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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 1882. 6. 18, 불가리아 코바체비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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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망 | 1949. 7. 2, 소련 모스크바 근처 |
국적 | 불가리아 |
요약 불가리아의 총리.
독일의회방화사건 때 나치의 기소에 대한 항변으로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다.
인쇄공이자 노동조합 지도자였던 그는 1915년 의회의 사회주의 세력을 이끌어 전시채권발행에 관한 국민투표에 반대했으며 1919년 불가리아 공산당 창설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수행했다. 1918년 폭동교사죄로 잠시 투옥된 후, 소련을 여행하던 중 코민테른(제3인터내셔널) 집행위원회 위원으로 선출되었다(1921). 1923년 불가리아에서 공산주의 반란을 선동하여 잔혹한 정치보복을 야기했으며 사형을 선고받고 망명길에 올랐다. 1929년 이후로는 베를린에 체류하면서 코민테른 중부유럽국장으로 일했다.
새로 독일 총리에 취임한 아돌프 히틀러가 공산주의 적대세력의 법익을 박탈하는 구실이 된 의회방화사건(1933. 2. 27)이 일어나자 다른 공산당 지도자들과 함께 검거되었다.
공판과정을 통해 디미트로프의 변론은 나치 검찰당국의 기소를 압도했고 면소 판결을 얻어냈다. 1935~43년 코민테른 집행위원회 총서기로 모스크바에 머물면서 독·소불가침 조약 기간을 제외하고는 대(對) 독일 인민전선을 형성하는 데 주력했다. 1944년 불가리아 추축국 위성정부에 대항하여 지하운동을 지휘했고 이듬해 귀국한 뒤 조국전선 정부의 총리에 취임했다.
디미트로프는 공산주의 세력을 규합하여 1946년 불가리아 인민공화국 수립에 결정적인 영향력을 행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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