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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혁명

다른 표기 언어 digital revolution
그래도 1 더하기 1이 2라는 우리의 믿음은 깨어지지 않을 것이다.
- 버트런드 러셀(Bertrand Russell, 1872~1970)

디지털 암호로 이루어진 우리 몸

1701년 독일의 라이프니츠는 중국 청나라 황제인 강희제의 측근이었던 프랑스 예수회 선교사로부터 편지 한 통을 받았다. 거기에는 태극도 그림과 『주역』의 64괘에 대한 내용이 들어 있었다. 라이프니츠는 우주 만물이 생성하고 소멸하는 음양의 자연법칙에서 힌트를 얻어 2진법을 만들었다.

『주역』은 2진 3비트인 8수(23)을 이용해 64괘 배열로 만들어서 자연현상을 예측하고 인간의 길흉화복을 점치는 중국 주나라 시대의 경전이다. 우리나라 태극기에 그려져 있는 태극무늬에서도 2진법 체계를 우주 만물의 기본 원리로 인식하고 자연에 순응하고자 했던 선조들의 지혜를 엿볼 수 있다.

우리 몸은 세포로 이루어져 있으며, 세포 안의 핵에는 유전자 정보를 저장하고 전달하는 DNA라는 물질이 들어 있다. DNA에는 네 개의 염기(A, C, G, T)가 두 개씩 서로 쌍(A-T, G-C)을 이루며 사다리처럼 긴 염색체를 구성하고 있다. 그중에서 유전정보를 전달하는 세 개의 코돈은 유전자 발현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유전자의 집합을 게놈이라고 부르는데, 정보를 저장하고 전달한다는 측면에서 게놈을 책에 비유할 수 있다. 말하자면 게놈이라는 책에서 염기는 문자, 코돈은 단어에 해당한다. 코돈의 기본 단어 또한 64개로 『주역』의 64괘와 비슷하다. 결국 인간의 몸은 4진 2비트 64단어로 이루어진 정보 전달 체계로 해석할 수 있다. 이는 컴퓨터에서 0과 1로 정보를 저장하는 디지털 방식과 유사하다. 알고 보면 우리 몸도 DNA 문자로 이루어진 디지털 암호인 셈이다.

1953년, 왓슨과 크릭은 우리 몸을 만들고 후세에 전달해 주는 유전자의 DNA 구조를 밝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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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날로그에서 디지털로

과거와는 달리 현대사회를 디지털 시대라고 부를 만큼 우리 생활 주변의 수많은 기기들이 디지털 방식을 취하고 있다. 사실 디지털과 아날로그는 오랜 세월을 사이좋게 공존해 왔다. 아날로그란 사인파 형태로 전달되는 소리나 전류처럼 신호의 크기가 연속적으로 변하는 경우를 말한다. 한편 디지털이란 신호의 크기가 0과 1의 이진수로 표현된 정보를 뜻한다.

가장 오래된 아날로그 계산기로는 고대 천문학자들이 사용한 천문 관측의를 들 수 있다. 토목, 건축에서도 오랫동안 아날로그 계산기의 일종인 계산자를 이용해서 복잡한 계산을 빠르게 수행할 수 있었다. 최근에는 1931년 미국 MIT의 부시가 가장 창의적인 계산기로 꼽히는 미분해석기를 만들었는데, 곧이어 만들어진 디지털 컴퓨터에 의해 무용지물이 되고 말았다.

현재 사용하는 컴퓨터는 모두 디지털 방식으로 작동하고 있지만 초창기 컴퓨터 가운데는 아날로그 방식으로 만들어진 것도 있었다. 당시 아날로그 컴퓨터는 제2차 세계대전에서 방공 체계의 구축을 위한 탄도 계산 분야에 활용됐다. 즉 목표물의 속도, 고도, 위도 등 다양한 변수를 아날로그 형식으로 입력하고 연산 과정을 거친 다음 아날로그 형식으로 출력하는 것이다.

항공기나 방공 체계에서는 장비가 효율적으로 작동되었으므로 아날로그 방식도 별 무리가 없었다. 그러나 이 방식은 정확도와 신뢰도가 떨어졌기 때문에 그 후 놀라온 속도로 발전한 디지털 컴퓨터로 대체되었다.

디지털 계산기도 아날로그 계산기 못지않게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다. 오래 전부터 동양과 유럽에서 사용됐던 주판도 넓은 의미에서 볼 때 디지털 계산기의 일종이다. 1642년 프랑스의 파스칼이 아버지 사업을 돕기 위해 제작했다고 하는 계산기도 정수를 이용한 장치였기 때문에 디지털 계산기에 속한다. 파스칼의 장치는 톱니바퀴를 이용해서 여덟 자리 수까지 더하고 뺄 수 있었다. 1674년 독일의 라이프니츠는 파스칼의 계산기를 더욱 개량해서 곱셈과 나눗셈, 그리고 제곱근 계산을 할 수 있는 장치를 만들었다.

1834년 영국의 찰스 배비지가 제안한 해석기관은 천공카드에 의한 입출력, 연산장치, 기억장치, 그리고 제어장치를 갖추고 있는 등 현대적인 디지털 컴퓨터의 모습을 갖추고 있었다. 그의 아이디어는 약 100년이 지난 1930년대에 재발견되어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기 직전 폰 노이만에 의해서 프로그램 컴퓨터의 형태로 발전되었다.

근대적 컴퓨터가 아날로그에서 디지털로 바뀌는 데는 1945년 미국 해군이 추진하던 모의실험 비행장치 개발 계획에서 디지털 방식을 채택한 것이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애초에 이 계획은 부시의 미분해석기를 응용한 아날로그 컴퓨터를 활용해서 조종사의 조종 반응을 시뮬레이션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아날로그 방식은 계산 속도가 너무 느려 실시간 내에 조종사의 반응을 계산할 수 없었다. 이런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서 1945년 말, 아날로그 방식을 포기하고 새로운 대안으로 떠오른 디지털 방식을 채택하게 되었다.

찰스 배비지가 고안한 해석기관은 초창기 디지털 컴퓨터의 모습과 비슷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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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학으로 생각하는 컴퓨터

모든 과학이 그러하듯 컴퓨터 과학의 발전도 충실한 이론적 토양이 없이는 불가능했을 것이다. 컴퓨터 과학의 이론은 1940년대를 전후해 정립되기 시작했다. 특히 1948년은 중요한 이론들이 발표되어 컴퓨터와 정보 기술의 기반을 확고히 한 해였다. 노버트 위너의 사이버네틱스이론, 클라우드 섀넌의 정보이론, 폰 노이만의 자기증식자동자이론 등이 모두 같은 해에 등장했다.

'생각하는 기계'의 가능성에 대한 탐구는 이미 1930년대부터 활발히 전개되었다. 이 시기를 주도하면서 컴퓨터의 이론적 모델을 최초로 제시한 과학자는 영국의 앨런 튜링이다. 그는 인간의 두뇌와 비슷하게 작동하는 기계를 만들기 위해 자동자이론을 정립했다. 자동자(automation)란 일정한 형태의 입력과 출력을 처리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말한다.

튜링의 이론을 이어받아 컴퓨터의 구조 체계를 정리한 사람은 노이만이다. 1903년 헝가리에서 태어나 어릴 적부터 수학에 남다른 재능을 보였던 노이만은 학업을 마치고 불안정한 정치 상황을 피해 오스트리아와 독일 등지를 전전하다가 1930년 미국으로 건너갔다.

제2차 세계대전이 터지자 핵폭탄 개발을 위한 맨해튼계획에 참여한 그는 원자폭탄 개발 과정에 깊숙이 개입하면서 컴퓨터의 역사에 결정적인 자취를 남기게 된다. 컴퓨터 이론에 관한 그의 가장 중요한 업적은 디지털 계산 체계를 정립한 것이다. 그는 생명체의 기본적인 행동을 합성하면 보다 복잡한 형태의 기능을 실현시킬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이는 훗날 인공생명 연구에 관한 이론적 기초가 되었다.

노이만의 또 다른 업적은 게임이론이다. 모르겐슈테른과 함께 발표한 논문에서 그들은 게임에서 최선의 선택이 존재한다는 것을 수학적으로 분석했다. 게임이론은 경쟁과 협조가 복합적으로 작용하는 현대의 경제행위나 군사행동에 있어 불확실한 상황의 결과를 예측하고 최대의 이익을 확보하면서 최적의 전략을 수립하는 데 널리 활용되고 있다.

이런 이론들의 배경에는 고대 그리스에서부터 학문적으로 잘 정립된 논리학이 자리 잡고 있다. 영국의 조지 불은 1854년에 펴낸 자신의 저서 『사고의 법칙』에서 논리학을 대수의 형태로 변환시켰으며, 이를 확률에 대한 추론까지 연장시켰다.

그는 대수에서 사용하는 x, y 같은 미지수를 집합과 논리의 명제로 바꾸었다. 예를 들어 '오늘은 비가 올 것이다'와 '내일은 눈이 올 것이다'라는 명제를 생각해 보자. 이것을 각각 x와 y라는 집합으로 나타낼 때 두 집합의 공통집합은 명제의 논리곱 '오늘은 비가 올 것이고 내일은 눈이 올 것이다'가 되며 x·y로 표시할 수 있다. 마찬가지로 논리합은 x+y로 '오늘은 비가 오거나 내일은 눈이 올 것이다'로 나타낼 수 있다.

그는 전체집합을 1로 나타내고 아무 것도 없는 집합을 0으로 나타냈는데, 이를 명제로 나타내면 1은 참을, 0은 거짓을 의미한다. 불은 '그리고, 또는, ~이 아니다' 같은 논리 접속사를 수학적으로 활용했다. 이런 논리 접속사는 오늘날 컴퓨터 연산과 스위칭 회로의 핵심이 되었다. 다시 말해서 그는 컴퓨터에서 사용하는 이진법 체계를 만들었던 것이다. 1938년 미국의 섀넌은 불의 논리를 이용해 전기회로를 설계하는 이론을 개발하고 10년 후에는 '비트'라는 용어를 만들면서 아날로그를 디지털로 바꾸는 정보이론을 창시했다.

컴퓨터의 기본적인 논리 회로는 'AND, OR, NOT'이라는 게이트로 구성된다. 이것은 불의 연산자인 '그리고, 또는, ~이 아니다'에 해당되며, 각각 곱셈, 덧셈, 부정이라는 대수의 연산 체계와 동일하다. AND 게이트는 두 개의 입력 신호가 동시에 들어올 때만 출력 신호를 방출하고 OR 게이트는 두 개의 입력 신호 중 하나라도 입력 채널에 들어오면 출력 신호를 내보내는 방식으로 작동한다. 컴퓨터 회로에서 게이트를 통해 전기 신호가 흐르는 방식은 불이 발견한 대수의 규칙을 따른다. 이것은 일종의 사고 체계이므로 어떤 의미에서는 컴퓨터도 생각을 한다고 할 수 있다.

수학과 뗄 수 없는 현대인의 삶

친구에게 전화를 거는 순간 우리는 수학의 세계에 발을 들여놓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그것은 단순히 전화요금 계산 때문이 아니다. 진짜 수학을 발견하는 곳은 전화의 연결 경로를 어떻게 정할 것인지 결정하는 소프트웨어 안에 있다.

방대한 네트워크 시스템에서 어떻게 하면 최선의 경로를 선택할 수 있을까? 도대체 얼마나 많은 경로가 존재할 수 있는지 알아보기 위해 열두 개의 도시가 있다고 가정해 보자. 그리고 각 도시는 도로망을 통해 서로 연결되어 있다고 가정한다. 열두 개 도시를 정확하게 한 번씩 들른다고 할 때 각 도시를 순회하는 경우의 수는 총 몇 가지나 될까? 상상하기 힘들겠지만 무려 5억 가지 방법이 존재한다.

이와 비슷한 문제는 컴퓨터 하드웨어에서도 발견된다. 반도체 기판에 수만 개의 구멍을 뚫기 위해 레이저 드릴을 이용할 때, 경비를 최소화하려면 레이저 드릴이 길 잃은 여행자처럼 움직여서는 안 된다. 그래서 컴퓨터를 설계하는 사람들은 드릴이 모든 구멍을 단 한 번씩만 찾아다니며 구멍과 구멍 사이를 오가면서 최단거리로 여행할 방법을 찾는다.

이 문제를 해결하려고 했을 때, 1920년대부터 수학자들이 이와 정확히 똑같은 문제를 연구하고 있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이 문제를 '외판원 문제'라고 한다. 최소한의 경비로 모든 도시를 빠짐없이 방문하고 다시 출발점으로 돌아오기 위해 외판원들은 여러 도시를 알뜰하게 돌아다닐 방법을 찾아야만 한다.

1954년에는 미국에서 마흔아홉 개 도시를 이용한 외판원 문제가 해결되었으며, 최근 2004년에는 스웨덴에서 2만 4,978개의 마을을 이용한 문제가 풀렸다. 이것은 전자 산업, 운송 회사, 심지어 핀볼 기계를 만드는 회사들까지 구멍 뚫기나 일정 관리 따위의 간단한 일을 하는 데도 수학에 의지해야 함을 뜻한다.

인터넷이 처음 세상에 공개될 무렵, 그곳은 컴퓨터광들만 들어가 즐기는 일종의 파라다이스였다. 이는 인터넷 기술이 엄청나게 발전하긴 했지만 일반인들이 이해하고 사용하기에는 다소 힘들었기 때문이다. 자신이 찾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정확히 알고 있지 않는 한 그것을 찾아낼 길은 거의 없었다. 한마디로 전혀 쓸모없는 것처럼 보였다.

인터넷 혁명을 일으킨 사람은 유럽핵물리연구소(CERN)의 팀 버너스리다. 그는 1991년 여러 나라의 연구자들이 정보를 쉽게 교환할 수 있도록 하이퍼텍스트에 기반을 둔 월드와이드웹(www)을 만들면서 '브라우저'라는 이름을 붙였다. 하이퍼텍스트란 갖가지 문서를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도록 연결해 놓은 것이다.

월드와이드웹은 문자는 물론 그림, 사진, 음성, 동영상 등 다양한 정보를 전달할 수 있는 특징을 지니고 있다. 결국 월드와이드웹의 등장은 그동안 갇혀 있던 정보들의 물꼬를 트는 계기가 되었고 정보 중심의 새로운 지식사회가 펼쳐지는 기반을 만들었다.

반도체 기판과 전선 그리고 전자파 속에 숨어 있는 수학이 오늘날 컴퓨터 테크놀로지와 통신 혁명을 이끌었다면 그로 인해 발생하는 문제점들의 해결 또한 수학이 해야 할 과제다. 예를 들어 인터넷에 있는 엄청난 정보들 가운데 필요한 내용을 어떻게 찾을 수 있을까? 많은 사람들이 동시에 접속할 때 네트워크에 과부하가 걸리는 경우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

이 문제는 고속도로에서 교통 흐름이 막힘없이 잘 소통되다가 어느 순간 차량의 속도가 줄어들면서 한데 엉키는 상황과 비슷하다. 이럴 때도 역시 '대기행렬이론'이라는 수학 분야가 필요하다. 대기행렬이란 말 그대로 교통 체증 때문에 죽 늘어선 차량들의 행렬, 버스를 기다리는 사람들의 행렬, 생산 라인을 따라가는 반제품들의 행렬, 과부하가 걸린 전선을 따라 이동하는 전류의 흐름에서 찾아볼 수 있다.

네트워크의 신속한 흐름을 보장하려면 많은 중계선이 필요하지만 그렇다고 중계선을 너무 많이 늘리면 시스템이 비효율적일뿐 아니라 막대한 경제적 비용을 부담해야 한다. 이런 문제를 제대로 처리하려면 어느 정도 고도의 수학 이론이 필요하다. 그런 측면에서 과학과 테크놀로지를 연결하고 새로운 네트워크 혁명을 이끌기 위한 수학의 역할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해졌다.

현대는 또한 정보의 시대다. 정보는 이미 상품이 되어 버렸으며 어떤 면에서는 사물보다 더 중요해졌다. 하지만 날것 그대로의 정보는 가치가 없다. 진짜 중요한 것은 정보가 의미를 갖게 만드는 연산처리과정, 즉 알고리즘이 필요하다. 예를 들어 주식중매인이 원하는 것은 단순히 숫자들의 조합이 아니다. 주가가 어떻게 변동할 것인지 알려 주는 일정한 패턴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정보를 단순히 컴퓨터에 입력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우리가 활용할 수 있는 형태로 정보를 처리하기 위해서는 숫자들의 의미 있는 조합이 필요하다. 그것이 바로 수학이 하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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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갑수 집필자 소개

연세대학교에서 핵물리학을 전공하여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대덕연구단지의 한국원자력연구소에서 다목적 연구용 원자로를 설계했다. 미국, 캐나다, 일본에서 입자가속기를 이용하여 핵자 및 소립자에 대한 ..펼쳐보기

출처

세상을 움직이는 수학
세상을 움직이는 수학 | 저자정갑수 | cp명다른 도서 소개

수학자의 관점으로 다룬 인류 역사 이야기. 수학이 과학이나 기술 발전에 기여한 부분뿐만 아니라 철학, 문학, 미술, 음악, 전쟁과 어떻게 상호작용 했는지 통섭적인 시각..펼쳐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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