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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크스

다른 표기 언어 Sir Vivian Ernest Fuch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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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1908. 2. 11, 잉글랜드 아일오브와이트
사망 1999. 11. 10, 케임브리지
국적 영국

요약 영국의 지질학자·탐험가.

1957~58년에 영국 연방 남극대륙 횡단 탐험대를 이끌고 지구 탐험의 마지막 위대한 도전으로 여겨지던 남극 횡단에 최초로 성공했다.

푸크스는 1929년 케임브리지대학교 세인트존스칼리지 재학 시절 지도교수인 제임스 워디와 함께 그린랜드를 방문하면서 자신에게 탐험에 대한 욕망이 있음을 깨달았다. 워디는 1914~16년 어니스트 헨리 섀클턴의 역사적인 영국 남극 횡단 탐험대의 선임 과학자로서 인듀어런스호에 탑승했던 인물이었다. 1929, 1930~31년에 그는 지질학자로서 동(東)그린란드와 동아프리카 호수들에 대한 탐험에 각각 참여했다.

1933~34년에는 에티오피아-케냐 지역의 10만 4,500㎢를 조사했던 레이크 루돌프 리프트 밸리 탐험대를 이끌었다. 1935년 열곡의 구조(지각구조)에 대한 논문으로 케임브리지대학교에서 지질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군인으로 참전한 뒤 1947년 포클랜드 제도 지부 조사소 소장이 되어 일을 하던 과정에서 남극 횡단 탐험에 흥미를 가지게 되었다.

역사적인 1957~58년 남극 횡단 탐험에서 그가 이끈 12명의 대원들은 극심한 고난에도 불구하고 남극의 필크너 빙붕에서부터 맥머도사운드까지 99일간 4,000km를 답사하며 남극을 횡단하는 최초의 육상탐험을 완수했다. 탐험에서 발견된 사실을 근거로 남극 빙상 밑에 하나의 대륙이 존재한다는 이전의 이론들이 확증되었다. 탐험 후반기에는 에드먼드 힐러리 경이 이끄는 탐험대와 동행했다.

두 사람은 남극에서 우연히 만났는데 힐러리는 푸크스보다 15일 먼저 남극에 도착해 있었다. 언론에서는 이를 두고 두 사람이 경주를 벌였다고 대서특필했다.

푸크스는 1958년 탐험에서 돌아오고 나서 3일 뒤에 남극 탐험에서의 지도력과 공헌으로 기사작위를 받았다. 그 해 후반 힐러리와 함께 〈남극 횡단기 The Crossing of Antarctica〉(1958)를 저술했다. 1958~73년 영국 남극연구소(1962년까지는 포클랜드 제도 지부 조사소라는 명칭이었음) 소장직을 맡았으며, 1974년에는 왕립협회 회원이 되었다.

여러 학회에서 활동했지만 특히 왕립지리학회에서 적극적으로 활동해 1982~84년 회장직을 맡았다. 저서로는 영국의 남극 조사에 대한 책 〈얼음과 인간에 대하여 Of Ice and Men〉(1982), 자서전 〈말할 시간 A Time to Speak〉(1990) 등이 있다. 남극 애들레이드 섬의 푸크스 아이스 피드먼트와 섀클턴 산맥의 푸크스 스노 돔 등 두 곳은 푸크스의 이름을 딴 지명이다.

푸크스(Sir Vivian Ernest Fuchs)

푸쿠스의 모습(오른쪽)

ⓒ TimofKingsland/wikipedia | Public Doma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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