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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가원

다른 표기 언어 李家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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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1917. 4. 6, 경북 안동
사망 2000. 11. 9, 서울
국적 한국

요약 한국학의 발전을 위해 한문학, 중문학, 동양철학 분야의 수많은 고전을 알기 쉽게 풀이했다.
이황의 14세손으로 23세까지 한학만을 배웠다. 이때 배운 한학은 뒤에 고전문학을 연구하는 데 가장 큰 밑거름이 되었다.
1954년 성균관대학 문리대 교수가 되었으나 1956년 총장이었던 김창숙과 함께 이승만 정권에 항거하여 파면당했다. 그 뒤 날마다 국립도서관에 나가 실학에 관한 자료를 찾아 자료집 <실학연구지자>를 만들었다. 1959년 연세대학교 국문과 교수로 취임하여 1982년 정년퇴임했다. 대표 저서인 <연암소설 연구>는 박지원 소설의 사회배경과 문학관을 10여 년 동안 고찰, 분석하여 4년 동안 집필한 끝에 펴낸 책이다. 그밖에 <중국문학사조사>(1959), <한국한문학사>(1961) 등을 포함하여 10여 권의 저서를 펴냈다. 1986년 정음사에서 <이가원전집> 22권을 펴냈다.

한국학의 발전을 위해 한문학·중문학·동양철학 분야의 수많은 고전을 알기 쉽게 풀이했다. 본명은 참연(慙淵). 아호는 연민(淵民).

이황의 14세손으로, 엄격한 유교 집안에서 태어나 23세까지 한학만을 배웠다.

이때 배운 한학은 뒤에 고전문학을 연구하는 데 가장 큰 밑거름이 되었다. 1940년 서울로 올라와 명륜전문학원에 입학했으며, 재학시절 '사서연구회'를 만들어 〈삼국유사 신역(新譯)〉(1946)을 펴냈다. 1952년 성균관대학교 국문과를 졸업한 뒤, 1954년 동 대학 문리대 조교수가 되었으나 1956년 총장이었던 김창숙과 함께 이승만 정권에 항거하여 파면당했다. 그 뒤 날마다 국립도서관에 나가 실학에 관한 자료를 찾아 자료집 〈실학연구지자〉를 만들었다. 1959년 연세대학교 국문과 교수로 취임하여 1982년 정년퇴직할 때까지 23년 동안 재직했다. 1959년 문교부국어심의회 위원, 1960년 한국교수협회 간사, 1962년 한국어문학회 이사 등을 역임했다. 1966년 성균관대학교 이사를 지냈고, 같은 해 성균관대학교에서 〈연암소설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1970~74년 유도회총본부 위원장, 1975년 한국한문학연구회 회장, 1978년 퇴계학연구원 이사 등을 지냈다. 1983년 단국대학교 대학원 초대 교수가 되었고, 이후 석좌교수를 지냈다. 1986년 그동안 애써 모은 박지원의 〈열하일기〉 원본, 정선의 산수화 등 3만여 점의 골동품과 서화를 단국대학교 부설 퇴계학연구소에 기증했다. 대표 저서인 〈연암소설 연구〉는 박지원 소설의 사회배경과 문학관을 10여 년 동안 고찰·분석하여 4년 동안 집필한 끝에 펴낸 책이다. 그밖에 〈금오신화역주〉(1953)·〈중국문학사조사〉(1959)·〈한국한문학사〉(1961) 등을 포함하여 10여 권의 저서를 펴냈다. 1986년 정음사에서 〈이가원전집〉 22권을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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