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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영화와 드라
마로 제작된
만화

고스트 월드

Ghost World

별 것 없는 세상에 녹아들기 싫었던 나날들

대니얼 클로우즈가 1993년부터 1997년까지 본인이 발행한 1인 매체 《에이트볼》에 연재한 만화. 마블과 DC코믹스로 대표되는 미국 주류 만화 시장이 아닌, 미국 인디만화로 대중과 평단 양쪽에 호평을 받으며 성공한 케이스. MGM에서 영화로 제작해 국내에서는 <판타스틱 소녀백서>라는 제목으로 개봉하기도 했다.

고스트 월드

<고스트 월드>, 대니얼 클로우즈 지음, 새미콜론 펴냄

고스트 월드

ⓒ 1993 DANIEL CLOWES

평범한 소녀들의 성장기

고스트 월드

영화 <고스트 월드>는 <판타스틱 소녀백서>라는 제목으로 국내에 개봉했다.

세상은 별 것 없다. 사람들도 딱히 흥미진진하거나 대단하지 않고, 그런 사람들이 그간 만들어놓은 작은 사회와 문화들도 어떤 세련된 무언가가 아니라 그저 대충 여기까지 쌓여온 것이다. 겉으로 만족하고 행복한 듯 보이는 삶이란, 사실은 온갖 모순이나 허위를 깨닫지 않고 그냥 아무 생각이 없는 이들의 모습에 불과하다. 그런 진리에 도달했을 때,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압도적 무의미함에 고뇌할 수도 있다. 미개한 사회인들을 내려보며 고고하게 비웃을 수도 있다. 나 자신도 그 안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을 것이라는 것에 생각이 닿으며, 오만 감정이 복잡하게 터질 수도 있다. 이 모든 것을 거치면서, 어떤 식으로든 세상 속 자기 자리를 가꿔나갈 때 우리는 그것을 ‘성장’이라고 부른다.

<고스트 월드>(댄 클로우즈/박중서 옮김/세미콜론)는 90년대 초 미국 교외 거주촌의 비슷비슷한 ‘가정적’ 분위기나 가득한 신기루 같은 무미건조한 세상 속에서 성장통을 겪는 두 젊은 여성의 이야기다. 그들은 막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이제 직장을 찾아야하는 시기, 즉 별 것 없는 세상에 녹아들어갈 것인가 완전히 거부할 것인가 선택을 미룰 수 있는 마지막 순간에 놓인 친구들이다. 이니드 콜슬로우와 레베카 도플마이어. 조금 특이하지만 사실 별로 대단할 것 없는 수준의 이름인데, 바로 그들의 성격과 사고방식과 닮았다. 주변 세상의 위선과 천박함을 냉소적으로 바라보며 날카롭게 꼬집을 정도로 똑똑하고 유머감각도 있지만, 사회적 각성이나 굉장한 자아실현 같은 심각한 고민을 하는 것은 아니다. 그저 매일 그 동네의 일상을 살면서, 둘이서만 대중문화를 씹어대고 주변 사람들의 한심함을 조롱한다. 하지만 그 안에서도 조금씩 시간은 흐르고, 냉소로 뭉쳐진 두 사람의 우정도 서서히 희미해지며 결국 각자의 경로로 세상에 편입된다.

시시한 유령들의 세상에 사는 유령 이야기

90년대 북미지역 인디만화 작가들이 종종 사용한 작품 발표 방식은 혼자 채워 넣는 일종의 만화잡지를 만들어내고는 그 안에 여러 작품들을 돌려가며 연재하는 것이었는데, <고스트 월드> 역시 그런 방식으로 탄생했다. 댄 클로우즈의 정간지 《에이트볼》에 93년부터 97년까지 연재되었고, 단행본으로 출간되자 평단의 호평 속에 단숨에 작가의 대표작이 되었다. 젊은이의 성장기 고민을 1인칭 냉소로 소화해내는 방식이야 소설 <호밀밭의 파수꾼>을 위시해서 전례를 찾아보기 어렵지 않지만, 나름의 평온과 풍요가 갖추어진 속에서 오히려 더욱 실존적 성장통은 도드라지기 쉬운 90년대 미국의 평범한 풍경에서 대단히 세밀한 관찰로 작품을 풀어가며 돋보였던 것이었다.

평온한 중산층의 상징 같은 교외 거주촌에는 생각 없는 소비문화 그 자체인 쇼핑몰이 퍼지고, 시대착오적 키치를 멋으로 착각하는 패스트푸드 체인들이 있다. 한 때는 나름대로 개성있는 마을이었을지도 모르겠으나, 지금은 그저 경제적 번성기 미국의 수많은 똑같은 모습에 편입되어가는 곳이다. 사람들은 그 안에서 어떤 따뜻한 공동체라도 되는 듯 겉으로 예의와 친절을 차리지만, 실제로는 그냥 평범하게 아무 생각 없이 그런 흐름에 따라다니고 있을 뿐이다. 이니드와 베키는 그런 시시함을 도저히 못 견디면서도, 시시함을 깨기 위해 할 수 있는 일 또한 그렇게 대단하지 않다. 많은 불평(실제로 각 칸에서 대사가 차지하는 분량도 매우 높은 편이다), 약간의 일탈과 그 평온한 사회를 살짝 흔드는 조금의 물의가 전부다. 하찮음을 짜증내는 이들의 공범관계다.

다른 작품이라면, 별 것 없어 보이던 세상이 사실은 나름의 의미가 있음을 조금씩 알게 되는 방식으로 성장을 다룰 수도 있었을 것이다. 성장의 계기로 누군가와의 연애, 이왕이면 삼각관계 비슷하게 만들어서 세상 적응과 우정의 갈라짐을 달달하게 포장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어떤 의미에서, 이 작품을 영화로 옮겨서 나름의 호평을 받은 2001년의 영화판이 그런 길을 일부분 걸었다고도 할 수 있다(한국에는 무려 <판타스틱 소녀백서>라는 황당하게 발랄한 제목으로 개봉한 바 있다).

전부였던 일부와 헤어지는 과정 : 성장

고스트 월드

영화 <고스트 월드> 중에서. 둘도 없는 단짝이었던 두 소녀, 이니드와 베키는 시시한 세상을 마음껏 조롱하며 어울렸지만, 자연스럽게 ‘넥스트 스텝’을 밟으며 멀어진다.

하지만 <고스트월드>가 그려내는 두 여성의 냉소적 세계에서는, 연애는 언감생심이다. 물론 주변에 맴도는 착한 남자애 정도는 있지만, 세상이 시시하다는 인식을 함께 공유할 수 없는 그저 시시한 세상의 일부에 가까운 존재일 뿐이다. 성장은 어떤 드라마틱한 계기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 그저 시간이 흐르며 모든 유예기간이 지나고 일자리를 찾아 그저 살아가야 할 때, 결국 녹아들어가는 선택을 할 수 밖에 없다. 그리고 심지어 당사자들이 그런 앞날을 모르는 것도 아니다. 그렇기에 냉소적 위악과 작은 물의로 스스로를 만족시키다가도, 잠시 복잡한 감정이 솟아오르며 그저 혼자 갑자기 눈물을 흘린다. 신랄한 냉소와 뜬금없는 감정의 순간, 그리고 그런 분방함도 필연적인 끝을 맞이할 것이라는 묵직함이 작품 전반을 지배한다.

신기루 같은 동네와 사람들의 풍경, 그 안에서 끝이 예정된 냉소 속에 나름의 성장을 겪는 이들을 묘사하는 방식은 2도의 빛바랜 푸른 색감과 경직된 느낌의 그림체다. 화사함이라고는 전혀 없고 그렇다고 암울하게 그려내지도 않는, 사람들이 나름대로 북적거리지만 생명력이 없어 보리는 동네가 펼쳐진다. 그 안에 뚱하거나 짜증났거나 어색한 가짜 미소 같은 표정으로 사람들이 지나친다. 유령 세계 속을 사는 것은 유령들이고, 세상이 그렇다는 것을 깨달았기에 조금 더 특별하게 다양한 표정을 보여주는 이니드와 베키조차 먼 발치에서 보면 이미 녹아들어 있다.

결말에서 한 명은 동네를 벗어나고 한 명은 계속 남는다. 떠나는 이가 동네에서 일자리를 찾아 녹아들어간 이를 먼 발치에서 바라본다. 그러나 여기에는 그 전에 동네 사람들을 보며 뿜어내던 냉소는 이제 없다. 물론 그렇다고 대견하다거나 애틋함을 펼치는 것도 아니다. 그저 그렇게 자신 또한 그렇듯, 다음 단계로 나아가버린 이를 그대로 받아들일 뿐이다. 별 것 없는 세상에 대한 냉소로 다져졌던 동지애는, 이제는 별 것 없는 것을 잊지 않았지만 그래도 녹아들어가게 된 자신들을 덤덤히 받아들이는 좀 더 폭넓은 이해로 바뀐다. 유령 세상이 좋아진 것이 아니다. 그저 원래부터 딱 그 정도였던 사람 풍경으로 걸어 들어갔을 따름이다.

판타스틱 소녀백서
판타스틱 소녀백서 Ghost World
제작 :
2000, 독일
감독 :
테리 즈위고프
주연 :
도라 버치, 스칼렛 요한슨, 스티브 부세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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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낙호 집필자 소개

만화 연구가. 본명 김낙호 및 capcold라는 필명으로 2000년 웹진 「두고보자」 편집장을 시작으로 「만화의 이해」, 「한국현대만화사」, 「만화가 담아내는 세상」등 다수 만화관련서를 집필 또..펼쳐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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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와 드라마로 제작된 만화 | 저자김봉석 외 | cp명에이코믹스 전체항목 도서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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