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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 〈여사제강〉·〈동사강목〉과 함께 17, 18세기의 역사서술의 새로운 경향인 강목체 사서의 등장을 대표하는 책이다. 저자는 소론계의 인물로 노론·소론 연정이 성립된 1694년부터 관직에 진출해 이조정랑까지 올랐다. 저술 시기는 노론이 주도권을 장악하고 저자도 중앙관직에서 물러났던 1711~19년으로 추정된다. 그는 통일신라와 고려를 정통(正統)으로 보고 삼국은 무통(無統)의 시대로 처리했다. 기자는 문헌이 부족하고 마한은 실국했다 하여 삼국 이전은 정통을 따지지 않았다. 이는 실세보다 도덕적 명분을 추구하는 강목법의 취지에 어긋나는 것이다. '사론(史論)'은 기왕의 사론을 적당히 취사해서 모은 것이다. 이 책은 안정복의 〈동사강목〉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
27권 10책. 목활자본. 〈여사제강 麗史提綱〉·〈동사강목 東史綱目〉과 함께 17, 18세기의 역사서술의 새로운 경향인 강목체 사서(史書)의 등장을 대표하는 책이다. 저자는 소론계의 인물로 노론·소론 연정이 성립된 1694년(숙종 20)부터 관직에 진출하여 이조정랑의 지위에까지 올랐다. 저술 시기는 노론이 주도권을 장악하고 저자도 중앙관직에서 물러났던 1711~19년으로 추정된다.
체재는 서례(序例)·범례·연표(年表)·논변(論辯)을 싣고 본문은 삼국기·신라기·고려기로 나누어 기술했다. 책의 저술 동기는 노론의 유계(兪棨)가 앞서 지은 〈여사제강〉을 보완한다는 것이었다. 서례에서 그는 주자(朱子)의 강목체가 역사서술의 가장 좋은 방식임을 논설하며 〈여사제강〉의 강목법이 맞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또 내용에서도 고려 이전 부분을 보완한다고 했다. 이 취지에 따라 범례의 항목은 거의 주자의 강목을 따랐다.
논변은 모두 7조로서 본문에서 다루지 않은 기자(箕子)·삼한(三韓) 등의 사실을 다루었다. 〈기자봉조선지변 箕子封朝鮮之辯〉에서는 기자의 수봉설(受封說)을 부인하여 기자는 주왕(周王)의 신하가 아니라고 주장했다. 동방지명지변과 삼한지방지변은 고대 지명과 삼한 등의 위치를 고증한 것으로 한백겸(韓百謙) 이래 역사지리학에 대한 관심을 반영하고 있다.
본문의 내용은 기존의 사서에서 뽑은 것인데, 〈동국통감 東國通鑑〉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그는 통일신라와 고려를 정통(正統)으로 보고 삼국은 무통의 시대로 처리했다. 기자는 문헌이 부족하고 마한은 실국했다 하여 삼국 이전은 정통을 따지지 않았다. 이는 실세보다도 도덕적 명분을 추구하는 강목법의 취지에 어긋나는 것이다.
사론은 기왕의 사론을 적당히 취사해서 모은 것이다. 삼국시대와 신라 때의 사론은 〈동국통감〉의 것을 압축한 것이고 고려부분은 〈여사제강〉에서 많이 전제했지만 일부 내용은 차이를 보인다. 이 책은 안정복(安鼎福)의 〈동사강목〉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 규장각에 소장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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