte, Affairs in Versailles, 이탈리아/프랑스, 1954)
<듣지 마세요, 숙녀!>(Nicht zuhoren, meine Damen!, 독일, 1954, TV 영화, 각본)
<나폴레옹>(Napoleon, 이탈리아/프랑스, 1955)
<파리 이야기를 우리에게 해준다면>(Si Paris nous etait conte, If Paris Were Told to Us, 프랑스, 1956)
<살인자와 도둑>(Assassins et voleurs, Murderers and Thieves, 프랑스, 1957)
<셋이 한 쌍을 만들다>(Les Trois font la paire, Three Make a Pair, 프랑스, 19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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