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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 덴마크어로 씌어진 문학작품의 총체.
목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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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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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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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개혁과 르네상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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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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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만주의 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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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만적 리얼리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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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적 리얼리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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급진적 리얼리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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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의 부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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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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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차 세계대전 이후
개요
최초의 문학은 주로 전사나 국왕, 성직자 등의 묘비인 돌이나 금속에 새겨진 비명(碑銘)에서 발견된다.
여기에는 때로 바이킹 정신이 반영된 두운시(頭韻詩)가 들어 있었다. 룬 문자의 비문은 덴마크에서는 250년경부터 사용되었으나 현재 남아 있는 비문의 대부분은 800~1100년에 씌어진 것들이다.
중세
중세에는 그리스도교의 도입과 함께 라틴어가 우위를 차지하고 있었다.
안데르스 아레보(1167경~1228)은 〈헥세메론 Hexaëmeron〉을 썼는데, 이는 천지창조와 교회의 교의를 적은, 라틴어로 씌어진 장시였다. 삭소 그람마티쿠스의 〈덴마크인의 업적 Gesta Danorum〉(1185~1222)은 세계문학에 대해 덴마크가 최초로 이룩한 위대한 공헌이었다.
16권 가운데 첫 9권은 구전에 의한 이교도시대의 전설이나 영웅시에 바탕을 둔 선사시대를 다루고 있다. 덴마크의 중세문학은 또 훈율서·찬미가·지방법 등을 포함한다. 그밖의 자료로는 중세의 백과전서라 할 수 있는 〈루키다리우스〉, 운문으로 쓴 덴마크 사로서 이 나라 최초의 인쇄본 〈림크로니켄〉(1495)이 있다. 중세가요는 539편이 알려져 있는데 그 첫판은 1591년에 나왔다.
종교개혁과 르네상스
1536년 종교개혁이 덴마크에 파급되자 로마 가톨릭 교회에 반대하거나 찬성하는 종교논쟁의 소책자들이 모국어로 씌어진 새 문학의 시작을 알렸다.
종교개혁을 지지한 최대의 인문주의자는 크리스티에른 페데르센(1554 죽음)으로, 그는 〈신약성서〉를 번역하고 루터의 팜플렛을 덴마크어로 번안했다. 16세기의 덴마크 시의 대부분은 종교적이거나 논쟁을 그 내용으로 하였으며, 서정시는 약간의 연예시와 찬미가들이었다. 한스 타우센은 최초의 주목할 만한 찬미가 시인이었다.
17세기에는 르네상스가 덴마크에 들어옴으로써 고전주의가 유래되었다. 종교문학에서 라틴어의 교의서, 훈육적인 전단이나 이 시대의 미신을 반영한 소책자류가 지배적이었다. 17세기 산문 가운데 가장 중요한 작품에 크리스티안 4세의 딸 레오노라 크리스티나(1621~98)의 수기 〈고뇌의 추억 Jammers Minde〉(1869)이 있다.
이것은 코펜하겐의 '푸른 탑'에 투옥되어 있던 20년간의 감동적인 인간기록이다. 많지 않은 극작가 가운데서 대표적인 작가로 모겐스 스켈(1650~94)을 들 수 있다.
18세기
노르웨이에서 태어나 그곳에서 자란 루드비 홀베르(1684~1754)는 18세기 전반을 대표하는 대작가였다.
덴마크 극장을 위해 그가 쓴 32편의 희극 가운데 최초의 15편은 성격희극이고, 1823~27년에 쓴 11편은 풍습희극, 마지막 작품들은 도덕적 비유극이었다. 그는 풍자적 작품도 썼는데, 영웅시체의 골계시(滑稽詩) 〈페데르 파울스〉(1719~20)나 라틴어로 쓴 소설 〈닐스 크림의 지하여행 Nicolai Klimii iter Subterraneum〉(1741)이 그것이다. 또 그의 500통 가까운 〈서신집 Epistler〉(1748~54)은 덴마크 최상의 정치적 에세이이다.
이 시대 최대의 서정시인은 종교적 신비주의자로 경건파를 찬미한 작가인 한스 아돌프 브로르손(1694~1764)으로 종교적인 시를 썼다. 18세기말에 이르러 덴마크 문학에 부활의 기운이 일어났다. 요한네스 에발(1743~81)은 많은 사람들에게 덴마크 최대의 서정시인으로 알려진 사람으로 북유럽 고대시의 풍부함을 처음으로 발견했다. 그의 〈로르프 크라케〉(1770)와 〈바르드르의 죽음〉(1774~75)은 비극의 걸작으로, 〈어부 Fiskerne〉(1780)는 평범한 인격을 영웅적으로 그려낸 덴마크 최초의 드라마이다.
낭만주의 시기
낭만주의 운동은 독일에서 들어왔다.
그 지도자적 역할을 한 아담 욀렌슐레게르가 1802~07년에 내놓은 다채로운 작품은 아낌없는 열광을 받았다. 그는 덴마크 문학에서 비할 데 없는 시적 천재임을 입증했다. B.S. 잉게만(1789~1862)은 역사소설(1824~36)과 〈홀게르 단스케 Holger Danske〉에 관한 연작시를 통해 기사도와 민족적 긍지를 낭만적 관념에 의해 당시의 사조를 고무했다. 그러나 끊임없는 사랑을 받는 것은 그의 소박하고 기교를 부리지 않은 시집 〈아침과 저녁의 노래 Morgen og aftensange〉이다.
낭만적 리얼리즘
두 인물이 덴마크 문학에 이지와 리얼리즘의 새 요소를 도입했다.
포울 묄레르(1794~1838)는 현대를 묘사한 최초의 소설 〈한 덴마크 학생의 모험 En dansk students eventyr〉(1824)의 저자이다. 그는 극적이고 우화적인 시를 쓰기도 했다. 스텐 스텐센 블리게르(1782~1848)는 영국 작품들을 번역하고 〈철새 Traekfuglene〉(1838)라는 작품도 썼다.
또 그에게는 1824년에 쓴 명작 〈시골 목사의 일기의 단편(斷片)〉 등 많은 단편이 있다.
시적 리얼리즘
1830년경에 초기 낭만주의는 보다 관조적이고 내용보다는 형식에 많이 치우치는 시적 리얼리즘에 의해 대체되었다.
이 운동의 지도자 요한 루드비 하이베르(1791~1860)는 독자적이고 개성이 강한 성향을 갖고 있었다. 극작가로서 그는 프랑스의 보드빌을 수입하여 덴마크 연극에 활기를 불어넣으려 했다. 서정시의 부활은 1830~40년대에 걸쳐 일어났다. 그들은 주로 사랑과 자연에 눈길을 돌려 이를 미학적으로 다루었다. 크리스티안 윈테르(1796~1876), 루드비 아돌프 베처(1793~1874), 에밀 오레스트루프(1800~54) 등이 그 지도자였다.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1805~75)은 소설(〈즉흥시인〉 1835 등), 시, 희곡, 여행 스케치 등을 썼으나 영속적인 가치를 갖는 것은 164편에 달하는 동화와 이야기들이다. 쇠렌 오뷔에 키에르케고르(1813~55)는 덴마크 문학에서는 아주 독보적인 지위를 차지하고 있어서 어떤 작가군에도 속해 있지 않다. 그의 종교철학은 〈이것이냐 저것이냐 Enten Eller〉(1843)·〈인생행로의 여러 단계 Stadier paa livets vei〉(1845) 등의 작품에 표현되고 있다.
M.A. 골슈미트(1819~87)는 덴마크계 유대인으로 반항적이고 반왕실적인 주간지 〈코르샤렌(해적) corsaren〉(1840~46)의 주필이었다. 그의 많은 소설, 이를테면 〈어떤 유대인〉(1845)은 덴마크 사회에서의 유대인의 생활을 다루고 있다.
급진적 리얼리즘
'근대의 돌파'는 1870년경부터 시작된 새로운 운동을 가리키는 덴마크 용어이지만, 여기서부터는 자연주의적 또는 현실주의적인 문학이 일어났다(→ 색인:모데르네 제넴브루드). 이 운동의 정신적 지도자는 게오르그 브란데스(1842~1927)였다.
그는 비평가로서 덴마크인들을 각성시키고 덴마크를 침체와 고립으로부터 끌어내는 것을 자신의 사명으로 느꼈다. 문학은 현실에 관여해야 하며 진보를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그의 주장은 큰 반응을 일으켰다. J.P. 야코브센(1847~85)은 그의 소설 〈닐스 뤼네 Niels Lyhne〉나 단편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브란데스의 영향을 받은 덴마크 작가 가운데 최초의 한 사람이었다.
〈마리 그루베 부인 Fru Marie Grubbe〉으로 그는 플로베르의 자연주의를 들여왔다. 헨리크 폰토피단(1857~1943)은 덴마크 최대의 소설가 중 한 사람이다. 초기 작품에서는 사회의 부정을 폭로하고 여러 편의 단편에서는 정치나 도덕, 종교 문제도 논했다. 그러나 그의 최고걸작은 3편의 연작소설 〈약속의 땅 Det forjaettede land〉(1891~95)·〈행운의 페르 Lykke-Per〉(1898~1904)·〈사자의 나라 De dødes rige〉(1912~16)이다.
이들은 모두 동시대의 덴마크를 다루면서 덴마크인의 국민성을 날카롭게 분석하고 있다.
시의 부흥
1890년대에 신낭만파의 시가 부활해 정서나 공상이 다시 등장하게 되었다.
서정시인들은 '상징파'라 자칭하면서 그 목적을 "표현하기 어려운 것을 상징적으로 표현하는 것"이라고 했다. 그들의 시는 가끔 심리과정이나 종교적·신비적 경험을 묘사하고 있다. 요한네스 이외르겐센(1866~1956)이 그 지도자로서 그의 산문 〈우화집〉 여행기, 성자전 또는 자전격인 〈내 생애의 전설〉(1916~28) 등은 널리 읽혔다.
20세기
20세기 초반의 2명의 위대한 소설가는 마르틴 안데르센 넥쇠(1869~1954)와 요한네스 윌헬름 옌센(1873~1950)이다.
넥쇠의 명성은 프롤레타리아의 생활을 그린 위대한 서사시 〈승리자 펠레 Pelle Erobreren〉(1906~10)와 〈사람의 딸 디테 Ditte Menneskebarn〉(1917~21)에 거의 모두 말미암은 것이다. 옌센은 그의 다윈 철학을 장편의 연작소설 〈긴 여행 Den lange rejse〉(1908~22)에 표현했다.
〈힘멜란 단편집〉은 그의 고향인 북 유틀란트의 사람들과 풍경을 묘사하고 있다.
야콥 팔루단(1896~1975)은 중요한 소설가로 대표작에 〈등대 주변의 새들 Fugle omkring fyret〉(1925)과 〈유르겐 스테인 Jørgen Stein〉(1937)이 있다.
한스 키르크(1898~1962)의 소설, 특히 〈어부들 Fiskerne〉(1928)은 사회적 리얼리즘의 백미라 할 수 있다. H.C. 브란네르(1903~66)는 소설가·극작가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며 〈기수〉(1949)·〈아무도 밤을 모른다〉(1955) 등에서 인간의 고독과 공포와 권력의 위험성을 그리고 있다. 그는 또 날카로운 심리통찰에 탁월한 단편 소설가였다.
니스 페테르센(1897~1943)은 시인으로 높은 자리를 차지했으나 〈샌들 만드는 사람들의 거리 Sandalmagernes gade〉(1931)나 〈엎지른 우유 Spildt maelk〉(1934)로 소설가로서도 뛰어났음을 보여주었다.
스벤 클라우센(1893~1961)과 스벤 보르베아(1888~1947)는 덴마크 극단에서 제1차 세계대전 후의 세대를 대표한다. 비범한 능력을 가진 극작가 카이 뭉크(1898~1944)는 영웅극을 부활시켰다. 〈이상주의자〉(1928)와 〈언어 Ordet〉(1932)는 그의 가장 뛰어난 극으로 꼽힌다. 그의 극은 신과 인간의 문제를 중심으로 다루고 있다. 카이 프리스 멜러(1888~1960)는 영국과 프랑스 시의 뛰어난 번역자이며 탁월한 비평가였다.
명성을 확립한 시인으로는 폴 라 클루(1902~56), 이엔스 아우구스트 스카데(1903~78), 모르텐 닐센(1922~44) 등이 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독일군으로부터 해방된 직후(1945)에는 시의 부활이 압도적이어서 실존주의파 잡지 〈헤레티카〉(1948~53)가 젊은 작가들의 대변지가 되었다.
그들은 대부분 기독교 철학자 빌헬름 그렌베흐(1873~1948)를 정신적인 선구자로 간주하고 있었다. 이들 그룹의 지도적 시인 중에는 오베 아빌고르(1916~), 트르킬드 뵤렌비(1918~), 오레샐비(1921~), 오레 위벤(1921~), 프랑크 예가(1926~)등이 포함된다.
제2차 세계대전 후의 지도적 산문작가의 한 사람인 알베르트 담(1880~1972)은 첫 작품을 1906년에 내놓았으나 1950년대와 1960년대에 걸출한 소설이나 단편(〈할아버지의 거리〉1956, 〈7장의 그림〉 1962 등)으로 재등장했다. 20세기의 가장 중요한 문예학자 겸 비평가는 악셀 오를리크(1864~1917)이다.
그는 덴마크 민속학회의 창립자이며 덴마크 중세가요의 연구로 유명하다. 빌헬름 안다센(1864~1953)은 덴마크 낭만주의의 권위자이며, 한스 브릭스(1870~1960)는 덴마크 시를 정교하고 치밀하게 분석하기로 유명했다. 발데마르 베델(1865~1942)과 파울 V. 루보우(1896~1972)는 유럽 비교문학의 권위자이며 F.J. 빌레스코우 얀센(1907~)은 홀르베어와 함께 18세기 덴마크 문학의 권위자이고, 스벤 멜러 크리스텐센(1909~)은 스칸디나비아 문학의 사회학적 연구의 해설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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