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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 핀란드 국민음악의 아버지
얀 시벨리우스
Jean Sibelius출생 | 1865년 12월 08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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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망 | 1957년 09월 20일 |
국적 | 핀란드 |
대표작 | 〈핀란디아〉, 〈쿨레르보 교향곡〉, 〈바이올린 협주곡〉 등 |
음악을 통해 핀란드 민족 정서를 구현한 핀란드 국민음악의 아버지로 불리는 작곡가이다.
얀 시벨리우스는 1865년, 핀란드의 소도시 헤미린나에서 외과 의사의 아들로 태어났다. 어린 시절부터 피아노를 배웠으며, 14살 때 바이올린을 시작한 후 한때 바이올리니스트가 되겠다는 꿈을 갖기도 했다. 하지만 음악가라는 직업이 생계 수단으로는 적합하지 않다는 생각에 대학에서는 법학을 전공했다. 대학에 다니는 동안 헬싱키 음악원에서 청강생으로 작곡과 바이올린을 공부했으며, 나중에 법과대학을 그만두고 음악으로 방향을 바꾸었다.
1889년, 헬싱키 음악원을 졸업한 시벨리우스는 독일 베를린으로 유학을 떠났다. 이 무렵 핀란드 작곡가 카야누스가 핀란드의 민족서사시 〈칼레발라〉를 토대로 쓴 〈아이노 교향곡〉을 듣고 큰 감명을 받았으며, 이것을 계기로 핀란드의 민족 정서를 반영한 음악을 작곡하겠다고 결심했다. 베를린에서 공부를 끝낸 후에는 오스트리아 빈으로 갔는데, 이때 브루크너의 교향곡을 듣고 큰 감명을 받았다.
베를린과 빈 유학은 시벨리우스에게 음악적으로 매우 귀중한 경험이었지만 부작용도 있었다. 오랜 타향 생활에서 오는 결핍감이 그를 술과 담배에 빠지도록 했기 때문이다. 방종하고 무절제한 생활은 그의 건강을 해쳤을 뿐만 아니라 경제적인 어려움도 가져왔다. 그럼에도 창작열은 불꽃같이 타올랐다. 빈 유학 기간에 핀란드의 민족서사시 〈칼레발라〉를 바탕으로 〈쿨레르보 교향곡(Kullerv Symphony)〉을 작곡했는데, 이것이 핀란드에서 큰 성공을 거두었다.
1892년, 시벨리우스는 아이노 예르네펠트와 결혼했으며, 같은 해 헬싱키 음악원 교수로 취임했다. 결혼과 취직으로 생활의 안정을 찾은 그는 왕성하게 창작열을 불태웠다. 이 무렵 그는 〈칼레발라〉를 바탕으로 한 일련의 곡을 발표함으로써 핀란드 국민음악의 대표자로 군림하게 된다. '핀란드의 창조신이 만든 나라'라는 뜻의 〈칼레발라〉는 시벨리우스가 음악의 물을 길어 올리는 영감의 샘 같은 것이었다. 〈포욜라의 아가씨들(Pohjola's Daughter Op.49)〉, 〈쿨레르보 교향곡〉 등을 비롯한 주옥같은 작품들이 바로 이 샘에서 탄생했다.
바로 이 무렵 핀란드의 국내 정세는 악화일로를 걷고 있었다. 러시아가 핀란드의 자치권을 박탈하고, 핀란드를 러시아화하려는 여러 가지 정책들을 실시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언론에 대한 검열도 강화되었다. 하지만 러시아의 이런 조치는 핀란드 국민들로 하여금 더욱 강한 애국심으로 뭉치도록 했다. 1899년, 저항 운동의 일환으로 〈역사적 정경〉이라는 극이 공연되었는데, 시벨리우스는 이 극을 위해 음악을 작곡했다. 이것이 바로 그 유명한 〈핀란디아(Finlandia Op.26)〉이다.
1901년, 시벨리우스는 가족과 함께 이탈리아를 여행했다. 그런데 이 무렵부터 청각에 이상을 느끼기 시작했다. 핀란드로 돌아온 시벨리우스는 건강의 악화로 고통받기 시작했다. 이런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그는 헬싱키에서 북동쪽으로 30킬로미터 거리에 있는 예르벤퍼라는 곳에 산장풍의 집을 짓고, 1904년 9월 이곳으로 이사했다.
예르벤퍼의 아름다운 호숫가 산장에 둥지를 튼 시벨리우스는 죽는 날까지 이곳을 근거지로 삼았다. 하지만 은둔 생활을 한 것은 아니었다. 이곳에 살면서 독일, 영국, 스웨덴, 발트 3국, 프랑스 등 여러 나라로 연주 여행을 가기도 했다. 그러다가 영국을 여행하던 1908년 후두에 이상을 느꼈다. 시벨리우스는 핀란드로 돌아와 5월에 수술을 받았는데, 종양이 제거되지 않아 몇 달 후 재수술을 받았다. 악성종양일지도 모른다는 공포, 재발과 전이에 대한 염려, 그렇게 좋아하는 담배를 금지당한 데 대한 결핍감으로 그는 이 시기를 매우 우울하게 보냈다.
1911년, 시벨리우스는 빈 아카데미로부터 교수직을 맡아 달라는 요청을 받았지만 거절했다. 1914년에는 처음으로 미국 여행을 갔는데, 여기서 기존의 작품들과 함께 교향시 〈대양의 여신(The Oceanides Op.73)〉을 초연해 큰 성공을 거두었다. 여기에 고무되어 시벨리우스는 가까운 시일 내에 다시 미국을 방문하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제1차 세계대전이 터지는 바람에 이 계획은 무산되었으며, 전쟁 때문에 그동안 거래했던 독일 출판사와도 연락이 두절되어 경제적으로도 큰 타격을 받았다.
1919년, 핀란드는 공화국 헌법을 제정하고 독립국이 되었다. 이해에 시벨리우스는 코펜하겐에서 열리는 노르딕 뮤직 페스티벌에서 자기 작품을 지휘해 큰 호평을 받았다. 하지만 어찌 된 일인지 61세 이후에는 거의 작품을 쓰지 않고, 이후 남은 4반세기의 긴 여생을 침묵으로 일관했다. 1935년, 탄생 70주년을 기념하는 행사가 크게 열렸지만, 음악적으로 기록할 만한 것을 내놓지는 않았다. 이렇게 오랫동안 침묵하던 시벨리우스는 1957년 9월 20일에 92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시벨리우스가 작곡가로 활동한 시기는 20세기 전반이지만, 그는 같은 시기에 활동한 다른 나라 작곡가들처럼 새로운 경향의 곡을 쓰지는 않았다. 그래서 '시대에 뒤떨어진 작곡가'라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그의 음악어법은 베토벤을 비롯한 고전악파에 뿌리를 두고 있으며, 여기에 북유럽 특유의 어두운 하모니와 핀란드의 향토적인 색채를 가미해 자신만의 독특한 작품 세계를 구축했다. 시벨리우스의 작품 세계를 이해하는 가장 중요한 열쇠는 핀란드 민족 대서사시 〈칼레발라〉이다. 그에게 〈칼레발라〉는 무한한 영감의 샘이었고, 초기작인 〈쿨레르보 교향곡〉을 비롯한 수많은 작품이 여기에서 탄생했다.
이 중 〈쿨레르보 교향곡〉은 1892년 초연되어 크게 성공을 거둔 시벨리우스의 출세작이다. 이 곡에 영감을 준 〈칼레발라〉의 이야기는 다음과 같다. 쿨레르보는 난폭한 잠과 꿈의 신 카레르보의 아들이다. 카레르보는 동생인 운타모에게 살해당하고, 쿨레르보는 어려서 누이동생과 헤어져 숲 속을 헤매며 생활하고 있다. 어느 날 썰매를 타고 가다 아가씨를 발견한 그는 그녀를 유인해 겁탈한다. 하지만 그 후 이야기를 나누는 과정에서 두 사람이 남매 사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사실을 알게 된 누이동생은 강물로 뛰어들어 자살하고, 죄책감을 못 이긴 쿨레르보 역시 목숨을 끊으려 하지만 어머니의 만류로 포기한다. 그 후 클레르보는 운타모를 죽임으로써 아버지의 원수를 갚고, 누이동생을 범한 장소를 찾아가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1악장 〈서주〉, 2악장 〈쿨레르보의 청춘〉, 3악장 〈쿨레르보와 누이동생〉, 4악장 〈출전하는 쿨레르보〉, 5악장 〈쿨레르보의 죽음〉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이 중 3악장과 5악장에 독창과 합창이 나온다.
제목이 붙은 〈쿨레르보 교향곡〉 외에 시벨리우스는 1번부터 7번까지 모두 일곱 개의 교향곡을 썼다. 번호가 붙은 교향곡 중에서는 제2번이 가장 유명하다.
한편 교향시 분야에도 많은 작품을 남겼는데, 그의 대표작인 〈핀란디아〉를 비롯해서 〈칼레발라〉에서 영감을 얻은 〈레민케이넨과 소녀들〉, 〈투오넬라의 백조〉, 〈투오넬라의 레민케이넨〉, 〈레민케이넨의 귀향〉, 〈포욜라의 아가씨〉, 〈타피올라〉 등이 유명하다. 이 중 〈핀란디아〉는 1899년 헬싱키에서 열렸던 애국적인 모임을 위해 작곡한 것이다. 러시아의 압제를 받고 있었던 핀란드 국민들의 애국심을 자극한 일종의 민족 송가로, 이 곡을 통해 시벨리우스는 핀란드가 겪었던 시련과 극복의 역사를 그렸다. 음악은 웅장하고 극적인 서주로 시작한다. 그다음 찬송가풍의 제1주제와 민요풍의 제2주제가 나타난다. 곡이 클라이맥스에 이르면 금관악기와 팀파니를 포함한 오케스트라 악기 모두가 힘찬 소리로 시련의 극복을 묘사한다. 그런 다음 찬송가풍의 멜로디가 등장하는데, 이 멜로디에 가사를 붙인 노래는 오늘날 핀란드의 애국가요로 널리 불리고 있다.
시벨리우스는 바이올린에 뛰어난 재능을 가지고 있어 한때 유명한 바이올리니스트가 되겠다는 꿈을 꾸기도 했다. 바이올린이라는 악기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던 그는 뛰어난 바이올린곡을 남겼는데, 이것이 1903년에 발표한 〈바이올린 협주곡(Violin Concerto in D minor Op.47)〉이다. 제1악장은 작품 전체의 핵으로 자유롭고 독창적인 악장이다. 카덴차가 악장 중간에 위치한 것이 이채롭다. 처음에 약음기를 부착한 현악 트레몰로의 화음에 실려 독주 바이올린이 애수 어린 제1주제를 제시한다. 제2주제는 파곳이 연주한다. 자유로운 3부 형식으로 이루어진 2악장은 로맨틱한 분위기를 가지고 있다. 북유럽의 아름답고 신비스러운 자연을 연상시키는 악장인데, 특히 특징적인 리듬을 되풀이하면서 차츰 솟아올라 드라마틱해지는 중간부가 인상적이다. 마지막 악장인 제3악장은 론도풍의 악장이다. 두 개의 주제를 차례로 되풀이하는 단순한 형태지만 바이올린이 기교적으로 활약하면서 화려하게 클라이맥스를 구축해 나가는 솜씨가 돋보인다.
그 밖의 작품으로는 교향시 〈어느 전설〉, 〈타피올라〉, 모음곡 〈카렐리아〉, 〈펠레아스와 멜리장드〉, 관현악곡 〈슬픈 왈츠〉, 극음악 〈템페스트〉, 〈쿠올레마〉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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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부터 20세기까지 작곡가와 연주가를 망라하여 인류의 음악사를 빛낸 음악가들을 만난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바흐, 모차르트, 베토벤뿐만 아니라, 잘 알려져 있지 않..펼쳐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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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um백과] 얀 시벨리우스 – 음악사를 움직인 100인, 진회숙, 청아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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