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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꿈을 읽는 기계
Dream Recorder“안녕하세요, 피지 섬 예약하셨죠?”
여기는 텔레미팅센터. 직원이 캡슐처럼 생긴 침대로 안내한다. 눈을 감자 기계가 가볍게 진동하더니 눈앞에 아름다운 해변이 펼쳐진다. 곁에는 미국에서 어학연수 중인 여자 친구가 있었다. 우리는 손을 잡고 나란히 해변을 거닐었다. 한 시간의 짧은 만남이었지만 잊지 못할 달콤한 시간이었다. 다음에는 함께 스카이다이빙을 해볼 생각이다.
공상과학(SF) 영화를 좋아하는 독자라면 쉽게 영화 ‘매트릭스’, ‘써로게이트’, ‘아바타’ 속 장면을 떠올렸을 것이다. 이제는 이런 이야기를 그저 영화라고만 생각해서는 안 된다. 뇌공학자들은 이미 영화의 상상력을 현실로 만들고 있다. 가장 먼저 필요한 건 사람의 생각을 뇌에서 읽어내는 기술이다. 그리고 이 생각을 기록하고, 다시 꺼낼 수 있는 이른바 ‘드림레코더’다.
뇌공학자, 언제부터 ‘드림레코더’를 꿈꿨나?
기계로 사람의 생각을 읽는다는 개념은 이미 100여 년 전에 소개됐다. 1919년 미국의 지방신문인 ‘시러큐스 헤럴드’에 ‘이 기계는 당신의 모든 생각을 기록한다’라는 제목의 기사가 실렸다. 기사에는 한 남자가 머리에 전극이 달린 밴드를 착용하고, 이를 갈바노미터(전류의 크기에 따라 바늘이 좌우로 움직이는 장치)와 연결해 뇌파(뇌에서 발생하는 전기 신호)를 측정하는 사진이 달려 있다.
아이디어는 간단하다. 생각에 따라 반응하는 뇌세포의 종류와 반응이 다를 것이기 때문에 뇌파를 측정하면 그 사람이 어떤 생각을 하는지 역추적 할 수 있을 것이다. 컴퓨터 없이 종이테이프에 직접 뇌파를 기록한다는 점을 제외하면 현재 뇌공학자가 쓰고 있는 방법과 크게 다르지 않다. 하지만 실제로 뇌파는 사람의 생각이나 꿈을 읽어낼 만큼의 높은 정확도를 가지지 않는다. 두개골은 전류를 잘 흘리지 못하기 때문에 머리 표면에서는 전기신호의 크기가 감소한다. 게다가 뇌파에는 뇌의 여러 부위에서 발생한 신호가 뒤섞여 있기 때문에 특정한 부위의 활동만 분리해서 측정할 수 없다는 것도 문제다.
드림레코더, 지금은 어디까지 왔나?
최근 마이크로 공정 기술이 급격히 발전하며 과학자들은 머리카락보다 가는 바늘 모양의 전극을 제작할 수 있게 됐다. 이 미세바늘을 대뇌의 피질 표면에 살짝 찔러 넣으면 개별 신경세포가 만들어 내는 뇌의 전기신호를 측정할 수 있다. 실제로 2004년 미국에서는 이 방법으로 ‘브레인게이트’라는 뇌-컴퓨터 접속 장치를 만들었다. 96개의 미세바늘을 이식한 사지마비 환자가 생각만으로 텔레비전 채널을 바꾸거나 웹서핑을 즐기는 모습이 공개돼 큰 호응을 받았다. 2012년에는 같은 연구팀에서 개발한 ‘브레인게이트2’라는 장치를 이용해 사지마비 환자가 생각만으로 로봇팔을 조작하는데 성공하기도 했다.
생각과 의도를 읽는 기술은 반대로 뇌에 생각을 넣는 데 쓸 수도 있다. 외부에서 뇌의 특정부분에 전류를 흘려 자극하기만 하면 된다. 1999년 미국 UC버클리의 양 단 교수팀이 미세바늘로 고양이의 시각중추인 측면슬상핵 표면을 자극하자 고양이는 특정 영상을 보고 있다고 인식했다. 심지어 연구팀은 고양이가 보고 있는 영상을 읽어 컴퓨터 모니터에 보여주기도 했다. 생각을 영상으로 녹화할 수 있는 가능성이 열린 것이다. 최근에는 전류를 흘리지 않고 신경세포에 빛을 쪼여 뇌 활동을 조절할 수 있는 광유전학 기술이 개발돼 뇌과학자들을 흥분시키고 있다.
영화 매트릭스에서 사람들은 가상현실에 접속할 때 머리 뒷부분에 기다랗게 생긴 금속 막대를 꽂는다. 이것의 정체를 미세바늘 다발로 생각하면 좋을 것이다. 뇌의 모든 부분에 이런 미세바늘을 꽂고 전기신호를 컴퓨터로 전달하면, 모든 뇌 활동을 읽어낼 수 있다. 각 바늘에 전류를 흘려 실제와 같은 감각을 느끼게 하는 것도 이론적으로 불가능한 일은 아니다.
하지만 살아 있는 사람의 뇌에 미세바늘을 이식하는 것은 너무나 위험한 수술이다. 게다가 뇌 표면은 주름이 많이 잡혀 있어 각 신경세포마다 바늘을 꽂는 것은 현재 기술로는 불가능하다. 그래서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는 기술이 바로 스타킹처럼 얇고, 잘 늘어나며, 잘 휘어지는 전극 막을 만들어 주름진 뇌 표면에 붙이는 방법이다. 실제로 미국 일리노이주립대 존 로저스 교수팀은 2011년에 이렇게 만든 전극 막을 쥐의 뇌에 붙여 신호를 읽어내는데 성공했다.
MRI로 꿈을 읽는다?
영화 ‘써로게이트’나 ‘아바타’에서는 주인공들이 뇌에 어떤 기구를 넣지 않고서도 자신의 아바타를 조종하는 장면이 등장한다. 현실에서도 바늘을 이식하지 않고 직접 사람의 생각이나 시각 정보를 얻으려는 시도가 있다. 한 가지 방법은 뇌의 활동을 영상화하는 기술인 기능적 자기공명영상(fMRI)을 이용하는 것이다. 바늘을 이용하는 방법보다 영상의 해상도는 많이 떨어지지만 분명 머리 외부에서도 뇌 활동을 측정할 수 있다.
2008년 일본 국제전기통신기초기술연구소(ATR) 연구팀은 다양한 흑백 사진 400장을 사람들에게 보여준 다음 fMRI로 대뇌 시각피질의 활성패턴을 측정했다. 이 패턴만 보고도 이 사람이 보고 있는 문자나 도형이 어떤 것인지 읽어낼 수 있었다. 2011년에는 동영상을 읽어내는 데도 성공했다. UC버클리의 잭 갈란트 교수팀은 사람이 영화를 볼 때 뇌의 변화를 fMRI로 포착해 무슨 장면을 봤는지 실시간 동영상으로 재현했다.
2013년 4월, 일본 ATR 연구팀은 마침내 fMRI를 이용해서 꿈을 읽는 역사적인 실험에 도전했다. 2008년 실험에서처럼 실험 참가자가 잠에 들기 전 여러 가지 사진을 보게 한 다음에 그들이 꿈을 꾸고 있는 시점에 깨워 어떤 꿈을 꾸고 있었는지 물어봤다. 그런 다음, fMRI를 이용해서 만든 영상과 그들이 꾼 꿈이 일치하는지 확인했다. 놀랍게도 실험 참가자들이 꿈에 대해 설명할 때, 꿈의 내용과 아주 유사한 사진이 화면에 나타났다. MRI 기계가 꿈을 읽는 ‘드림레코더’로 변신하는 순간이었다.
앞으로 더 뛰어난 해상도를 가진 새로운 뇌 영상기기가 개발된다면 가까운 미래에 우리의 꿈을 저장하고 꺼내 보는 것이 가능할 것이다. 이런 연구는 거짓말 탐지, 뉴로마케팅, 정신질환 진단과 같은 다양한 분야에서 이용될 것이다. 이러한 기대감에 미국에서는 2013년부터 10년 간 브레인 이니셔티브(BRAIN Initiative)라는 이름의 뇌신경기술 개발 프로젝트에 매년 3000억 원이라는 연구비를 투자하고 있다. 엄청난 규모 때문에 냉전 시절 소련과의 경쟁에서 시작된 달 탐사 프로젝트의 21세기 판으로 비유되기도 한다.
1970년대에 PET(양전자방출 단층촬영)이 개발되고 1990년대에 fMRI가 개발됐다는 사실을 떠올린다면 2010년대에 또 다시 뇌과학자를 잠 못 들게 할 새로운 뇌 영상기기가 등장할 지도 모른다. 지금도 많은 뇌공학자들은 영화 ‘아바타’에 등장하는 뇌 스캐너 캡슐을 꿈꾸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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