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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정실업친목회

다른 표기 언어 大正實業親睦會

요약 1916년 11월에 의사소통을 통해 한·일 간에 정의(情誼)를 두텁게 하고 정신수양을 도모한다는 취지로 결성된 단체.

1910년 일제가 우리나라를 강점한 후 모든 결사가 금지되었던 무단통치기의 유일한 단체이다. 이 단체는 국가경축일, 경성번영, 법령의 주지, 납세 의무와 위생근행, 예의질서, 기타 사교상 필요한 사항 등 민중을 무단정치에 잘 순응시키도록 하기 위한 여러 방안을 연구과제로 삼았다.

1921년 1월대회부터는 일본인은 고문으로서 제일선에서 물러나고 주로 조선귀족·대지주·예속자본가들의 친일단체로 탈바꿈했다(→ 문화정치). 회장에 민영기(閔泳綺), 부회장에 조진태(趙鎭泰), 이사에 예종석(芮宗錫) 외 14명, 평의원에 백완혁(白完爀) 외 27명, 평의장에 한상룡, 고문에 이완용·민영휘·이윤용을 뽑고, 회원도 250명으로 늘어났다. 그리고 강령도 고쳐서 첫째, 조선인은 서로 친목하고 덕업을 서로 베풀며 어려움을 서로 구하자, 둘째, 산업의 발달·증식에 힘써 생활을 안전하고 튼튼하게 하자, 셋째, 교육의 보급에 힘써 문화의 향상에 이바지하자 등이다.

이는 곧 민중의 반일독립의식을 마비시키고 실력양성이라는 방향으로 왜곡, 유도하려는 일제의 정치적 목적과 궤를 같이하고 있었다. 일제는 이들 친일파를 앞세워 일선융화(日鮮融和)의 정치선전에 이용하기 위해 〈조선일보〉를 대정실업친목회의 기관지로 인가해주었으나 〈조선일보〉 젊은 기자들의 반발로 실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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