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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 미국 사우스캐롤라이나 주에 있는 국립기념물.
찰스턴 항 연안의 설리번스 섬에 있으며 1861년 4월 12일 남북전쟁의 첫 교전이 벌어진 곳이다. 섬터 요새는 1829년부터 건축되기 시작하여 남북전쟁이 발발한 1861년에도 계속 건축되고 있었다. 이 요새는 독립전쟁 당시의 애국자인 토머스 섬터를 기념하여 명명되었다. 1948년 4월 28일 몰트리 요새를 포함하여 국립기념물로 지정되었다. 본토에 있는 몰트리 요새는 원래 설리번 요새로 불렸으며, 미국 독립전쟁 때인 1776년 6월 28일 미국군이 영국군을 물리치고 승리를 거둔 곳이다. 세미놀족 인디언 지도자인 오시올라가 몰트리 요새에 묻혔다.
1861년초 정치적 분쟁을 해결하기 위해 북부측과 남부측이 회합을 가졌으나 이미 연방을 탈퇴한 남부 7개주가 그들의 영토 내에 있는 모든 요새와 무기고의 독자적인 소유권을 주장함으로써 회담은 결렬되었다. 플로리다 주의 피컨스 요새와 로버트 앤더슨 소령 휘하의 북군 수비대가 주둔해 있던 섬터 요새 2곳만이 연방군의 관할권하에 남았다.
섬터 요새는 전략적 가치가 없었기 때문에 이곳에 있던 60정의 대포는 모두 바다 쪽을 향하고 있었으나 국가적 단합을 위한 상징적 가치는 매우 컸다. 1861년 3월 에이브러햄 링컨이 대통령이 되자 남군은 이 요새를 비워달라고 강력히 요구하고 나섰다. 사우스캐롤라이나 주가 항구 쪽에 세운 여러 요새들 또한 이 요새를 위협했다. 결국 링컨은 굶주림에 처한 요새 주변의 어려움을 뚫고 다시 보급품을 조달해주든지 요새를 포기하고 연방분할에 응하든지 양자택일을 해야만 하는 상황에 놓였다.
링컨은 피컨스 요새와 섬터 요새에 구조대를 파견하기로 결정했다. 그러나 보급품이 도착하기도 전에 남군 당국은 즉시 섬터 요새에서 북군이 철수할 것을 거듭 촉구했다. 이것을 거절하자 남군 포대는 1861년 4월 12일 새벽에 포격을 시작했고, 2일 후 요새가 함락되었다. 연방군 소유의 요새가 포격당하자 북부는 즉시 남군에 대항하여 단결했고, 링컨은 3개월 복무 조건의 7만 5,000명 규모의 긴급 소집병을 모집하고 반격을 개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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