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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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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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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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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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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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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학
개요
15~17세기까지 과학적 사고는 혁명을 겪었다.
그리스의 자연철학을 대신하는 새로운 자연관이 등장했을 뿐만 아니라, 과학 그 자체가 독자적 분야로 등장했다. 이 시기 과학의 특징으로는 추상적 사고, 정량화의 중시, 기계적 자연관, 실험적 방법의 도입, '왜'가 아닌 '어떻게'의 추구 등을 들 수 있다.
천문학
과학혁명은 천문학에서 시작되었다.
코페르니쿠스는 프톨레마이오스의 천문학이 등속 원운동의 원칙에 위배되며, 조화와 단일성이 부족하다는 등의 이유로 이를 포기했다. 대신 코페르니쿠스는 태양과 지구의 위치를 바꾸어 태양을 우주의 중심으로, 지구를 그 주위를 도는 행성으로 하는 체계를 만들었다. 1543년 출판된 코페르니쿠스의 책 〈천구의 회전에 관하여 De revolutionibus orbium coelestium〉는 천문학자들의 필독서가 되었다.
16세기 천문학자 티코 브라헤는 프톨레마이오스와 코페르니쿠스의 체계를 모두 거부했지만 새로운 천문학의 수용에 결정적 역할을 한 천문 관측을 수행했다.
1609년 독일의 천문학자 케플러는 티코 브라헤의 자료에 근거해서 행성의 궤도에 대한 다음과 같은 2가지 법칙을 발표했다. 즉 ① 행성은 태양을 1초점으로 하는 타원운동을 한다. ② 태양으로부터 행성에 그은 선분은 같은 시간에 같은 면적을 그린다. 이로 인해 등속 원운동이라는 오래된 관념이 깨지게 되었지만, 케플러의 법칙은 왜 행성이 타원 운동을 하는가 하는 근본적인 문제를 제기했다. 1618년 케플러는 행성의 공전 주기의 제곱은 태양으로부터의 평균거리의 세제곱에 비례한다는 그의 3번째 법칙을 발표했다.
한편 1610년 갈릴레오는 망원경을 사용해 달의 표면이 울퉁불퉁하고, 목성이 지구처럼 위성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관측했다.
그는 또한 금성의 위상 변화로부터 금성이 지구가 아니라 태양의 주위를 공전함을 증명했다. 이러한 관측 결과는 코페르니쿠스의 우주 체계를 지지해주었다.
역학
코페르니쿠스의 체계는 지구를 운동하는 행성으로 바꾸었으며, 그에 따라 아리스토텔레스의 물리학과는 양립할 수 없는 수많은 문제를 야기시켰다.
갈릴레오는 임페투스 역학에서 출발했지만, 곧 이를 버리고 새로운 우주체계에 잘 맞는 수학적인 근대 물리학의 기초를 발전시켰다. 그는 자유낙하법칙(낙하한 거리는 시간의 제곱에 비례한다는 것)을 얻어내고, 이를 초기 형태의 관성의 법칙과 결합시켜 투사체 운동이 포물선을 그린다는 것을 밝혀냈다. 또한 그는 관성의 법칙을 사용해서 지구의 운동과 관련된 물리적 문제인 "왜 쏘아올린 화살은 제자리에 떨어지나", "사람은 왜 지구가 도는 것을 느끼지 못하나" 등을 설명했다.
17세기 프랑스 철학자 르네 데카르트는 자연현상을 물질과 그것의 운동으로 설명하는 기계적 철학을 제창했다. 그는 힘이 진공을 가로질러 다른 물질에 작용할 수 있다는 것을 부정했으며, 공간을 채우는 물질적 실체인 에테르를 통해서만 전파가 가능하다고 생각했다. 또 그는 물체가 관성운동에 따라 직선운동을 하려는 경향이 있지만, 한 물체가 또다른 물체가 차지한 공간을 점유할 수 없기 때문에, 실제 가능한 운동은 소용돌이 운동이라고 했다.
데카르트에 의하면 모든 자연현상은 물체의 충돌에서 기인하며, 따라서 정량적인 충돌 법칙을 발견하는 것이 중요한 문제가 되었다.
네덜란드의 물리학자 크리스티안 호이헨스는 이 분야에서 중요한 업적을 남겼다. 아이작 뉴턴은 그의 기념비적인 〈자연철학의 수학적 원리 Philosophiae Naturalis Principia Mathematica〉(1687, 〈프린키피아 Principia〉라고도 함)에서 과학혁명기의 역학과 천문학 분야에서 제기된 주요 문제들을 해결함으로써 과학혁명을 완결했다.
이 책은 케플러의 법칙에 물리적 근거를 제공했으며, 일련의 법칙으로 천체 물리와 지구상의 역학을 통합했다. 또한 뉴턴의 힘의 개념은 기계적 철학과 수학적 전통을 종합했다. 뉴턴은 이 모든 결과를 다음의 3법칙에서 밝혀냈다. 첫째, 모든 물체는 그 물체에 가해진 힘에 의해 그 상태를 바꾸도록 강요받지 않는 한 정지 상태나 직선 운동의 상태를 계속하려 한다.
둘째, 운동의 변화는 주어진 힘에 비례하며 그 변화의 방향은 힘이 주어진 방향과 같다. 셋째, 모든 작용에 대해 항상 반대 방향의 같은 크기의 반작용이 존재한다. 이중 2번째 법칙은 1750년 스위스 수학자 레온하르트 오일러에 의해 "힘은 질량에 가속도를 곱한 값(F=ma)"이라는 형태로 표현되었다.
뉴턴은 임의의 두 물체 사이에 중력이 작용하며 이 중력이 진공을 통해 작용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두 물체의 중심간의 거리의 제곱에 반비례하는 중력을 사용해서 행성에 대한 케플러의 법칙과 갈릴레오의 자유낙하법칙을 유도했다.
광학
그리스의 에우클레이데스(유클리드, BC 300)로부터 다루어지기 시작한 광학은 이슬람의 알하젠을 거쳐, 13세기에 이르면 로저 베이컨, 로버트 그로스테스트에 의해 발전했다.
17세기 케플러는 맺힌 상의 한 점이 물체의 한 점과 대응한다는 이론을 내놓았으며, 이를 바탕으로 렌즈의 기하학적 이론을 주장했다. 데카르트는 빛을 기계적 철학의 연구 주제로 포함시켰으며, 이로부터 반사·굴절의 법칙과 같은 수학적 법칙을 유도했다.
17세기의 광학, 특히 색깔의 문제와 관련된 가장 중요한 업적은 뉴턴이 발견했다. 데카르트는 빛 입자의 회전 속도의 차이로 색의 차이를 설명했음에 반해, 뉴턴은 실험을 통해 백색광이 서로 다른 색깔을 갖는 광선의 혼합임을 보였고 프리즘을 통과한 빛이 왜 서로 다른 색깔의 광선으로 나누어지는가를 설명했다. 또 '뉴턴의 원무늬'라 부르는 간섭 현상도 설명했다.
뉴턴은 빛을 입자로 보았지만 반면에 공간을 채우고 있는 에테르의 가상적 진동도 완전히 배제하지는 않았다. 반면 호이헨스는 빛을 매질의 진동으로 간주하고, 파면(波面)이라는 개념을 정립해 이로부터 반사와 굴절, 그리고 당시 새롭게 발견된 복굴절을 설명했다.
화학
화학은 철학·연금술·야금학·의학이라는 다양한 근원을 가지고 있다.
특히 연금술은 많은 화학 물질에 대한 오래된 경험을 화학에 제공했다. 화학은 17세기 기계적 철학의 등장과 더불어 다른 분야와 용어를 공유하게 됐다. 기계적 철학은 다른 과학 분야에 성공적으로 적용되었고, 이러한 성공은 화학자들로 하여금 화학을 기계적 철학의 용어로 재해석하게 하는 계기를 제공했다. 로버트 보일은 모든 화학적 성질을 기계적 철학의 용어로 설명함으로써, 기계적 철학에 실험적 증거를 부여하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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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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