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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 BC 3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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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망 | AD 14, 레기움 |
국적 | 로마 |
요약 방탕했기 때문에 아버지인 로마 황제 아우구스트스에게 추방당했다. 율리아는 마르쿠스 마르켈루스와 결혼했으나 얼마 뒤 그가 죽자 아우구스투스의 부관인 아그리파와 재혼했다. BC 12년 아그리파가 죽자 아우구스의 아내 리비아는 이전 결혼에서 얻은 두 아들 테베리우스와 드루수스를 제위 계승자로 삼도록 남편을 설득했다. 그 결과 티베리우스는 황제의 명령에 따라 이혼하고 BC 11년 율리아와 결혼해야만 했다. 원치 않던 결혼으로 인해 율리아는 방탕한 생활을 시작했다. 결국 나쁜 행실을 아버지에게 발각당한 율리아는 BC 2년 캄파니아 지방의 판다타리아 섬으로 추방당했다. 아우구스투스의 뒤를 이어 제위에 오른 티베리우스가 그녀에게 할당된 수당 지급을 끊었기 때문에 그녀는 영양실조로 죽었다.
방탕했기 때문에 아버지에게 추방당했다.
그녀의 어머니 스크리보니아는 율리아가 태어난 지 며칠 만에 아우구스투스와 이혼했다. 율리아는 엄격한 교육을 받았으며, 언행을 항상 감시당했다. 마르쿠스 마르켈루스와 결혼했으나 그는 얼마 뒤 죽었고(BC 23), 다시 아우구스투스의 부관인 아그리파와 재혼했다(BC 21). 이 사이에 태어난 아들들 중 장남과 차남은 BC 17년 아우구스투스의 양자가 되어 각기 가이우스와 루키우스 카이사르라는 이름을 받았다. 그밖의 자녀로는 셋째 아들 아그리파 포스투무스와 딸들인 율리아와 아그리피나가 있었다.
BC 12년 아그리파가 죽자 당시 아우구스투스의 아내 리비아는 이전 결혼에서 얻은 두 아들 티베리우스와 드루수스를 제위 계승자로 삼도록 남편을 설득했다. 그결과 BC 11년 티베리우스는 황제의 명령에 따라 이혼하고 율리아와 결혼해야만 했다. 그러나 이는 율리아와 티베리우스 둘 다 원하지 않던 불행한 결혼이었다.
이때부터 율리아는 방탕한 생활을 시작했으며 로마 전체에 그녀의 소문이 퍼졌다. 율리아가 낳은 아들이 어린 나이에 죽자(BC 6), 티베리우스는 이후 율리아를 로마에 남겨두고 자청해서 망명길에 올랐다. 결국 나쁜 행실을 아버지에게 발각당한 율리아는 처형하겠다는 아버지의 위협을 받은 뒤 BC 2년 캄파니아 지방 해변 앞바다의 판다타리아 섬으로 추방당했다. 그뒤 율리아는 레기움으로 옮겨갔고, 아우구스투스의 뒤를 이어 제위에 오른 티베리우스가 그녀에게 할당된 수당 지급을 끊었기 때문에 결국 그녀는 영양실조로 죽었다. 율리아의 부정은 의심할 바 없지만 그녀는 재기넘치고 지적인 여성으로서 여러 사람들의 사랑을 받았다. 그러나 아우구스투스는 그녀를 "내 몸에 난 종기"라 부르고 전혀 자비를 베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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