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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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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월의 봄 친선예술축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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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민족가극 ‘춘향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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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평양성 사람들’ 중국서 호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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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최고의 안무가 김락영
4월의 봄 친선예술축전
2001년 4월 초부터 평양에서 치러진 김일성 북한 주석 89회 생일(4.15) 축하 행사 중에서 ‘4월의 봄 친선예술축전’처럼 대내외로부터 주목받은 행사는 드물다.
이 축전은 세계 각국에서 온 예술단이 참가해 규모면에서 김 주석 생일행사 가운데 첫 손가락에 꼽히는 데다 음악, 무용, 교예(서커스), 마술 등 다양한 공연이 진행돼 북한 주민들로부터 높은 인기를 얻고 있다.
축전은 개막부터 다른 행사와는 차별된다. 지난 10일 축전 개막식에 앞서 각국 예술인들은 플래카드와 가장물을 들고 평양 개선문으로부터 개막식장인 4.25문화회관까지 ‘예술행진’을 진행, 축전 분위기를 돋우었으며 평양시민들과 학생들이 꽃다발을 들고 행진에 나선 각국 예술인들을 환영했다.
개막식 다음날 평양시내 각 극장에서 시작된 첫 공연부터 각계각층 근로자, 청소년학생, 군인들의 발길이 이어졌다. 이와 함께 북한의 조선중앙TV는 축전 주요 공연을 방영하고, 라디오방송인 평양방송과 조선중앙방송도 축전 공연을 하루에도 여러 차례 소개하는 등 이 행사에 대해 특별한 관심을 나타냈다. 북한은 통상 3월 중순께부터 준비위원회를 조직, 축전 준비에 나서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올해로 19회를 맞는 이 행사에는 46개 국가와 지역에서 온 86개 예술단체의 740여명의 예술인들이 참가해 축전무대를 화려하게 장식했다고 북한 언론은 전했다.
특히 올해에는 김연자씨가 남한 가수로는 처음으로 이 축전에 참가, 지난 7일 평양 청년중앙회관에서 공연한데 이어 11일 함경남도 함흥으로 자리를 옮겨 김정일 노동당 총비서가 지켜보는 가운데 또 한 차례 공연했다.
김씨의 평양공연은 지난 12일 북한 라디오 방송과 TV를 통해 소개됐으며 그의 공연을 지켜본 평양시민들은 “높은 실력과 뛰어난 예술적 재능을 가지고 독특하고 훌륭한 공연을 보여주었다”며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북한 언론들은 축전이 처음에는 ‘친선음악회’로 시작됐지만 지금은 “전통화된 국제예술축전으로 발전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축전은 지난 82년 4월 15일 김 주석 70회 생일을 축하하기 위해 10여개 국가 예술인들의 친선음악회로 시작됐으며 3회부터 규모가 확대되고 형식도 다채로워지면서 국제예술축전으로 바뀌어 갔다.
3회 축전 당시에는 참가 예술단체가 34개 국가에서 온 58개였으나, 지난해에는 40여개 국가에서 온 70여개로 늘어났다. 지난 19년 동안 축전에는 세계 각국에서 온 1천300개 예술단체의 1만5천여명의 예술인들이 참가했다.
민족가극 ‘춘향전’
민족가극 ‘춘향전’은 북한에서 민족가극의 본보기로 내세우는 작품이다.
민족가극 형식으로는 첫 작품인 춘향전은 국립민족예술단에서 공연하고 있으며 김정일 노동당 총비서의 직접적인 지도하에 지난 88년 창작 완성됐다.
김 총비서는 지난 88년 2회에 걸쳐 직접 극장에 나가 창작중에 있는 춘향전을 보고 구체적인 수정방안을 제시한데 이어 30여편의 곡을 지도해 주었으며 같은해 12월 19일 간부들과 함께 완성된 작품을 관람하고 대단히 만족해했다고 북한 출판물은 전하고 있다.
북한은 이 가극이 “력사주의적 원칙과 현대성의 원칙을 옳게 구현해 우리 인민의 고유한 민족적 정서와 감정에 맞는다”면서 “빈부와 귀천이 지배하는 낡은 착취사회의 신분제도 모순과 불합리성을 폭로하고 예로부터 우리 근로인민이 지닌 고상하고 아름다은 도덕륜리를 잘 보여주고 있다”고 강조하고 있다.
또 이 가극은 민족적 선율을 바탕으로 한 노래와 우리 민족의 세태풍속을 담은 민족무용이 잘 어울린 것이 특징이며 그 중에서도 민족무용 ‘탈춤’, ‘한삼춤’, ‘패랭이춤’, ‘과일다반춤’ 등은 걸작이라고 북한은 평가하고 있다.
이 가극의 제작자들은 모두 남한과 연고가 있는 인물들로, 극본은 월북작가로 남한에도 잘 알려진 조영출(93년 5월 사망)씨가 썼고 가극에 나오는 대부분의 노래는 남쪽에 동생이 있는 이산가족 작곡가 신영철(74)씨가 만든 것이어서 더욱 이채롭다.
신씨의 동생 상철(71)씨는 현재 서울 강남구 개포동에 살고 있는데 이들 형제는 강원도 안변 출신이나 해방 직후 음악공부를 하러 서울에 왔다가 49년도에 헤어졌다.
특히 신씨의 아내인 김점순(67)씨는 경상남도 통영 출신으로 이산가족 방문단 후보명단(200명)에 포함됐다가 탈락됐다. 공훈배우인 김씨는 현재 남편 신씨와 함께 국립민족예술단에서 성악지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신씨는 춘향전에 나오는 노래를 창작한 공로로 지난 89년 인민예술가 칭호를 받았다.
춘향전에 첫 출연한 주역들은 또 대부분 신진 가수였다는 점에서도 크게 주목을 받았던 것으로 전해졌다.
춘향역을 맡은 송영숙씨는 이례적으로 평양음악무용대학 재학시절 이 역에 선발됐으며 김 총비서로부터 역을 아주 잘한다는 평가를 받은 전도유망한 가수로 알려졌다.
몽룡역의 송성주, 향단역의 최수복 역시 신인 가수들이었으며 월매역을 맡은 렴길숙씨는 이후 공훈배우 칭호를 받았다.
방자는 공훈배우 량정화씨가, 변학도는 최선오씨가 각각 맡아 출연했다.
국립민족예술단은 춘향전 창작 이후 평양, 함흥, 덕천, 개성, 남포 등 각지에서 4백여회의 순회공연을 했으며, 이를 토대로 지난 94년 민족가극 ‘심청전’, 95년 민족가극 ‘곽씨부인전’을 창작했다.
국립민족예술단은 지난 47년 10월 설립됐으며 민족가극, 민요, 민속무용조곡, 민속무용, 민족기악 등 민족적 색채를 띤 다양한 형식의 작품을 발표하고 있으며 지난 6월 평양을 방문한 김대중 대통령은 이 예술단에서 창작한 민속무용조곡 ‘평양성사람들’을 관람했다.
‘평양성 사람들’ 중국서 호평
중국에서 열리고 있는 제2차 베이징(北京)에서 ‘만남 국제예술축전’에 참가한 북한 국립민족예술단이 18일 민속무용 조곡 ‘평양성 사람들’ 공연을 성황리에 진행했다.
조선중앙방송은 20일 “공연은 높은 사상ㆍ예술성과 출연자들의 훌륭한 기량으로 하여 관중들의 절찬을 받았다”고 전했다.
이 방송은 공연이 끝날 무렵 ‘조중친선은 영원하리라’의 노래가 울려 퍼지는 가운데 두 나라 민속의상을 입은 출연자들이 양국 깃발을 휘날리며 친선을 과시해 관중들로부터 열렬한 박수를 받았다고 밝혔다.
이날 공연장에는 중국 문화부 부부장을 비롯한 관계자들과 최진수 중국주재 북한대사와 대사관원들이 나와 공연을 관람했다.
지난 7일 평양을 출발한 이 예술단은 베이징공연에 앞서 랴오닝(遼寧)성 선양(瀋陽)에서 첫 공연을 가졌다.
‘평양성사람들’은 지난해 6월 남북정상회담 당시 김대중 대통령도 관람한 작품으로 전통무용과 기악곡을 중심으로 진행하는 민속무용 조곡이다.
이 작품은 지난 97년에 창작돼 90년대 북한이 창작한 공연물 가운데 ‘춘향전’과 함께 최고의 작품으로 꼽히고 있으며 외적의 침략에 대항하는 평양성 주민들의 투쟁을 그리고 있다.
국립민족예술단은 지난 47년 3월 평양 모란봉예술단으로 출발해 85년 평양예술단으로, 92년 현재의 명칭으로 개칭된 국립민족예술단은 민요, 민속무용 등의 민족음악예술작품 창작 및 공연에 주력하고 있는 예술단체이다.
최고의 안무가 김락영
북한 예술계에서 가장 유명한 안무가는 평양음악 무용대학 교원(교수)인 인민배우 김락영(66)씨로 전해졌다.
김씨는 김정일 노동당 총비서의 직접적인 지도하에 창작된 무용계 4대명작의 하나인 ‘조국의 진달래’(1971년)를 안무한 데 이어 손꼽히는 민속무용 ‘3인무’(1961년), 북한 국기를 상징한 군무 ‘삼색춤’(1978년) 등을 창작해 “현대무용의 새로운 경지를 개척하는 데 크게 기여한 예술가”라고 북한 『조선대백과사전』은 전하고 있다.
그는 또 전설무용 ‘금강선녀’(1972년), 민속무용 ‘북춤’(1988년), 여성군무 남녘의 ‘청년들’(1988년)을 비롯해 각종 혁명가극과 음악무용서사시의 무용작품을 안무해 “주체적인 무용예술의 발전 면모를 과시하는 데 크게 이바지했다”고 평가받고 있다.
김일성 주석과 김 총비서도 김씨가 안무한 무용작품을 여러차례 관람하고 재능있는 안무가라고 높이 평가했으며, 김씨는 그 공로로 지난 82년 인민배우 칭호와 각종 훈장을 받았다.
평안북도 운산군 북진노동자구의 한 평범한 노동자 가정에서 출생한 그는 지난 49년 평양제8중학교를 졸업한 뒤 국립무용연구소에서 전문적인 무용교육을 받았다.
지난 51년부터 중앙농민극단과 무용극장에서 무용배우로 활동했던 그는 58년부터 국립무용극장에서 안무가로서 본격적인 활동을 펼쳤으며 60년 쌍무 ‘분배받은 기쁨’을 창작하면서 재능있는 안무가로 인정받았다.
이어 지난 65년 국립가무단, 73년 피바다가극단에서 각각 안무가로 활약했으며 92년부터는 평양음악무용대학에서 안무이론 교수로 후진을 양성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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