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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영화와 드라
마로 제작된
만화
공안사회에 균열을 내는 방법

브이 벤데타

V FOR VENDETTA

벤데타(vendetta)라는 말은 원래 이태리어에서 나왔다고 하는데, 증오의 대상이 되는 상대를 오랜 기간 끈질기게 무너트리는 핏빛 대결을 의미한다. <브이 포 벤데타>는 바로 한 테러리스트가 벌이는 행위에 관한 이야기다. 낭만적인 어감의 민중 혁명도, 범사회적 계몽주의도 아닌, 파시즘에 대한 무정부주의의 ‘벤데타’다. 파시즘에 의한 엄격한 공안통치가 이뤄지고 있는 가상의 런던을 무대로, 통제의 힘과 저항의 본질에 대해 문학적 유려함과 냉정한 세계관으로 논하는 1980년대 영미권 만화의 걸작 가운데 하나다.

브이 포 벤데타

<브이 포 벤데타> 앨런 무어(글)/데이브 로이드(그림) 지음, 시공사 펴냄

유토피아의 가면을 쓴 공안정국의 맨얼굴

<브이 포 벤데타>는 1982년부터 흑백 만화로 처음 선보였지만, 저조한 인기 속에 잡지 자체와 함께 사라졌다. 하지만 1988년에 재발굴되어, 원래 의도했던 파스텔톤의 새로운 컬러까지 입혀서 끝까지 나올 수 있었다. 1980년대 보수 일변도의 영국 정치 상황, 임박한 듯한 핵전쟁 위기와 냉전 분위기 속에서, 런던의 감시사회 분위기와 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의 나치 집권을 절묘하게 섞은 듯한 디스토피아를 창조했다. 그 위에 섬세하고 압축적인 시각적 복선 활용, 영문학의 비유적 언어를 촘촘히 섞으며 완성되었다.

작품 속 런던은 1980년말 세계적 핵전쟁 이후 급격하게 파시즘의 지배가 도래한 곳이다. ‘노스파이어’라는 독재 정부가 외국인 배척, 공포 자극, 사회 질서 유지에 대한 세뇌에 가까운 강조를 통해 침묵하는 다수를 만들어 그 위에 철저하게 군림한다. 겉으로는 여전히 의회도 있고 민주제의 모습을 유지하지만, 시민들의 모든 것은 감시당하고 있고 불만세력은 정권 수호 요원들을 통한 납치와 고문으로 보답 받는다. 불만은 저항으로 이어지지 못하고, 단지 강요된 평온만이 있을 뿐이다. 하지만 엄혹한 공안정국이 만들어내는 표면적인 질서 밑에는, 수많은 이들이 경제적 어려움, 차별 등을 겪으며 주변화 되었다. 사람들은 무표정하게 일상을 영위하면서, 통제에 길들여진 만큼 그런 사회적 모순에 대해서도 눈을 감는다.

이야기는 16세 소녀인 이비 해먼드가 빈곤 때문에 성매매를 하려다 공안요원들에게 강간살해당할 위기에 놓일 때, 수수께끼의 가면 쓴 사람에게 구조를 받으면서 시작한다. 그 사람은 1605년에 영국 의회를 폭파하려 했던 가이 포크스의 가면을 쓰고 고전 영문학의 구절을 읊고 다니며, 런던의 주요 정치공간을 파괴하고 요인 암살을 하는 테러리스트다. 브이는 이비를 비밀기지로 데려와서, 자신의 사상에 점차 물들인다. 한편 정권은 브이를 잡기 위해 혈안이 되고, 브이의 계획을 막기 위한 대결이 펼쳐진다.

비굴한 침묵보다, 폭력적인 진실을 선택하다

브이 포 벤데타

영화 <브이 포 벤데타>의 한 장면.

이 작품에서 브이는 단 한 번도 가면 밑의 얼굴을 드러내지 않는다. 그가 과거에 당했던 심한 피해가 밝혀져서 비밀경찰은 그것에 대한 복수일 것이라고 추론하기도 하지만, 브이는 한 명의 사람으로서 행동하기보다는 자신이 하나의 ‘사상’임을 자부한다. 브이라는 자신은 아무리 해도 결코 죽지 않는데, 그것은 바로 사상은 커지거나 사라질 뿐이지 죽일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강고한 파시즘을 철저하게 괴롭혀서 결국 균열을 내고자 하는 그 사상이란 바로 무정부주의다.

공안정권인 노스파이어가 순도 높은 파시즘의 현신이고 브이가 무정부주의의 현신이라면, 이비는 그런 세상을 살아가며 입체적 변화를 겪는 시민이다. 공포와 행복을 부르짖는 사회에서 어떻게든 자기 입에 풀칠하고자 하지만, 여느 공안사회가 그렇듯 그곳은 주변화된 이에게 끝없이 가혹하다. 공안사회에서 당한 피해, 브이와 스쳐지나간 인연, 그래도 다시 사회 안에서 행복을 찾고자 하는 시도, 그런데 다시금 닥치는 불행 앞에서 결국 브이와 함께 싸우는 길을 선택한다. 의도적으로, 그 선택에 이르는 과정은 결코 감동적으로 포장되지 않는다. 노스파이어라는 파시즘의 사회적 세뇌와는 다른 방식으로, 브이라는 무정부주의의 수단 역시 이비에게 폭력적이기 짝이 없다. 다만 모순에 침묵을 강요당하며 가라앉기보다는, 잔학한 방식으로 진실을 강요당했지만 그래도 마지막에는 자신의 선택으로 싸움에 나섰을 뿐이다.

<브이 포 벤데타>, 만화 VS 영화

브이 포 벤데타

영화 <브이 포 벤데타>. 시민들이 ‘브이’의 대의를 받아들여 모두 가이 포크스 가면을 쓰고 봉기에 나섰다.

<브이 포 벤데타>는 만화 자체로도 유명하지만, 헐리웃에서 만든 영화판의 몇 가지 이미지들이 더욱 크게 알려진 바 있다. 그 중 대표적인 것이 바로 마지막에 시민 대중들이 브이의 대의를 받아들이며 다들 가이 포크스 가면을 쓰고 봉기에 나서는 모습이다. 불특정 다수의 단합된 힘에 의한 변혁이라는 굉장한 희망을 주기에, 미국의 ‘월가를 점령하라’ 운동가들부터 터키 민주화시위와 한국의 각종 운동까지 현실의 운동에서 여럿 활용되었다.

하지만 악의 정권에 대한 선한 저항의 승리 같은 이미지를 주는 것과 달리, 원작은 구도를 훨씬 섬세하게 접근한다. 작품은 브이가 정신이 이상한 폭력분자인지, 위대한 사회운동가인지조차 뚜렷하게 어느 쪽 손을 들어주지 않는다. 그저 그가 마련한 계기를 보여줄 따름이다. 파시즘은 대중의 용인이 있기 때문에 파시즘인 것이고, 무정부주의는 ‘벤데타’일 뿐이지 대안 체제가 아니다. 원작에서 시민들이 봉기하는 것은 브이의 파괴적 무정부주의 사상이 폭넓게 동의를 얻어서가 아니라, 그가 온 힘을 다해서 만들어낸 공고한 파시즘 사회에 대한 작은 균열이 시민들의 불만에 불을 붙여주었기 때문이다.

무한히 통제적인 정부에 대항하고자 정부의 통제를 받지 않는 것을 주장하는 것이, 대안적 사회의 모습이 될 수는 없다. 브이가 촉발한 민란 이후에 어떤 사회가 될지, 딱히 해피엔딩을 들이밀지 않는다. 하지만 공안 통치에 가만히 순종하며 쌓여가는 모순에 침묵하는 상태를 깨고 다른 무언가를 갈망해보기 위한 자극이 되어줄 따름이다.

모순이 쌓였을 때는 균열을 일으켜야한다는 그 순수하게 파괴적인 사상 그 자체는, 일련의 후계자를 얻으며 조용히 명맥을 이어간다. 가면 뒤의 사람이 누구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가면이 나타내는 사상이 하나의 상징처럼 이어질 따름이다. 허위의 공안 통치와 다른 선택을 사람들이 나서서 만드는 것이 가능하다는 인식을 끊임없이 상기할 수 있을 때, 그리고 그런 인식 위에서 계속 구체적인 질문들을 던질 수 있을 때, 비로소 세상은 좀 더 나은 곳이 된다. 그런 여운이 바로 영화판으로 이식되지 못한, 원작만의 강렬한 매력이다.

브이 포 벤데타
브이 포 벤데타 V for Vendetta
제작 :
2005, 영국
감독 :
제임스 맥테이그
주연 :
나탈리 포트만, 휴고 위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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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낙호 집필자 소개

만화 연구가. 본명 김낙호 및 capcold라는 필명으로 2000년 웹진 「두고보자」 편집장을 시작으로 「만화의 이해」, 「한국현대만화사」, 「만화가 담아내는 세상」등 다수 만화관련서를 집필 또..펼쳐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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