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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헬름 2세와 비스마르크의 실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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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8년 3월 비스마르크가 두려워한 파국이 찾아왔다. 빌헬름 1세가 서거한 것이었다. 빌헬름 1세의 뒤를 이은 프리드리히 3세는 선왕이 죽기 전부터 병상에 있다가 겨우 99일로 재위를 마감했다.

새로 독일의 황제가 된 사람은 빌헬름 2세(1888~1918 재위)였으나 비스마르크는 그를 조정하는 데 필요한 조치를 아무것도 해두지 않았다. 여전히 비스마르크의 지위는 튼튼해 보였다. 정적으로 볼 만한 사람도 없었다. 1886년에는 외교문제의 재량권을 얻고자 아들 헤르베르트를 장관으로 임명했다. 헤르베르트는 아버지에게서 격렬한 성격만을 물려받아 비스마르크를 최악의 방향으로 몰아갔다.

그 뒤 비스마르크는 마치 1862년에 빌헬름 1세를 그렇게 했듯이 빌헬름 2세를 자기가 조정하는 꼭두각시 인형으로 만들려 했다. 그러나 빌헬름 2세는 빌헬름 1세보다 뛰어난 정치가였고 비스마르크 이상으로 신생 독일을 이해했다. 빌헬름 2세는 국내문제에서는 공장법(工場法)이나 노동조합의 승인을 포함한 사회개혁정책을 제창했다. 외교면에서는, 러시아와의 우호를 유지하며 오스트리아에 대한 지지를 거부하는 비스마르크의 신중한 정책을 부인했다. 그 대신 영국과 동맹을 맺고 싶어했으며 오스트리아를 지지하고 싶어했다. 또 근동에서 독일경제에 이익이 되는 사업을 대규모로 추진하기를 원했다.

비스마르크가 만난 최후의 위기는 그의 정치 생명에 종지부를 찍었다. 1890년 의회가 사회주의자 진압법안을 부결하자 비스마르크는 의회를 해산했다. 그러나 의회 해산에 이은 총선거에서 비스마르크 측의 여러 정당들은 패배했고 반면 진보당, 사회민주당, 가톨릭 중앙당의 총의석이 과반수를 웃돌았다. 비스마르크는 쿠데타 실행을 제안했다.

제국을 만든 여러 군주가 제국 해체를 선언하고, 보통선거를 폐지하며 의회 권한의 삭감을 포함한 새로운 헌법을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빌헬름 2세는 그 제안에 따르기를 거부했다. 비스마르크는 황제를 고립시키려고 내각 총사퇴를 호소했지만 그를 지지한 것은 아들 헤르베르트뿐이었다. 1890년 3월 18일 빌헬름 2세는 비스마르크에게 사퇴를 요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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