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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 1827(순조 2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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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망 | 1873(고종 10) |
국적 | 조선, 한국 |
요약 조선 말기의 화가.
본관은 한양. 자는 선영·야군, 호는 혜산. 도화서 화원이었으며, 벼슬은 사과를 지냈다.
1839년(헌종 5) 전기(田琦)·김수철(金秀哲)·이한철(李漢喆)·유재소(劉在韶) 등과 함께 김정희(金正喜)에게 화평을 통해 그림지도를 받았다. 이때 김정희는 그의 그림에 대해 "필치가 속기는 없으나 적윤의 뜻이 모자란다"고 지적했다.
1852년과 1861년 철종어진 제작에 참여했고, 1872년에는 고종어진 도사의 수종화사로 일했다. 유최진·조희룡(趙熙龍)·유재소·전기·나기(羅岐)·조중묵(趙重默) 등 여항문인 서화가와 벽오사를 통해 친교했으며, 1855년과 1861년에는 벽오사 오로회에 참석하고 그 기념화를 그리기도 했다.
산수·도석인물·풍속·화조 등 다양한 소재를 다루었다. 화풍은 김정희파의 남종문인화풍을 따랐으나, 진경산수화·풍속화·화조화에서는 김홍도(金弘道)의 영향을 발견할 수 있다. 조선 말기의 회화풍토와 경향을 가장 전형적으로 보여주는 화가의 한 사람이면서 장승업(張承業)의 스승으로도 알려져 있어 주목된다.
대표적인 작품으로는 서울 실경을 그린 〈세검정도 洗劍亭圖〉(국립중앙박물관)와 〈내원도 內院圖〉(국립중앙박물관)를 비롯하여 〈대쾌도 大快圖〉(서울대학교 박물관)·〈오수삼매도 午睡三昧圖〉(간송미술관)·〈화외소거도 花外小車圖〉(국립중앙박물관)·〈미원장배석도 米元章拜石圖〉(개인 소장)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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