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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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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잡지의 광고혁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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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잡지와 사진잡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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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제스트 잡지와 포켓 잡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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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지의 전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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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문화·문학 잡지
대중잡지의 광고혁명
잡지에 광고를 게재하는 것에 대해 초기에는 반대 의견이 지배적이었는데, 특히 이런 경향은 문학잡지의 경우 더욱 두드러졌다.
그러나 1853년 영국에서 광고세가 폐지되면서 점차 광고를 게재하는 잡지가 크게 늘어나기 시작했다. 반면 미국에서는 1880년대까지도 대부분의 잡지들이 광고 유치에 주력하지 않았다. 그러나 1897년 〈레이디스 홈 저널〉의 소유주 사이러스 커티스는 파산 직전에 놓인 〈새터데이 이브닝 포스트 Saturday Evening Post〉를 매입하여 많은 투자를 했는데, 이 잡지는 경제계에 관한 짜임새 있는 기사를 바탕으로 1922년에는 발행부수 200만 부 이상에 광고수입 2,800만 달러를 넘는 기록을 세워 큰 성공을 거두었다.
이것은 현대의 잡지업계에 전형적인 경영전략을 제시해주었는데, 이는 '광고비가 낮은 초기단계에서 발행부수를 올리기 위해서는 먼저 과감하게 자본을 투자하여 많은 기사를 싣도록 하라. 그러면 발행부수가 올라 광고비가 인상되면 수익은 보장된다'는 원칙이었다.
발행부수의 중요성이 커지자 광고업자들은 당연히 발행부수의 진위성을 확인하고자 했고, 미국광고주협회(1899~1913)와 발행부수감사국(1914)이 창설되었다.
이것은 각 잡지들이 발표하는 발행부수의 진위를 증명해주는 공식적인 기관으로 인정되었고, 그결과 발행부수의 증가에 주력하게 된 출판업자들은 시장조사에 관심을 쏟기 시작했다. 잡지업계의 시장조사활동은 1930년대에 보편화되었으며, 이와 때를 같이하여 독자들이 잡지를 통해 얻고 싶어하는 것을 파악하기 위한 독자조사활동도 개발되기 시작했는데, 이는 효과적인 경영방법으로 널리 채택되었다.
1900년경 광고는 잡지 내용의 50%를 차지하게 되었고, 1947년에는 65% 이상을 차지했다. 일반적으로 광고는 잡지의 외형을 발달시키는 데 크게 기여했는데, 지면의 판매자에서 광고제작자로 발전한 광고대행자들은 시각적으로 우수한 광고를 만들기 위해 잡지 편집자들에게 독자적인 활자체나 보기 좋은 지면배치를 하도록 강요하기도 했다. 또한 광고주들은 재정적인 압력을 행사하여 잡지의 편집방침이나 기사의 선정에까지도 개입하게 되었다.
그런 가운데서도 〈새터데이 이브닝 포스트〉·〈뉴요커 The New Yorker〉 등은 편집의 독립성을 유지했다.
영국의 광고혁명도 미국과 거의 같은 시기에 시작되었으나 커다란 반응을 불러일으키지는 못했다. 1931년 비로소 영국발행부수감사국이 창설되었으나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소비경기가 활발해지기 시작한 1960년대에 들어서야 비로소 많은 수의 광고주들을 회원으로 확보하게 되었다.
유럽의 여러 국가에서 잡지에 미치는 광고의 영향은 그리 크지 못했으며, 미국에 비해 그러한 경향이 훨씬 뒤늦게 나타났다. 그 이유 가운데 하나로 유럽에서 잡지의 판매가격이 생산원가에 가깝다는 사실을 들 수 있다. 또한 제2차 세계대전 이전까지는 침체된 경제로 대중잡지의 출판이 크게 제한되었으나, 그 이후로 경제 발달과 함께 〈타임 Time〉·〈라이프 Life〉와 같은 시사잡지를 비롯해 여성잡지 등 수많은 종류의 잡지들이 발행되기 시작했다. 프랑스에서는 〈누되 Nous Deux〉·〈엘 Elle〉·〈앵티미테 Intimité〉 등의 여성잡지가 높은 발행부수를 기록했고, 독일에서는 신혼부부들을 위한 〈야스민 Jasmin〉, 부모들을 위한 〈엘테른 Eltern〉을 비롯해 각 연령층을 대상으로 한 잡지들이 발행되었다.
20세기 초반에 잡지업계에서 이룩한 획기적인 사건으로 유통체제의 혁신을 들 수 있다.
1930년대 미국에서 최초로 〈패밀리 서클 Family Circle〉(1932)이 상점판매를 시작했고, 이것이 발전하여 1946년에는 새로운 형태의 판매상점인 슈퍼마켓에서 판매되었다. 영국에서는 제2차 세계대전 후에 서점이나 신문판매점을 대신하여 슈퍼마켓이 판매로를 주도하게 되었다.
일본에서도 20세기 초반에 이미 여러 잡지가 발행되고 있었으며, 1952년경에는 〈슈후노토모 主婦の友〉(1917~56)·〈요이코노토모 良いふの友〉(1924~57)·〈이에노히카리 家の光り〉(1925)를 포함해 2,000여 개에 달하는 잡지가 있었다.
이밖에 인도·아프리카·남아메리카 등지에서는 20세기 중반에 들어 다양한 잡지들이 대거 등장하게 되었다.
시사잡지와 사진잡지
20세기에 들어와 사람들의 생활이 바쁘게 진행되고 인쇄매체를 통해 쏟아져나오는 새로운 정보의 양이 엄청나게 증가하자 이것을 간략하게 압축하여 전달해줄 수 있는 전달매체가 필요하게 되었다.
이러한 요구에 부응하여 〈패스파인더 Pathfinder〉(1894~1954)가 등장했으나, 전세계의 뉴스를 간략하고 체계있게 보도하여 시사잡지의 새로운 영역을 확립한 선구자로는 〈타임〉을 꼽을 수 있다. 바쁜 현대인들이 새로운 뉴스나 정보를 얻기 위해 할애할 수 있는 시간이 매우 적다는 사실을 전제로 하여 편집된 전달매체가 없어 일반대중들이 새로운 소식에 접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에 착안한 브리턴 해든과 헨리 루스는 1923년 많은 일간지들을 정보원으로 하여 뉴스를 요약한 〈타임〉을 창간했다(타임사). 〈타임〉은 간결하게 압축된 문장과 완벽한 조사작업을 통한 사실 기사만을 게재해 정통 시사잡지로 인정을 받게 되었다.
꾸준히 성장을 거듭한 〈타임〉은 대학을 졸업한 지식층들을 주요독자층으로 확보하게 되었고, 1930년대에는 독자적으로 거대한 정보수집조직을 만들었으며, 사업을 확장하여 경제 뉴스를 요약한 〈포춘 Fortune〉(1930), 사진잡지 〈라이프〉·〈피플 People〉(1974) 등의 자매지도 발행했다.
사진 또한 기사의 간략화를 실현시킬 수 있는 실제적인 방법으로 이용되기 시작했다.
삽화를 이용한 시사잡지는 이미 19세기에 등장했으나, 사진의 발명과 함께 사진술이 계속 발달하면서 사진을 중심으로 한 새로운 형태의 사진잡지가 만들어졌는데 그 선두주자로 가장 큰 영향력을 행사한 것이 헨리 루스가 발행한 〈라이프〉(1936~72)였다. 사진잡지는 특히 광고기술의 발달, 타블로이드판 신문, 기록영화와 함께 성장을 거듭했는데, 현대 사진술의 발달로 환경의 제약에 관계없이 우수한 사진을 빠른 시간 안에 제작할 수 있게 되었다.
〈라이프〉는 수주 내에 발행부수 100만 부를 돌파하는 기록을 세우기도 했는데 96쪽으로 꾸며진 창간호의 표지는 갓 태어난 아기를 안고 있는 산부인과 의사의 눈부신 사진과 함께 'Life begins'('생명이 탄생되었다'라는 뜻과 '〈라이프〉가 탄생되었다'라는 뜻의 이중적 의미로 해석할 수 있음)라는 문구로 장식되어 있었다.
전장의 소식을 사진으로 생생하게 보도하던 제2차 세계대전중에는 격주로 발행되면서 사세가 확장되었고, 1971년에는 발행부수가 700만 부에 이르렀으나 높은 생산원가를 광고수입으로 충당할 수 없게 되어 1972년 12월에 폐간되었다. 그후 1978년 10월 복간되어 월간지로 발행되고 있다. 미국을 비롯해 유럽 여러 나라에서 〈라이프〉를 모방한 사진잡지들이 속출했는데, 미국의 〈포커스 Focus〉·〈룩 Look〉·〈포토 Foto〉 등이 있으며, 특히 프랑스의 〈파리 마치 Paris-Match〉(1949)는 유럽 전역에서 큰 명성을 얻었다.
다이제스트 잡지와 포켓 잡지
기사의 간략화에 대한 시대적 요구는 〈타임〉·〈라이프〉에 의하여 실현되었지만, 발행부수에 있어서 이들을 능가하는 요약판 잡지로는 다른 잡지의 기사를 요약하여 재게재하는 편집방법을 채택한 〈리더스 다이제스트 Reader's Digest〉를 들 수 있다.
1922년 미국의 D. 월리스가 포켓형 잡지로 발행한 〈리더스 다이제스트〉는 기사의 내용도 독특했으며 보다 광범위한 독자층을 대상으로 하고 있었다. 주요잡지들에 실렸던 기사들을 요약하여 시간의 제한을 받지않는 영구적인 소책자의 형식으로 편집된 기사들은 일반독자들의 관심을 끌기에 충분했고, 시간이 흐른 뒤에 읽어도 언제나 재미있으며, 낙천적이고 긍정적인 측면을 강조하여 건설적이라는 평을 받았다. 1939년에는 300만 부라는 엄청난 발행부수를 기록했고 1940년에는 스페인어를 포함, 수십 개국 언어로 발행되었으며, 그후 계속 성장을 거듭해 1980년대말에는 세계 최대의 발행부수를 보유한 잡지가 되었다.
초기에는 기사의 사용료 없이 재발행의 허가를 쉽게 얻어냈던 〈리더스 다이제스트〉는 후발 경쟁지들이 늘어난 후 때때로 다른 잡지의 허가 없이 기사를 재게재하여 잡지업계의 빈축을 사게 되면서 곧 기사의 사용료를 지불하게 되었다.
그러나 사용료의 지속적인 인상과 함께 주요잡지에서 기사 사용의 허가를 빈번하게 거부하자 1933년부터는 독자적인 기사를 개발하여 게재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리더스 다이제스트〉의 특성을 유지하기 위해 독자적으로 기사를 확보한 후 이것을 요약하여 재발행할 수 있는 권리를 조건으로 하여 다른 잡지에 제공해주는 상호보완적인 운영방법을 채택했고, 운영예산을 절감시키는 이러한 방식은 당연히 다른 잡지들의 호응을 얻게 되었다.
〈리더스 다이제스트〉를 모방한 〈사이언스 다이제스트 Science Digest〉·〈가톨릭 다이제스트 Catholic Digest〉 같은 많은 요약판 잡지들이 경쟁에 뛰어들었으나 그 어느 것도 〈리더스 다이제스트〉에 필적하지 못했다. 〈리더스 다이제스트〉는 편집상의 특성 외에 판형으로도 잡지업계에 큰 영향을 끼쳐 포켓형 잡지가 크게 유행되었다.
잡지의 전문화
일반적인 대중잡지들은 높은 발행부수를 보유하고 있지만, 전문잡지들은 대부분 특정 전문인들의 관심사나 업무에 관련된 내용을 취급대상으로 하기 때문에 대중잡지의 발행부수에는 미치지 못한다.
이러한 전문잡지들은 발행부수에 있어서는 각기 많은 차이를 나타내고 있지만, 소수라도 독자층이 존재하는 곳에는 반드시 관련된 전문잡지가 발행되고 있으며, 이러한 잡지들은 광고주들에게 확실한 시장을 제공해주고 있다. 전문잡지는 직업인들을 대상으로 하는 것과 비직업인들을 대상으로 하는 것으로 구분된다.
직업 전문잡지는 대개의 경우 특정한 협회나 학회의 기관지로서 회원들에게 최신의 정보나 지식을 제공해주어 전문인으로서의 자격과 능력을 적정 수준으로 유지할 수 있게 해준다. 이러한 전문잡지는 19세기에 처음 발행되기 시작하여, 학문이나 직업이 세분화되고 같은 분야의 전문인들끼리도 서로 다른 견해를 주장하게 되면서 그 숫자가 폭발적으로 증대했다. 예를 들어 초기에 2~3개에 달하던 의학잡지는 현재 수십 여 개 발행되고 있다. 이러한 직업 전문잡지들은 일반대중에게는 별다른 관심을 끌지 못하고 있지만 넓은 영역에 걸쳐 정통한 기사들을 게재하고 있다.
비직업 전문잡지로는 보다 광범위한 관련자들을 대상으로 하는 종교적·정치적·사회적 성격을 띠는 잡지들이 있다.
이같은 잡지들은 각 조직에 소속된 구성원들 사이의 유대를 강화하고, 종교적·정치적 사상이나 신념을 전파하고 확산시키는 것을 목적으로 하여 해당 조직에 의해 발행된다. 일반인들을 대상으로 한 전문잡지는 주로 취미에 관련된 것인데, 일반적으로 모든 분야의 직업 전문잡지에 대응하여 각 분야별로 비직업인들을 대상으로 발행되고 있다. 텔레비전·카메라·사진·자동차를 포함해 거의 모든 종류의 취미와 스포츠에 관련된 전문잡지가 판매되고 있는데, 어떤 특별한 대상이 일반대중의 인기를 끌게 되면 그것을 추종하는 사람들을 겨냥한 새로운 전문잡지가 등장하게 된다.
이것은 또한 관련 제품을 구입하고자 하는 독자와 제조업자·판매업자로 구성되는 광고주들 모두를 위한 광고매체의 역할을 하기도 한다.
오락물을 선호하는 독자들을 대상으로 저속한 잡지와 코믹 잡지가 선을 보이게 되었는데, 저속한 잡지는 크게 성공을 거둔 뒤 연애·탐정·서부 소설로 세분화되었으며, 1930년대 중반에는 수백 만 부의 판매고를 기록했다. 그러나 신문에 연재된 만화를 묶어 재발행한 코믹 잡지 〈페이머스 퍼니스 Famous Funnies〉(1934)와 〈디텍티브 코믹스 Detective Comics〉(1937)에 밀려나게 되었으며, 코믹 잡지는 이후 계속해서 성장을 거듭해 미국 잡지업계에서 커다란 시장을 점유하게 되었다.
학술·문화·문학 잡지
19세기에 크게 발달했던 평론지는 20세기에 보다 가볍고 간결한 형식의 시사잡지나 사진잡지, 다이제스트 잡지 등이 널리 대중화되면서 지배적인 영향력을 상실하기는 했지만, 일부 평론지는 여전히 명성을 누리고 있으며, 그 종류도 매우 다양해져서 크게는 학술·정치·문화·문학 평론지로 구분할 수 있다.
영국의 평론잡지들은 20세기에도 계속 성장했는데, 대표적인 것으로 종교·철학·예술·사회에 관련된 문제들을 중립적인 견지에서 논평했던 〈히버트 저널 Hibbert Journal〉(1902~70), 서적에 관계된 모든 문제를 취급하는 〈타임스 문예부록 Times Literary Supplement〉(1902)의 학술평론지를 비롯해 우익 성향의 〈스펙테이터〉와 좌익 성향의 〈뉴 스테이츠맨 New Statesman〉(1913)의 정치평론지가 있다.
문학평론지로는 에즈라 파운드와 사상주의자(寫象主義者)들에 의해 발행된 〈에고이스트 Egoist〉(1914~19), J.C.스퀘어가 창간한 〈런던 머큐리 London Mercury〉(1919~39), T.S. 엘리엇이 창간·발행한 〈크라이테리언 Criterion〉(1922~39) 등이 있다.
미국의 학술평론지로는 컬럼비아대학교의 정치학 교수들이 발행하는 〈정치학 계간지 Political Science Quarterly〉(1886), 전미대학우등생연합회 수재들이 발행하는 〈아메리칸 스콜라 American Scholar〉(1932) 등이 있으며, 정치평론지로는 가장 역사가 깊은 〈네이션 The Nation〉(1865)이 있다.
문학평론지로는 초기에 명성을 떨쳤던 〈아메리칸 머큐리 American Mercury〉(1924)를 비롯해 〈하퍼스 매거진 Harper's Magazine〉·〈애틀랜틱〉·〈새터데이 리뷰〉(1924) 등이 있으며, 특히 미국 문단에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뉴요커〉가 있다.
프랑스에서는 상징주의자들의 대변지로 〈메르퀴르 드 프랑스 Mercure de France〉가 1890년 재발행되기 시작했고, 문학과 지성의 가치를 실험적인 방법으로 분석해보는 〈누벨 레뷔 프랑세즈 Nouvelle Revue Franaise〉(1909)가 세력을 구축하게 되었다.
제2차 세계대전 후에는 사르트르가 좌익 성향의 〈탕 모데르네 Les Temps Modernes〉(1945)를 발행하기도 했다. 독일은 나치 통치기간에 침체기를 겪었으나, 그후 자유적인 성향의 정치잡지 〈차이트 Die Zeit〉를 비롯해 〈아크첸테 Akzente〉·〈베스터만스 모나트헤프테 Westermanns Monatshefte〉 등 수많은 문학지가 등장했다. 소련을 위시한 동구의 공산국가에서 문학평론지에 대한 정치적 개입은 비일비재했는데 자주 논란의 대상이 되었던 소련의 〈리테라투르나야 가제타 Literaturnaya Gazeta〉(1929)·〈노비 미르 Novy Mir〉(1925)는 사상적 비난과 함께 발행이 금지되기도 했다.
그결과 잡지의 지하발행이 성행했는데, 이러한 현상은 소련의 위성국가들에서도 일반적으로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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