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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 1777(정조 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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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망 | 1861(철종 12) |
국적 | 조선, 한국 |
요약 조선 후기의 문신·학자.
본관은 전주. 자는 성백(誠伯), 호는 정재(定齋). 아버지는 진사 회문(晦文)이며, 어머니는 한산이씨(韓山李氏)이다. 이상정(李象靖)의 외증손으로 그의 문인인 유장원(柳長源)·남한조·유범휴(柳範休) 등에게 배웠다. 1805년(순조 5) 별시문과에 합격하여 전적·정언·지평·세자시강원문학 등을 지냈다. 그뒤 교리·우부승지·공조참의를 거쳐 1847년 대사간, 1853년(철종 4) 한성좌윤·병조참판 등을 지냈다. 1855년 장헌세자(莊獻世子:사도세자)의 추존(追尊)을 청하는 소를 올렸다가 대사간 박내만(朴來萬)의 탄핵을 받고 상원(祥原)에 유배되었으나 곧 석방되었다. 1860년 동지춘추관사가 되었다. 1857년부터는 뇌암(雷巖)의 만우재(晩愚齋)에서 후학을 양성했다. 그는 이활물설(理活物說)을 주장하여 이상정의 학설을 더욱 주리적(主理的)으로 심화했다. 즉 이는 동정할 수 있는 작용이 있을 뿐만 아니라 이러한 자발적 동정으로부터 음양오행(陰陽五行)의 기(氣)가 나온다고 했다. 또한 천도(天道)가 유행하여 만물을 발육한다든가 태극(太極)의 동정으로 음양이 생(生)한다든가 하는 것이 모두 이의 동정을 뜻하는 것이라고 했다. 4단에 있어서는 이가 스스로 감발할 수 없고 감발하는 것은 오직 기라고 한다면, 그것은 천도는 유행하는 것이 아니고 유행하는 것은 음양 스스로라고 하는 것이 되므로 부당하다고 하여 4단이발(四端理發)을 주장했다. 이진상(李震相)·김흥락(金興洛)·유종교(柳宗喬)·이돈우(李敦禹)·권영하(權泳夏)·이석영(李錫永) 등이 그의 학통을 이었다. 저서에 〈정재집〉·〈예의총화 禮疑叢話〉·〈가례집해 家禮輯解〉·〈주절휘요 朱節彙要〉·〈태극도해 太極圖解〉·〈대학동자문 大學童子問〉·〈대산실기 大山實記〉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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