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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모 사피엔스

다른 표기 언어 Homo sapiens

요약 현생인류의 기원이 되는 원시 인류. 호모 사피엔스가 출현한 것은 플라이스토세였다. 선사시대에 살았던 이 인류는 평균 1,300㎤의 뇌용적, 거의 수직의 이마 모양, 목근육이 붙는 면적이 비교적 작은 둥근 후두부, 작은 크기의 턱과 이빨, 주걱 모양의 작은 송곳니, 튀어 나온 턱끝, 완전한 직립자세와 보행자세에 적응한 사지 등이 특징이다. 유적지에서는 석기나 돌구조물, 화석화된 동물의 뼈와 이빨 등이 많이 발견되지만 나무도구는 발견되지 않는다. 호모 사피엔스와 유사한 네안데르탈인과 호모 사피엔스에 속하는 크로마뇽인은 유럽과 서아시아에서 주로 발견되는 화석인류이지만, 동아시아와 오스트랄라시아에서도 초기의 호모 사피엔스 화석이 다수 발견되었다. 호모 사피엔스의 중심지와 현생인류의 기원지로는 아프리카가 꼽힌다.

목차

  1. 기원과 초기의 진화
  2. 네안데르탈인과 크로마뇽인
  3. 아시아와 오스트랄라시아의 호모 사피엔스
  4. 아프리카의 호모 사피엔스
인류의 머리뼈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호모 네안데르탈렌시스, 호모 안테세소르, 호모 에렉투스, 호모 사피엔스의 머리뼈. 현생 인류인 호모 사피엔스의 머리뼈는 거의 수직의 이마 모양과 작고 둥근 후두부, 작은 크기의 턱과 이빨을 갖고 있으며, 턱이 앞으로 튀어나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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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원과 초기의 진화

현생인류와 동류인 호모 사피엔스가 출현한 것은 플라이스토세였다.

대략 1만~160만 년 전에 해당하는 이 시기에 지구에서는 빙하가 출현했다가 사라지는 일이 되풀이되었다(빙하작용). 이러한 빙하의 순환으로 해수면의 높이가 올라갔기 때문에, 강의 계곡이 드러나고 육교(陸橋)가 나타났다. 그결과 인간의 이주가 일어나고 상이한 인구집단간의 유전자 확산과 뒤섞임이 있게 되었다. 이와 유사하게 간빙기 사이에는 이러한 경로가 차단되는 바람에 인구집단간의 고립이 생기게 되었다.

초기 호모 사피엔스와 관련된 화석은 상대적으로 드물다. 선사시대에 살았던 이 인류는 평균 1,300㎤의 뇌용적, 거의 수직의 이마 모양, 목근육이 붙는 면적이 비교적 작은 둥근 후두부, 작은 크기의 턱과 이빨, 주걱 모양의 작은 송곳니, 튀어 나온 턱끝, 완전한 직립자세와 보행자세에 적응한 사지 등을 특징으로 한다. 이러한 유형에 일치하는 화석은 해부학적으로 호모 사피엔스에 속하게 되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호모 사피엔스는 호모 에렉투스에서 진화해나왔을 것으로 생각된다.

인류가 민꼬리원숭이를 닮은 조상으로부터 진화하는 과정에서 쉽게 식별할 수 있는 몇 가지 경향이 나타났다.

그중에서 중요한 것으로는 점진적인 뇌용적의 변화, 두개골이 더욱 둥글어지는 점, 위·아래 과 이빨을 포함한 음식물을 씹는 기능을 하는 부분의 퇴화 등이 있다. 이러한 경향은 두개골의 모양에 전반적인 변화를 일으켰기 때문에, 머리 모양이 더욱 둥글어진 반면에 툭 튀어나와 있던 '입 부분'은 안으로 들어가서 얼굴이 전체적으로 곧게 변했다.

동시에 전체적인 두개골은 더 가벼워졌지만 구조적으로는 더 섬세해졌다. 호모 사피엔스의 이빨이 작아지면서 코와 턱끝이 얼굴에서 두드러져 보이게 되었다. 따라서 턱끝은 호모 사피엔스의 턱의 두드러진 특징이며, 치골 결합 부위를 외부에서 지지해준다. 전체적으로 호모 사피엔스는 이빨의 수는 많아졌지만 셋째 큰어금니를 비롯한 이빨의 크기는 모두 작아지고 이빨의 간격도 좁아졌다. 자주 있는 일은 아니지만 이와 유사하게 측절치(側切齒 : 앞니의 양옆에 있는 이빨로 음식물을 자르는 데 사용됨)가 없어졌다. 그밖에 호모 사피엔스의 치열은 호모 에렉투스의 치열이 갖고 있는 몇 가지 특징이 결여되어 있다.

예를 들어 네안데르탈인에서는 잘 드러나지만, 호모 사피엔스의 이빨에는 이빨의 표면에 주름을 만드는 2차 에나멜과 치수(齒髓)가 적었다. 호모 사피엔스의 몸통과 사지의 형태는 이들이 완전한 직립 자세와 이족 보행에 적응했음을 보여준다(골격). 이러한 보행 능력은 적어도 400만 년에 걸친 인류의 진화과정을 압축하는 것으로서, 그러한 진화과정의 일부를 사람속의 초기 구성원들과 오스트랄로피테쿠스를 통해서 볼 수 있다(스트라이드).

호모 사피엔스는 중기 플라이스토세 말부터 후기 플라이스토세(약 1만 5,000~20만 년 전)에 걸쳐 분포했던 것이 확실하다(화석의 기록). 발견되는 화석의 양은 이 시기의 후반부로 갈수록 더 늘어난다.

화석연대측정법의 발달로 그전에는 측정이 불가능하던 화석의 연대를 정확하게 알아낼 수 있게 되었으며, 진화과정에 대해 더욱 명확히 알 수 있게 되었다. 과거에 흔히 네안데르탈인과 원시인(현생인류가 속하는 Homo sapiens sapiens의 구성원들)으로 나누어졌던 많은 표본들이 남아 있다.

1921년에 노던로디지아(지금의 잠비아 카브웨)에 있는 브로컨힐에서 발견된 거의 완벽한 상태의 두개골과 여러 개의 후두골은 가장 오래된 호모 사피엔스 화석 중 하나이다. 무거운 두개골은 네안데르탈인과 비슷했지만 뇌용적과 사지뼈는 현생인류의 것과 거의 같았다. 이 화석은 약 18만~26만 년 전의 것으로 추정되었고, 오랫동안 '로디지아인(人)'으로 불렸으나 일반적으로 호모 사피엔스 로데시엔시스로 분류된다.

카브웨에서 발견된 것과 비슷한 유형의 화석이 1935년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케이프타운 북쪽에 있는 호프필드에서 발견되었는데, 이 화석은 약 40만 년 전의 것으로 추정되었다. 1967년 에티오피아 남부에 있는 오모 강 유역을 탐사하는 과정에서 오모 Ⅰ·Ⅱ로 알려진 2곳의 유적지에서 2개의 두개골과 많은 사지뼈를 찾아냈다(오모화석군). 오모 Ⅱ에서 나온 두개골은 아주 완벽한 형태로서 아프리카의 초기 호모 사피엔스로 간주된다.

오모 Ⅰ의 두개골은 사지뼈와 함께 발견되었는데, 뒷모습을 보면 이 2개의 두개골에는 서로 크게 다른 점이 있다. 오모 Ⅰ의 두개골은 전체적으로 훨씬 더 현대적이지만, 그 사지뼈는 억세고 근육이 잘 발달되어 있으며 일반적으로는 호모 사피엔스의 골격과 거의 유사하다. 오모 강 유역의 유적지에서 발굴된 화석의 가장 큰 특징은 약 13만 년 전의 같은 시기에 살았을 것으로 생각되는 두 화석인의 성격이 혼재되어 있다는 것이다.

오모 Ⅱ의 두개골은 사람속의 초기 형태에 비견될 만한 특징을 가지고 있지만, 오모 Ⅰ 화석은 특히 후두골과 사지뼈에서 현대의 호모 사피엔스의 형태를 예견하고 있다. 1976년에 탄자니아의 라에톨릴에서 화석이 하나 발견되었는데, 그 연대는 약 12만 년 전의 것으로 추정된다.

이 화석(LH 18)은 두개골 대부분과 얼굴뼈 부분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분명히 이 화석은 초기 호모 사피엔스의 특징을 갖고 있었으나 그 형태는 현대적이었다. 이 화석은 호모 에렉투스나 네안데르탈인과는 크게 달랐다.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콰줄루라는 블랙 스테이트와 스와질란드 사이에 있는 보더 동굴 유적지에서도 인간의 화석과 인공물이 발견되었다(보더 동굴 원인). 이곳에서 발견된 3개의 화석은 각각 9만~11만 년 전의 것이다.

이 화석들은 두개골 파편(보더 동굴 1), 턱뼈(보더 동굴 2), 유아의 골격(보더 동굴 3) 등이었다. 이중 두개골은 그 특징이 현생인류의 해부학적인 특징과 유사했기 때문에 호모 사피엔스로 분류되었다.

이스라엘 나자렛 부근의 동굴 유적지인 제벨카프제에서도 여러 해 동안 인류의 유골이 발견되었다. 석기 및 동물뼈와 함께 10여 개체의 화석이 발견되었다. 이 유적지는 약 9만~11만 5,000년 전의 것이다. 여기에서 발견된 화석들 중에서 가장 완벽하게 복원된 두개골은 호모 에렉투스나 네안데르탈인과는 관련이 없었지만 호모 사피엔스와는 분명히 유사한 점을 보여주었다.

화석의 연대측정이 정확하다면 이 화석은 아프리카와 유럽을 연결하는 중동의 초기 호모 사피엔스를 대표하는 것이다. 1960년 그리스의 한 동굴에서 많은 포유류의 뼈와 함께 인류의 두개골이 발견되었다(페트랄로나 두개골). 그 연대에 대해서는 논란이 계속되고 있지만, 일반적으로는 40만 년 전의 것으로 여겨진다.

이 화석은 유럽에서 발견된 가장 오래된 인류의 화석에 속한다. 그러나 이 두개골과 다른 화석 간의 관계는 명확하지 않다. 이 두개골은 호모 에렉투스보다 더 진화했으나 호모 에렉투스의 특징을 일부 가지고 있으며, 한편으로는 네안데르탈인이나 호모 사피엔스와도 다르다.

프랑스의 아라고 동굴에서도 석기와 함께 포유동물의 화석이 많이 발견되었다.

처음에 이 유적지의 연대는 20만 년 전으로 추정되었지만 그뒤에 40만 년 전으로 정정되었다. 어떤 경우에나 이 정도의 연대라면 유럽에서는 가장 오래된 유적지라고 할 수 있다. 이 동굴에서 발견된 두개골은 변형된 얼굴뼈와 원개(圓蓋)의 일부분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런데 이 두개골은 어떤 면에서는 호모 에렉투스와, 어떤 면에서는 네안데르탈인의 두개골과 유사했다. 이때문에 '프레네안데르탈인'(pre-Neanderthal)으로 규정되었으나, 이 화석은 초기 호모 에렉투스의 특징만이 아니라 추운 기후에 적응한 원시적인 호모 사피엔스와 관련된 특징을 동시에 갖고 있다.

이보다 더 유명한 호모 사피엔스 화석은 영국 노스켄트 주에 있는 스완즈컴에서 발견된 화석이다. 먼저 두개골 가운데 2부분을 찾아냈고, 20년 후에 이것들과 함께 후두골을 구성하는 다른 조각이 발견되었다. 이 3개의 뼈는 모두 완벽한 형태를 유지하고 있는데, 젊은이의 것으로 추정된다. 일반적으로 스완즈컴인은 꽤 현대적인 인류로 그 연대는 20만~40만 년 전으로 추정되며, 다른 화석인류와 함께 '매개자 네안데르탈로이드'(Neanderthaloid Intermediate) 집단에 속한다.

이 화석 역시 호모 사피엔스와 네안데르탈인의 특성을 모두 갖고 있기 때문에 모자이크적 진화를 뒷받침해주는 증거로 간주되었다. 독일의 슈투트가르트에서는 스완즈컴인과 거의 동시대에 살았던 다른 화석인류가 발견되었다(슈타인하임두개골). 이 화석은 프랑스의 아라고나 영국의 스완즈컴에서 발견된 화석보다 형태는 더 완벽했지만 약간 변형되어 있었고, 젊은 남자의 오른쪽 얼굴뼈와 두개골로 이루어져 있었다.

두개저(頭蓋底)는 대부분 소실되었으나 작은어금니와 함께 큰어금니를 포함한 일부 이빨과 입천장의 상당 부분이 남아 있었다. 특히 이빨은 호모 사피엔스의 초기 특징을 갖고 있기 때문에 매우 중요하다. 큰어금니는 앞에서 뒤로 갈수록 작아지며 셋째 큰어금니는 나머지 2개의 큰어금니보다 훨씬 더 작다.

역시 이 두개골에도 진화과정상의 원시적인 특징과 앞선 특징이 서로 뒤섞여 있었다.

문화적인 관점에서 초기 호모 사피엔스에는 고려할 만한 점이 몇 가지 있다(인간행동, 문화적 진화). 석기나 돌구조물, 화석화된 동물의 뼈와 이빨 등이 많이 발견되는 대신에, 나무도구가 발견되지 않는 것을 보면 이들은 나무를 사용하지 않았던 것 같다.

이들의 주거지는 인간과 이들의 사냥감이 되었던 동물들에게 모두 필요한 수원지 근처에 있었다(집). 또한 도구를 만드는 데 쓰이는 돌을 구하는 장소가 주거지 가까운 곳에 있었다. 대부분의 상황에서 원시인들은 주거지를 마음대로 선택할 수 없었지만, 빙하기에는 동굴이나 다른 주거지를 찾아서 이동하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한 문제였다.

그러나 간빙기가 온 뒤 기후가 따뜻해지면서 노천에서 임시로 쓸 수 있는 바람막이나 가죽 천막집만으로도 충분히 견딜 수 있었을 것이다. 초기 플라이스토세(약 100만 년 전)에 최초의 석기문화는 각각 주먹도끼와 박편도구를 중심으로 하는 2개의 문화로 나누어진 것 같다. 후기에 접어들면 이 2가지 문화유형 속에서 다양한 요소들이 출현했기 때문에 여러 가지 도구가 나타나게 되었고, 이러한 도구들은 더 특별한 목적에 사용되었던 것 같다.

도구가 발견되는 유적지의 분포를 보면 일반적인 특징이 몇 가지 나타나는데, 예를 들어 주먹도끼 같은 도구는 아프리카·서유럽·아라비아·인도 등에서만 발견되는데 반해, 주먹도끼 문화와 중복되어 나타나는 박편도구 문화는 서유럽만이 아니라 발칸 반도를 지나 서남아시아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아프리카에서는 탄자니아의 올두바이 협곡에서 발견된 것과 같은 역기에서 주먹도끼가 발전되어 나온 것이 확실한데, 이 도구들은 나중에 아슐리안 공작과 같은 주요한 주먹도끼 문화로 발전했다. 서로 배타적인 것은 아니지만 베이징 원인의 문화에서 볼 수 있듯이 대규모 역기문화에 대응하여 박편문화가 발생하기도 했다. 초기의 주요 박편도구문화는 유럽의 여러 유적지에서 발견된 클락토니안 공작이다.

이 문화에서는 역기들이 부싯돌 조각으로 만들어졌다. 후기의 발전된 클락토니안 문화는 타야시안 공작으로 불린다. 박편문화와 주먹도끼문화는 여기서 더 발전하여 무스테리안기(期)로 접어들며, 그뒤에는 차례로 르발루아·솔루트레안 문화 등으로 발전했다. 위의 후기 문화는 모두 후기 플라이스토세(약 10만 년 전)에 살았던 호모 사피엔스와 깊은 관계가 있다.

네안데르탈인과 크로마뇽인

네안데르탈인(Neanderthals/Neandertals)은 후기 플라이스토세에 유럽 대부분의 지역과 지중해 연안에 살던 원시인류를 말한다.

이들의 화석은 중동·북아프리카·아시아 등에서도 발견되었다. 네안데르탈인이라는 이름은 이 화석이 1856년 독일의 뒤셀도르프에서 그리 멀지 않은 네안더 계곡의 한 동굴에서 발견된 데 따른다. 그러나 이것이 원시인류의 화석인지 질병으로 변형된 현대인의 뼈인지를 놓고 곧바로 치열한 논쟁이 일어났다. 네안데르탈인의 기원에 대해서는 명확한 결론이 나지 않았다.

초기의 네안데르탈인은 약 10만~15만 년 전에 살았던 것으로 추정된다. 프랑스에서 발견된 화석은 그 연대가 이즈음으로 보이지만, 그들의 특징은 연대학적으로 네안데르탈인보다 앞섰던 호모 에렉투스보다는 호모 사피엔스와 더 유사하다.

네안데르탈인은 약 7만 5,000~11만 5,000년 전인 리스-뷔름기에 유럽에서 살았던 것 같다. 네안데르탈인의 화석이 분명한 턱뼈·이빨·두개골이 독일·프랑스·벨기에·이탈리아 등에서 발견되었다. 이러한 유물을 통해 네안데르탈인의 외관이나 습성에 대한 정보를 얻을 수 있다.

네안데르탈인은 키가 작고 건장하며 힘이 세었다(골격). 이들의 두개골은 길고 옆으로 넓은 대신에 뒷부분이 납작했다. 또 무거운 이마뼈, 큰 이빨과 작은 광대뼈를 가지고 있었다. 가슴은 넓은 편이었지만, 사지는 상대적으로 짧고 무거웠다. 넓적다리뼈와 팔뚝뼈는 약간 휘었으며, 손과 발은 큰 편이었다. 네안데르탈인은 두 발로 걸어 다녔지만 그 모양이 현대인과는 달랐다.

네안데르탈인은 노천에 주거지를 정하는 경우도 있었으나 기본적으로는 동굴에서 살았다.

동굴의 입구는 돌을 쌓아 작게 만들었다. 이들은 불을 사용했으며, 중간 크기의 동물(예를 들면 염소나 작은 사슴)을 사냥했고, 큰 짐승들이 사냥한 동물의 고기를 먹기도 했다. 또 다양한 석기와 나무로 된 창을 만들어 사용했다. 네안데르탈인은 시체를 매장했으며 병에 걸리거나 다친 사람들을 오랫동안 보살펴주었다. 때때로 인간의 유골과 함께 발견되는 동물의 뼈가 의례적으로 다루어진 점을 보면 이들에게는 원시적인 형태의 종교가 있었던 것 같다.

네안데르탈인의 분류에 대해서는 여전히 논의가 계속되고 있다. 처음에 이들은 호모 네안데르탈렌시스라는 독립적인 종으로 분류되었는데, 나중에 현생인류인 호모 사피엔스의 아종(亞種)인 호모 사피엔스 네안데르탈렌시스로 분류되었다.

그러나 후에 원래의 분류가 옳다는 주장도 제기되었다. 인류의 진화과정에서 네안데르탈인이 어떤 역할을 했는지도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았다. 이들은 일부 지역에서는 현생인류에 흡수되기도 했으나 다른 지역에서는 완전히 멸종하고 말았다.

크로마뇽인(Cro-Magnons)은 해부학적으로 호모 사피엔스에 속하는 후기 구석기(3만 5,000~1만 년 전)의 인류이다. 크로마뇽인의 화석은 1868년에 남프랑스의 도르도뉴에 있는 크로마뇽의 한 동굴에서 처음 발견되었다. 이 동굴을 조사한 사람은 프랑스의 루이 라르테였고, 5개 지층 중 제일 위의 지층에서 발견된 1만~3만 5,000년 전의 화석인에 크로마뇽인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크로마뇽인은 건장하고 힘이 세며, 키는 166~171㎝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들의 골격은 일반적으로 단단하고 무겁다. 이마는 곧고 바르며 이마뼈는 얇은 편이다. 두개골이 길고 좁은 대신에 얼굴은 짧고 넓적하다. 뇌용적은 약 1,600㎤으로서 현대인의 평균 용적보다 더 크다.

크로마뇽인은 판단의 기준이 될 만한 화석이 거의 남아 있지 않기 때문에 그 이상의 신체적인 특징을 놓고 어떤 평가를 하기는 어렵다(화석의 기록). 다만 이들은 다른 초기 인류보다 키가 컸을 것으로 여겨지며, 근육도 강했을 것으로 보인다. 크로마뇽인이 인류의 진화과정에서 정확히 어디에 속하는지는 명확하지 않다.

일반적으로는 블레이드, 스크레이퍼, 엔드 스크레이퍼, 발화구(發火具)로 쓰인 도구, 정교한 골각기 등 다양한 도구들로 대표되는 오리나시안 문화와 연관된다.

이들은 또한 짐승의 가죽을 부드럽게 하는 긁개도 만들었던 것 같다. 일부 크로마뇽인은 유배석도(有背石刀)를 만들었던 그라베티안(古페리고르디안) 공작과도 관련이 있다. 암벽에 기대어 지은 달개집이나 완전히 돌로 지은 원시적인 형태의 오두막도 발견되지만, 이들의 거주지는 대부분이 돌출부가 있는 동굴이나 얕은 동굴이었다. 암굴 주거지는 1년 내내 사용되었다. 크로마뇽인은 새로운 주거지를 찾아야 할 때나 환경의 변화로 인해 이동해야 할 때를 제외하고는 한 곳에 정착해 살았다.

네안데르탈인과 마찬가지로 크로마뇽인도 시체를 매장했다.

최초로 예술을 시작한 인류는 바로 이들이었다. 크로마뇽인들은 인간만이 아니라 동물들의 모습을 새기거나 조각상을 만들었다. 이들의 예술품에 나타나는 인간이 주로 가슴이 크고 엉덩이가 넓은, 임신한 듯이 보이는 여자인 것으로 보아 이 모델들은 모두 다산(多産)과 관련이 있는 것 같다.

프랑스와 스페인에 있는 크로마뇽인의 동굴에서 발견된 동물의 그림은 매우 아름답다(동굴화). 이 그림들은 크로마뇽인들에게 주술적·제의적인 의미를 가졌던 것 같다. 높은 예술적 수준으로 볼 때 크로마뇽인은 원시적인 아마추어가 아니라 다양한 예술적 매개와 형식을 실험했던 것이 분명하다. 정교하게 장식된 도구와 무기를 보면 이들이 종교적인 이유에서만이 아니라 미학적인 목적에 예술을 활용했음을 알 수 있다.

크로마뇽인이 얼마나 오랫동안 지속했는지, 또 그들에게 어떤 일이 생겼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다. 아마도 이들은 나중에 유럽에서 살게 된 어떤 현생인류 집단에 흡수되었을 것이다. 중석기 시대(BC 8000~5000년 전)와 신석기 시대(BC 5000~2000년 전)에 살았던 크로마뇽인의 특징을 일부 가지고 있는 원시인의 화석(흔히 크로마노이드로 불림)이 발견되었다.

아시아와 오스트랄라시아의 호모 사피엔스

네안데르탈인과 크로마뇽인은 유럽과 서아시아에서 주로 발견되는 화석인류이지만, 동아시아와 오스트랄라시아에서도 초기의 호모 사피엔스 화석이 다수 발견되었다.

전체적으로 이들은 호모 에렉투스에 속하는 지역집단의 후손이지만, 일부 학자들은 이들을 후에 그 지역에 살게 된 인류의 직접적인 조상으로 여긴다. 아시아의 초기 호모 사피엔스 화석은 중국에서만 발견되었다. 중국 랴오닝 성[遼寧省] 진뉴 산[金牛山]에서 발견된 꽤 완벽한 상태의 골격과, 산시 성[陝西省] 다리[大荔]에서 발견된 두개골은 중기 홍적세말의 것이다.

두 화석 가운데 더 오래된 다리의 두개골은 30세가 안 되는 젊은 남자의 것으로 밝혀졌다. 이 두개골과 유사한 특성들이 진뉴 산에서 발견된 여자의 두개골(몸체의 골격도 함께 발견됨)에서도 나타난다. 이 화석들은 약 10만~20만 년 전의 것이다. 광둥 성[廣東省]의 마바[馬埧] 유적지에서는 여자의 두개골 파편이, 다른 몇 곳의 유적지에서는 이빨 화석이 나왔다.

후기 플라이스토세 초의 호모 사피엔스 화석들은 이보다 더 파편화되어 있으며, 중기 플라이스토세 화석과 가장 큰 관련이 있는 화석은 저우커우뎬, 류장 강[柳江]과 라이빈[來賓 : 광시[廣西]), 쯔양[資陽 : 쓰촨[四川]) 등에서 발견된 것들이다. 자바 동부의 응간동에서 발견된 흔히 솔로인으로 불리는 초기 호모 사피엔스 화석은 자바 중부의 삼붕마찬 유적지에서 발견된 두개골과 같은 이행기 표본 등을 통해 훨씬 오래된 인도네시아의 호모 에렉투스 조상과 분명하게 연결된다.

오스트랄라시아에서 발견된 화석들의 상대적인 순서는 분명히 밝혀졌지만 각 화석의 정확한 연대는 아직 알아내지 못했다. 트리닐의 솔로 강 유역에서 발견된 삼붕마찬 두개골은 중기 플라이스토세의 것이다. 나중에 응간동에서 중기 또는 후기 플라이스토세 초의 정강이뼈와 얼굴 부분이 없는 두개골이 발견되었고, 그 근처에서 다른 화석들이 발견되었다. 솔로인의 유골이 의도적으로 매장된 것도 아니고 다른 고고학적인 관련성도 없지만 이들의 행동에 관해서 얼마간 추론하는 것은 가능하다.

두개골에 난 상처를 치료한 흔적이 있는데, 남자들의 두개골보다 여자들의 두개골에서 상처가 더 많이 발견되었다. 얼굴이 없는 두개골이 한데 모아져 있는 것을 놓고 이것들이 그릇으로 쓰였다고 추정할 수 있다. 그러나 신체의 특정 부위가 제한된 수효로 발견되는 것이 죽은 자를 제의적으로 취급했기 때문인지의 여부는 확실하지 않다. 인도네시아의 자바인이 어디에선가 큰 바다를 건너 오스트레일리아 최초의 인구집단이 된 현생 호모 사피엔스와 관련이 있음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이러한 연관성은 오스트레일리아 뉴사우스웨일스의 윌런드라 호(湖) 주변에서 발견된 3만 년 이상 된 두개골에서 확실히 나타난다. 이 남자의 화석은 두개골의 크기와 각 부위의 비율 면에서 응간동의 남자 화석과 유사하다.

아프리카의 호모 사피엔스

더 많은 화석들이 발견되고 연대 측정법이 더욱 정교해짐에 따라 사하라 사막 이남에서 발견된 40만 년 이상 된 화석들의 연대를 확정짓는 일이 가능해졌다.

연대학적으로 호모 사피엔스는 초기 원시 호모 사피엔스, 후기 원시 호모 사피엔스, 현생(해부학상) 호모 사피엔스 등 모두 3가지로 분류된다. 첫번째 유형은 약 20만~40만 년 전의 인류로서 카브웨인과 호프필드의 화석으로 대표된다. 약 10만~20만 년 전의 인류인 2번째 유형은 오모 Ⅱ와 LH 18 두개골로 대표된다. 해부학상 현대적인 인류로 진화하는 과정은 오모 Ⅰ과 보더 동굴 표본을 통해서 관찰할 수 있다.

북아프리카의 화석 기록은 명확하지 못하기 때문에 사하라 사막 이남의 화석과 이 지역의 화석 간의 연관성을 명확히 밝히기는 매우 어렵다. 호모 사피엔스의 중심지와 현생인류의 기원지로는 아프리카가 꼽힌다.

아프리카 이외의 지역에서 나타나는 원시인류와 현생인류 간의 화석상의 불연속성 및 나중에 이 지역들에서 현생인류가 출현했던 사실은 아프리카가 현생인류의 유일한 발상지라는 추측을 가능하게 한다. 아프리카와 중동과 유럽에서는 현생인류가 네안데르탈인을 대신하게 되었다.

그러나 이 과정중에 이들 집단간에 뒤섞임이 일어났을 가능성도 있다. 중동에서의 화석기록은 분명하지 않으나 아프리카에서 중동으로 현생인류가 이동해갔을 수도 있다. 현생인류가 지구 곳곳으로 퍼져갈 때 어떤 지역에 국한된 원시개체군과 퍼져나가는 현생개체군 사이에 일어났던 유전자 확산의 정도에 대해서는 많은 연구가 필요하지만, 분자생물학적인 연구 결과는 현생인류가 아프리카에서 비롯되었다는 주장을 지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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