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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카소가 만든 도자기들은 보통 그의 주요 작품들과는 별도로 취급되며 덜 중요한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그것들은 대개가 발로리스의 마두라 도자기 공장에서 도자기공에 의해 만들어진 접시·단지·꽃병들을 고치거나 채색했으며 또는 거기에 구멍을 뚫거나 긁어서 자국을 내고 지문을 남겨서 쓸모없이 만들어놓은 것들이었다.
피카소는 이렇게 하면서 해방감을 느꼈고 장식과 형태 간(2차원과 3차원 사이)의 작용 및 개인적·보편적 의미 사이의 차이를 시험했다. 이무렵 피카소의 명성은 점차 높아져 수많은 방문객들이 그를 찾았는데, 그중 엘렌 파르멜랭, 에두아르 피뇽, 엘뤼아르, 그리고 특히 루이 아라공은 그의 정치 참여를 더욱 부추겼다.
1949년 그는 폴란드의 브로추아프에서 열린 세계평화회의를 위한 포스터 도안으로 기꺼이 비둘기를 그려주었으나 그것은 공산당에게 헌신한 것이라기보다는 억압받는 사람들에게 평생 진정으로 공감을 느낀 데서 비롯된 것이었다. 발로리스에 있는 옛 교회의 부속 건물인 평화의 신전을 장식하기 위해 1952년에 그린 2점의 패널화 〈전쟁 War〉·〈평화 Peace〉는 당시 피카소의 낙천적 인생관을 반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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