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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작품 속 여성 노동자
동양과 서양을 모두 살펴보아도 19세기까지 노동자의 삶을 묘사한 그림은 그리 많지 않았다. 아무래도 미술을 비롯하여 음악, 문학 등이 귀족 출신의 상류층이나 시민계급, 지식인들의 전유물이었던 사정과 연관이 깊다. 특히 신분제도가 유지되던 시절에 미술은 왕족이나 귀족의 모습, 혹은 신화 속의 일화를 그림의 소재로 삼았다. 농노의 삶은 예술의 소재가 될 수 없었다. 그나마 시민혁명 이후 신분제가 사라지면서 조금씩 하층민의 삶이 캔버스에 담기기 시작했다. 인상파에 의해 미술이 화실 작업에서 야외 작업으로 바뀌면서 밀레의 작품처럼 농부의 모습이 캔버스에 등장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여전히 도시 노동자들을 그린 작품들은 적었다. 그중에서도 여성 노동자들의 삶을 묘사한 경우는 더욱 드물었다.
19세기 대표적인 여성 노동은 세탁 공장에서의 빨래와 다림질이었다. 토지를 잃고 도시로 떠밀려 온 수많은 농부들이 할 수 있는 일은 공장에서의 육체노동뿐이었다. 그나마도 대부분 남성들이 차지하고 있어, 가난하고 배우지 못한 여성들이 일할 수 있는 곳은 드물었다. 그녀들에게 세탁 공장의 노동은 적은 돈이라도 만질 수 있는 기회였다. 당시 몇몇 화가들은 종종 세탁부의 모습을 캔버스에 담았다. 드가의 〈다림질하는 여인〉도 그중 하나이다. 우리에게 드가는 우아한 발레리나의 모습이나 목욕하는 여인을 그린 화가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그는 일상의 노동에 찌들어 사는 가난한 여성 노동자들의 삶도 외면하지 않고 작품에 담았다. 세탁부의 노동을 그린 작품이 14점이나 되는 것은 드가가 그녀들의 삶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었음을 보여 준다.
〈다림질하는 여인〉은 여성 세탁부를 다룬 14점의 연작 중 하나이다. 오른쪽 여성은 다림질을 하고 있다. 주름을 펴고 있는 중인지 두 손을 모아 다리미를 힘껏 눌러 가며 식탁보나 침대 시트로 보이는 옷감을 다리고 있다. 깊숙하게 숙인 고개에서 고단함이 뚝뚝 묻어난다. 그녀의 어깨와 팔에서는 팽팽한 긴장감이 느껴진다. 왼쪽의 여인은 피곤에 지쳤는지 졸린 눈으로 크게 입을 벌리고 하품을 하고 있다. 앞에 세탁물과 다리미 대신 작은 물통이 있는 것으로 보아 다림질을 할 때 옆에서 물을 뿌려 주는 보조 역할을 하고 있는 것 같다. 그녀의 한쪽 손에는 병이 들려 있는데 병 속의 액체는 피곤을 쫓기 위한 포도주로 보인다. 다림질을 하고 있는 오른쪽 여성이 풍기는 긴장감과는 다르게 하품을 하고 있는 모습에서 이완된 분위기를 느낄 수 있도록 재미있는 대조를 보여 주고 있다.
두 여인의 뒤편으로 난로가 흉물처럼 서 있다. 세탁 일을 위해서는 항상 뜨거운 물이 준비되어 있어야 하고 다리미의 열기를 위해서도 계절을 가리지 않고 난로가 필요했다. 겨울이야 그렇다고 해도 가뜩이나 더운 여름에는 그녀들에게 난로가 괴물처럼 느껴졌을 것이다. 그런 느낌을 상상하면 다림질의 열기와 수증기로 후끈거리는 세탁소 안의 분위기가 더 실감나게 다가온다. 그래서인지 후덥지근한 실내에서 일하느라 옷도 대충 걸치고 화장은 신경조차 쓰지 못한 모습이 역력하다.
생동감이 주는 감동
이 그림에서는 드가의 특색을 뚜렷하게 발견할 수 있다. 그의 그림은 대체로 순간적인 움직임을 포착해 우리에게 그대로 보여 준다. 특히 발레리나의 모습을 담은 수많은 작품에서 순간 동작의 특징이 더욱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그림을 감상하는 사람이 마치 그 장소에 있는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킬 정도로 현실감이 살아난다. 〈무용 수업〉 〈무대 위의 무희〉 〈리허설〉 등의 작품을 보면 무희들의 역동적인 동작이 너무나 생생해서 춤 동작에 열중하고 있는 소녀들의 거친 숨소리가 전해져 오는 느낌이다. 통 속에 앉아서 목욕을 하고 있는 여인을 그린 〈목욕하는 여인〉도 순간적인 동작이 주는 생생함 때문에 마치 우리가 옆에서 여인의 몸을 훔쳐보는 듯한 느낌을 갖게 한다.
〈다림질하는 여인〉도 마찬가지다. 오른쪽의 여성처럼 그냥 다림질하는 모습만 있었다면 정지된 화면이 주는 고정적인 느낌에서 벗어나지 못했을 것이다. 하품을 하고 있는 여인의 표정과 몸짓이 극적으로 그림에 생동감을 불어넣고 있다. 그녀의 길게 늘어진 하품 소리가 가깝게 들릴 듯하다. 실내에 가득한 습기와 열기로 후덥지근한 세탁장 안에 함께 있어서 숨이 턱 막히고 우리 몸에도 땀이 날 것만 같다. 물론 생동감은 현장성을 중시한 대부분의 인상파 미술가들에게서 공통적으로 나타난다. 하지만 당대의 화가들 중에서도 드가는 현장성과 생동감이라는 면에서 누구와도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탁월한 연출력을 보여 준다. 미술을 통한 연출력이 다분히 의도한 결과임을 드가가 친구에게 들려준 다음의 이야기를 통해 알 수 있다.
“젊은 여인들을 그리는 이유는 피조물로서 한 인간이 그 자신에게 집착하는 모습을 보여 주기 위해서이네. 마치 고양이가 제 몸을 핥아서 닦는 것에 비유할 수 있을까? 누드화는 항상 관객의 시선을 염두에 두었지만 내가 그린 여인들은 정직하고 소박한 자신의 신체적 상황 외에는 전혀 다른 관심이 없는 사람들이라네. 이는 마치 열쇠 구멍을 통해서 몰래 바라보는 것과 같다고 할 수 있네.”
같은 소재로 그린 다른 그림과 비교해 보면 드가의 특징이 더욱 잘 살아난다. 피카소의 〈다림질하는 여인〉도 세탁부의 고단함을 보여 주는 대표적인 그림 중 하나로 이른바 피카소의 청색시대(The Blue Period, 1901~1904)를 상징하는 작품이다. 이 시기 피카소는 청색을 주로 사용해 노동자를 비롯한 하층계급에 속하는 사람들의 생활 참상과 고독감을 표현했다. 당시 피카소는 낯선 파리에서의 생활을 시작하던 때였는데, 거처할 곳이 없어 몽마르트르 언덕에 사는 친구의 방에 더부살이를 할 정도로 가난했다. 그래서 가난한 사람들의 어려운 삶에 더 공감을 했고 그들을 캔버스에 자주 등장시켰다.
피카소의 작품은 드가의 것과 같은 소재, 같은 제목이지만 사뭇 다른 분위기를 풍긴다. 물론 드가의 그림과 마찬가지로 다림질을 하고 있는 여성이 피곤에 절어 있음을 알 수 있다. 눈이 전체적으로 검게 묘사되어 있어서 피곤함의 정도를 더해 주고 있다. 그림 속 여인은 밤을 새워 똑같은 동작을 되풀이했을 것이다. 두 손으로 다리미를 쥐고 세탁물을 다리고 있는 모습이 힘겨워 보인다. 세탁장의 칙칙한 분위기도 비슷하다. 하지만 드가처럼 그 장소에 우리가 함께 있는 느낌은 아니다. 캔버스 속의 장면이 일정하게 대상화되어 있고 감상자의 눈으로 작품에 접근하도록 하고 있다. 어떤 면에서는 석고상을 바라보는 듯한 느낌을 준다.
에밀 졸라의 《목로주점》
드가의 〈다림질하는 여인〉을 비롯해서 당시 세탁부의 노동을 묘사한 많은 화가들의 그림은 다분히 에밀졸라(Emile Zola)의 대표적인 소설이라고 할 수 있는 《목로주점》에서 큰 영감을 얻었다고 한다. 1877년, 이 소설이 발표되자 뜨거운 논란과 함께 수많은 사람들의 관심의 대상이 되었다. 당시에 매년 3~5만 부 정도씩 팔렸다고 하니 얼마나 폭발적인 관심을 불러일으켰는지 알 수 있다. 이 소설은 에밀 졸라를 자연주의 소설의 기수로 만들어 주기도 했다.
《목로주점》에는 찬사와 함께 비난도 쏟아졌다. 비판하는 이들은 “노동자 계급의 참상을 그려 노동자를 비하하고 중상하는 것”이라거나 “사회의 욕된 면과 저열한 면만을 극히 일방적 · 일반적으로 폭로하고 있는 비관적이고 무정부주의적인 작품”이라며 경멸을 했다. 이 작품에 대해 에밀 졸라는 어느 편지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노동자 계급을 그린 내 그림은 특별한 음영이나 바람도 시도하지 않고 그리고 싶은 대로 내가 그린 것입니다. 나는 내가 본 것을 말로 표현할 뿐입니다. 나는 상류층의 상처를 발가벗겼습니다. 하층민의 상처도 결코 은폐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목로주점》은 세탁 공장에서 일하는 주인공의 삶을 사실적으로 묘사함으로서 세탁 일을 하는 여성 노동자들의 고단한 삶을 생생하게 보여 준다. 소설에서 세탁 공장의 노동을 묘사한 다음 대목은 다림질하는 여인들의 모습을 스케치하듯 우리에게 보여 준다. 드가의 그림을 그대로 설명하고 있는 듯하다.
클레망스는 서른다섯 장 째의 남자 셔츠에 줄을 대고 난 참이었다. 일거리는 넘칠 정도였다. 서둘러 해도 11시까지는 밤일을 해야 할 참이었다. 그야말로 작업장 전체가 한눈 하나 안 팔고 열심히 거세게 다리미질을 해댔다. 다리미 난로엔 또다시 코크스를 퍼 넣었다. 천장에 스커트와 식탁보가 널려 있어 숨이 막힐 지경으로 답답했다. 이 때문에 사팔뜨기 오귀스틴느는 침이 마르는지 혀끝을 입술 끝에 내밀고 있었다. 과열된 스토브와 쉰내 나는 풀, 다리미의 녹내가 목욕탕같이 후덥지근하게 무미한 냄새를 만들어 내는 한편, 열심히 일에 취해 있는 네 여자의 머리와 땀에 밴 목덜미에서 한결 더 강한 냄새가 섞여 나왔다.
당시 유럽은 우리가 흔히 야경국가라고 부르는 상태 그대로였다. 국가는 도둑 잡는 일이나 하고 시장과 공장의 운영에 대해서는 어떤 간섭도 하지 않던 시절이었다. 기업의 이윤 획득에 어떠한 제한도 없는 상황에서 노동자들의 삶은 갈수록 처참해져 갔다. 임금은 날이 갈수록 줄어들었다. 기업가가 가장 손쉽게 이윤을 확대할 수 있는 방법이 임금을 내리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남성들의 노동으로 살림을 유지하다가 임금이 계속 내려가게 되면 이미 온갖 집안 일로 시달리고 있던 여성들도 공장에서 일을 해야 입을 풀칠을 할 수 있게 되었다. 기업의 입장에서 여성 노동은 남성 노동에 비해 훨씬 싼값으로 이용할 수 있다는 장점도 있었다.
기업이 이윤을 손쉽게 확대하는 또 하나의 방법은 노동시간을 늘리는 것이다. 지금처럼 노동시간을 제한하는 법도 없는 상태여서 무한정 장시간 노동이 이어졌다. 위의 소설 내용에도 언급되었듯이 새벽부터 시작해서 밤 11시까지든 12시까지든 시키는 대로 일을 해야 했다. 그림에서 보이는 지칠 대로 지친 여성 노동자들은 우연한 것이 아니라 매일 반복되는 일상적인 모습이었다.
문제는 여기에서 끝나지 않았다. 한동안은 그렇게 생계를 유지하다가 계속 임금이 내려가면 급기야 철부지 아이들까지 공장 일을 해야 하는 상황을 맞이하게 되었다. 당시 유럽에서는 아동노동이 일상적인 현상이었다. 7~8세 정도만 되면 공장에서 일을 하는 경우가 많았다. 심지어 당시 영국의 관청에서 조사한 보고서에 의하면 아이들이 도망가지 못하도록 발을 쇠사슬로 묶어 놓기도 했고, 심지어 채찍질도 다반사였다고 한다.
예술 작품은 종종 현실을 있는 그대로 묘사하는 것만으로도 사회에 대한 비판적인 힘으로 작용하곤 한다. 그래서인지 시대를 막론하고 지배층은 노동자나 농민의 고단한 삶을 사실적으로 묘사하는 그림을 경멸해 왔다. 마치 자신의 치부가 드러나기라도 하는 것처럼 격렬하게 비난을 쏟아냈다. 우리는 어떤가? 지금 한국 사회에서 미술이나 문학은 노동자나 농민, 빈민과 같은 가난한 사람들에게 얼마나 관심을 갖고 있을까? 작가 자신의 내면에만 갇혀서, 혹은 우아하고 세련된 문체를 구사하는 테크닉에 갇혀서 우리 주변에서 일어나고 있는 고통에 대해서는 눈을 감고 있는 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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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 에드가 드가(Edgar Degas, 1834~1917년)
프랑스 상류 가문의 장남으로 태어나, 가업을 이어 가리라고 믿던 아버지의 기대를 저버리고 화가의 길로 들어섰다. 1873년, 세잔 · 모네 · 피사로 등의 인상파 화가들과 인상파 전시회에 참여한다. 그는 흙과 브론즈를 조각했던 조각가이기도 했으며, 감성이 풍부한 시인이기도 했고, 사진작가로도 활발한 활동을 보여 주었다. 대표작으로는 〈압생트를 마시는 사람〉 〈무대 위의 발레 연습〉 〈목욕통〉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