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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 709/714, 시리아(요르단) 알후마이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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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망 | 775. 10. 7, 메카 근처 |
국적 | 아바스 |
요약
아바스 왕조의 2번째 칼리프(754~775 재위).
정식 이름은 Abū Ja ⁽far Abd Allāh al-Manṣūr ibn Muḥammad.
일반적으로 아바스 칼리프 왕조의 실질적인 창설자로 여겨지며 바그다드에 수도를 세웠다(762~763). 687~688년 헤자즈에서 이주한 뒤의 아바스 가문의 고향인 알후마이마에서 태어났다.
아버지 무하마드는 아바스의 증손이었고 어머니는 베르베르족 출신의 노예였다.
호라산에서 온 반란군에 의해 최초의 칼리프 왕조였던 우마이야 왕조는 전복되었다. 그런데 이 반란군 대부분은 아바스 가문이 퍼뜨린 선전의 영향을 받았기 때문에 왕조가 무너지기 직전, 최후의 우마이야 왕조 칼리프 마르완 2세는 아바스 가문의 우두머리인 알 만수르의 형 이브라힘을 잡아들였다.
알 만수르는 나머지 식구들과 이라크의 쿠파로 도망쳤는데, 쿠파에서는 호라산 반란세력의 지도자 몇 명이 알 만수르의 다른 형인 아부 알 아바스 앗 사파흐에게 충성을 맹세해왔다. 이브라힘이 감금된 채로 죽은 뒤 앗 사파흐는 최초의 아바스 왕조 칼리프가 되었다. 알 아바스가 재위 5년 만인 754년에 죽자, 아바스 칼리프 왕조를 건설하는 무거운 짐은 알 만수르에게 떨어졌다.
그는 마지막 남은 우마이야 저항자들을 소탕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형이 칼리프로 있는 동안 그는 군대를 이끌고 메소포타미아로 가서, 그곳 총독에게 최후의 우마이야 왕조 칼리프의 죽음을 알려 항복을 받아냈다. 이라크에서는 우마이야 왕조의 마지막 총독이 자신의 군대를 이끌고 요새에 도피해 있었는데, 알 만수르와 칼리프로부터 안전을 약속받고 항복했지만 결국 추종자들과 함께 처형되었다.
알 만수르의 칼리프 지위에 위협이 된 것은 754년 삼촌 아브드 알라가 일으킨 반란이었는데, 그는 조카보다 자신에게 칼리프가 될 자격이 있다고 생각했다.
알 만수르는 우마이야 왕조전복에 참여했던 반란군 지도자 중의 하나인 아부 무슬림의 도움으로 간신히 위험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그러나 그가 칼리프가 되자마자 취한 조치 중 하나는 자신이 칼리프가 되도록 도와주었던 아부 무슬림을 죽인 일이다. 이러한 조치들은 잠재적인 정적들을 제거함과 동시에 또한 아바스 가문의 과격한 지지자를 떨쳐내는 효과도 있었다.
이러한 정책에 대한 반작용으로 많은 반란이 발생했는데 여기에는 이슬람 발생 이전의 이란 종교도 몇 가지 관련되었다.
755년 호라산에서는 마기(여기서는 정통 조로아스터교인이 아니고 이단인 마즈다크교의 추종자라는 의미일 것임)의 한 사람이라고 하는 순바드라는 사람이 아부 무슬림의 살해에 대한 복수를 요구하며 반란을 일으켰다. 아부 무슬림의 이름과 관계있는 다른 무리인 라완디야는 영혼의 환생에 대한 믿음과 알 만수르가 자신들의 신일 것이라는 믿음으로 가득 차 있었다.
이러한 과격한 믿음 때문에 757~758년 알 만수르는 그들을 탄압하지 않을 수 없었다. 767년 호라산에서 일어난 마지막 반란은 예언자로 자처한 사람이 주도한 것으로 역시 진압되었다.
아마도 우마이야 왕조 타도에 참여했던 사람들 중에서 가장 크게 실망한 사람들은, 자신들이 예언자 마호메트의 가장 가까운 남계(男系) 친척인 알리 가문 출신 지도자를 위해 싸운다고 믿었던 사람들이었을 것이다. 아바스 가문이 권력을 알리 가문에게 넘기려고 하지 않는다는 것이 명확해지자, 이 파는 다시 반대세력이 되었다.
알 만수르가 알리 가문을 가혹하게 취급하자 이 파가 762~763년에 반란을 일으켰지만 곧 진압되고 말았다. 그러나 알 만수르의 위업은 단순히 군사력에 의해 이루어진 것이 아니었다. 가장 영구적인 기념물은 바그다드 시로서 그의 명령으로 762년에 건설되기 시작했다. 바그다드를 건설하려는 결정을 내린 것은 한편으로는 이라크의 주요도시인 바스라, 그리고 특히 쿠파가 불안했기 때문이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아바스 가문의 새로운 터전을 마련하려는 알 만수르의 포부 때문이었다.
그가 바그다드 건설에 필요한 재료를 최후의 토착 이란 왕조였던 크테시폰의 폐허에서 가져와 사용한 것은 의미있는 일이었다. 새로운 수도를 건설한 또다른 이유는 급속히 성장한 관료제를 수용하기 위해서였다. 알 만수르는 아바스 왕조에 안정적인 기초를 제공하기 위해 이란 제도의 개념에서 영향을 받아 관료제를 발전시켰다.
이상과 같은 정치적·군사적 방법에 의해 알 만수르는 아바스 칼리프의 왕조를 굳건히 세웠다.
나아가 자신의 아들 알 마디를 계승자로 결정해서 장래의 모든 아바스 왕조 칼리프 지위를 자신의 후손이 이을 수 있게 했다. 알 만수르는 갈색 피부와 숱이 적은 턱수염에 키가 크고 마른 사람으로 묘사되고 있다. 그는 단순하고 검소했으며, 시가에 대한 애정과 음악에 대한 혐오 등을 말하는 많은 일화가 있다. 775년 순례차 메카에 가던 도중에 사망해 그 부근에 묻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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