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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선주민의 흔적 스톤헨지
스톤헨지는 수직으로 우뚝 서 있는 두 개의 돌 위에 한 개의 돌이 수평으로 얹혀져 아치 모양을 하고 있다. 높이 7미터, 무게 45톤이나 되는 거대한 돌로 이루어져 있으며, 바깥쪽에는 동심원 형태의 고리가, 안쪽에는 말발굽 형태의 돌이 세워져 있다.
방사선 탄소 연대 측정법에 따르면, 이 거대한 돌 유적들은 기원전 2,800년경부터 이곳에 자리잡고 있었다고 한다. 기원전 1,500년경에 현재의 모습을 하고 있었으니까 지금까지 3,500년이나 된 셈이다.
고고학자들은 유럽 각지에 흩어져 있는 또 다른 거석을 조사하였다. 스톤헨지보다 훨씬 오래 전에 세워진 것으로 지중해 동쪽 끝자락의 몰타라는 섬에 있는 거석을 찾아냈다. 그리고 두 거석 유물의 상호 관계를 연결하여 다음과 같이 추정하였다.
몰타는 문명의 발상지로 알려진 메소포타미아와 가까운 곳에 위치하고 있다. 따라서 메소포타미아 문명의 영향을 많이 받았을 것이다. 특히 해양문화가 발달하기 쉬운 섬이라는 특성상 일찍부터 발달한 항해기술을 바탕으로 지중해 물길을 통한 문화의 전달자로서의 역할을 했을 것이라는 점은 상식적인 판단이다. 이에 비해 브리튼은 메소포타미아 문명의 손길이 닿기에는 너무 멀다. 그렇기 때문에 브리튼에 나름대로의 해양문화가 있었다 해도 몰타에 비해 문명의 발전은 뒤졌을 것이다. 따라서 거석문화는 지중해 지역을 통해 브리튼으로 전해졌을 것이다.
넓은 평원에 어째서 이처럼 거대한 돌이 세워져 있는 것일까? 스톤헨지를 세운 목적은 무엇이었을까? 일부의 고고학자들이 스톤헨지 아래를 파보았다. 밑에는 헨지를 지탱하는 평범한 또 다른 돌이 놓여 있었으며 세밀하게 점검한 결과 목탄을 찾아낼 수 있었다. 불을 지펴놓고 어떤 의식을 치렀던 흔적인 것이다. 일부 학자들은 이런 흔적을 보고 '이는 분명 화장터로써 쓰였음을 말해주는 증거'라고 조심스럽게 의견을 내놓았다.
사실 학자들의 이런 결정은 단순한 생각에서 나왔다기보다는 다른 지방에서 발견된 거석들과 연관 지어서 생각한 것이다. 프랑스 남서부 지역인 브리타뉴에 있는 몇몇의 거석들에는 지금도 여인들이 다산을 기원하며 엉덩이로 미끄럼을 타거나, 병을 낫게 하는 신비한 힘이 있다며 돌 주위를 도는 풍습이 남아 있다. 즉 학자들은 스톤헨지 역시 어떤 의식 행사의 장소로 쓰였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었던 것이다.
1740년 고고학 애호가인 윌리엄 스태클리는 스톤헨지 중심과 '힐스톤'이라 불리는 돌을 잇는 선이 태양이 가장 길게 내리쬐는 날의 일출 지점인 북동쪽을 향해 있다는 흥미로운 주장을 내놓았다.
스태클리의 주장이 발표되자 그 내용을 뒷받침하는 여러 학자들의 발표가 잇달았다. 왕립학회 회원이자 태양 물리학 연구소장인 노먼 로키어 경은 영국에 있는 스톤헨지를 포함한 스톤서클들은 대부분이 태양의 방위와 별의 위치를 고려하여 만들어졌다고 발표했다.
또한 영국에 있는 스톤서클 600여 개를 조사한 옥스퍼드 대학교 알렉산더 톰 교수도 스톤서클은 기하학적으로 디자인된, 놀랄 만한 천문지식이 담겨 있는 구조물이라고 주장했다.
스태클리를 포함한 여러 학자들의 연구를 종합해보면, 스톤헨지를 포함한 거석유물은 천체 관측소로 사용되었을 것이라는 결론이 나온다. 그러나 천체 관측소라는 주장이 독자적으로 명분을 얻는 데는 미국 보스턴 대학교의 천문학자인 제럴드 호킨스나 뉴햄 교수의 "스톤헨지는 당시의 신관 천문학자들에게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는 발표가 뒷받침되어야 했다.
이외에 글래스고 대학교의 헌테리언 박물관의 유안 메키 교수는 스톤헨지 부근에서 선사 시대의 식생활의 흔적과 오래된 옷가지류가 발견된 사실을 통해 이 부근이 중요 주거지일 가능성이 있다고 추정했다. 메키 교수는 좀 더 생각의 폭을 넓혀 "지중해 동부 연안에 있었던 것으로 보이는 신관들이 대서양을 항해하여 이베리아 반도를 거쳐 영국에까지 이른 것으로 보인다."라고 추측하였다.
앞서 표현된 여러 가지 연구와 주장들을 볼 때, 스톤헨지가 불가사의한 역사의 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음은 분명하다. 다시 말해 스톤헨지 그 자체는 많은 비밀을 담고 있으면서도 뚜렷한 해답은 하나도 제공해주지 않고 있다는 의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국 선사 시대의 서두를 언급할 때, 스톤헨지는 빼놓을 수 없는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이 거석문화의 흔적은 섬나라 영국에 알려지지 않은 선주민이 살고 있었다는 확실한 증거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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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um백과] 영국 선주민의 흔적 스톤헨지 – 이야기 영국사, 김현수, 청아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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