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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더 기타리스

비비 킹

라일리 B. 킹, B.B. King

Blues All Around Me

요약 테이블
출생 1925년
국적 미국
대표작 「Live at the Regal」(1965)

목차

  1. 내 입이 노래를 멈추면 루씰이 뒤를 이어 노래를 시작한다
  2. 여전히 소규모 클럽 무대를 즐기는 아흔을 앞둔 거장
비비 킹

ⓒ 어바웃어북 | 저작권자의 허가 없이 사용할 수 없습니다.

한영애 작사 엄인호 작곡으로 한영애와 신촌블루스가 노래했던 '루씰'은 이름이다. 그런데 사람이 아니라 기타의 이름이다.

루씰. 1949년 겨울은 유난히 추웠다. 그 때 비비 킹은 미국 아칸사스주 트위스트에 있는 한 작은 클럽에서 연주하고 있었다. (예나 지금이나 비비 킹은 언제나 클럽에서 연주한다.) 클럽의 홀 안에는 난방을 위해 등유 램프가 켜져 있었다. 당시에는 흔한 풍경이었다. 그런데 공연 도중 두 남자 사이에 싸움이 일어났다. 싸움은 금방 주먹다짐으로 발전했고 두 남자의 난투극 와중에 등유 램프가 넘어지면서 불이 났다. 화재는 삽시간에 번졌다. 손님이며 종업원이며 연주자며 할 것 없이 정신없이 밖을 향해 뛰었다. 가까스로 탈출에 성공한 비비 킹은 그러나 다음 순간 자신이 기타를 안에 두고 나온 것을 깨달았다. 그 기타는 깁슨 세미 할로우 바디 기타로 그가 애지중지하는 자신의 유일한 기타였다. 비비 킹은 곧바로 기타를 찾으러 다시 불 속으로 뛰어들었고 겨우 기타를 구출해 다시 빠져나올 수 있었다. 그 직후 건물은 붕괴되었고 두 사람이 이 화재로 목숨을 잃었다.

다음 날 비비 킹은 두 남자가 싸운 이유가 한 여인 때문이라는 것을 알았다. 그 여자의 이름은 '루씰'(Lucille)이었다. 그는 자신의 생명과 맞바꿀 뻔한 이 기타에 '루씰'이라는 이름을 붙였고, 후에 〈Lucille〉이라는 노래를 만들어 자신이 사랑하는 기타에게 바쳤다. 그렇다. '루씰'은 역사상 가장 중요하고 뛰어난 블루스 기타리스트인 비비 킹의 기타에 붙여진 애칭이다.

내 입이 노래를 멈추면 루씰이 뒤를 이어 노래를 시작한다

비비 킹은 1925년 미국 미시시피주 이타 베나에 있는 한 농장의 작은 오두막에서 태어났다. 본명은 라일리 비 킹(Riley B. King)이다. 네 살 때 아버지가 가족을 버렸고 어머니는 재혼하면서 가난 때문에 아들을 키울 수 없었던 까닭에 비비 킹은 미시시피주 킬마이클에 있는 할머니의 집에서 자랐다. 이 무렵 킬마이클 엘크혼 침례교회에서 가스펠 그룹을 조직해 기타를 치고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는데 이때부터 블라인드 레몬 제퍼슨, 티본 워커를 비롯해 당대의 유명 뮤지션들의 연주를 듣고 익히면서 자신만의 음악적 스타일을 만들어갔다. 열두 살 때 장만한 15달러짜리 기타가 자신의 첫 번째 기타였는데 여기에는 직접 샀다는 설과 친척인 부커 화이트(Booker White, 1906~1977)가 선물했다는 두 가지 설이 있다.

1943년에 비비 킹은 킬마이클을 떠나 미시시피주 인버네스로 갔다. 여기서 그는 생계를 위해 트랙터 기사로 일하면서 그 지역에서는 꽤나 유명하던 세인트 존스 쿼텟(St. John's Quartet)에서 기타를 쳤다. 1946년에는 부커 화이트를 따라 다시 테네시주 멤피스로 가 웨스트 멤피스 방송국에서 소니 보이 윌리엄슨의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하면서 목소리를 알렸다. 이름이 조금 알려지자 멤피스 지역의 유력 방송국인 WDIA에 스카웃되어 10분짜리 자신의 쇼를 진행하게 되었다. 쇼는 꽤 인기를 얻었고 그는 가수와 DJ로서 명성을 얻었다. 이 때 블루스 보이(Blues Boy)라는 애칭을 얻었으며 이것이 후에 비비(B.B.)로 줄어들었다.

1949년 비비 킹은 RPM 레코드와 계약을 맺고 훗날 선 레코드를 설립해 엘비스 프레슬리를 발굴하게 되는 샘 필립스(Sam Phillips, 1923~2003)와 함께 녹음작업에 들어가 데뷔싱글 〈Miss Martha King〉을 냈다. 데뷔싱글은 성공을 거두지 못했지만 1950년대에 들어서면서 비비 킹은 점차 R&B 씬의 중요 인물이 되어갔다. 1951년 발표한 싱글 〈3 O'Clock Blues〉가 히트한 것을 시작으로 〈You Know I Love You〉(1952) 〈Please Love Me〉(1953) 〈You Upset Me Baby〉(1954) 〈Every Day I Have the Blues〉(1955) 〈Sweet Little Angel〉(1956) 〈Be Careful with a Fool〉(1957) 〈Please Accept My Love〉(1958) 〈Sweet Sixteen〉(1960) 등의 히트곡을 꾸준히 냈다.

1964년 가을 시카고 리걸 극장에서의 공연실황을 담아 1965년에 발표한 라이브 앨범 「Live at the Regal」은 그의 대표작 가운데 하나로 라이브의 걸작 앨범으로 꼽힌다. 1970년에는 〈The Thrill Is Gone〉으로 생애 최초로 그래미상을 수상했는데, 이 곡은 「롤링 스톤」이 선정한 '역사상 가장 위대한 노래 500곡' 순위에서 183위에 올라있다. 물론 그것은 시작이었고 비비 킹은 그 이후 지금까지 수없이 많은 그래미 트로피를 안았다. 이밖에 〈To Know You Is to Love You〉(1973)와 〈I Like to Live the Love〉(1974) 등이 비비 킹의 대표적인 70년대 히트곡이다.

비비 킹은 블루스 뮤지션인 티본 워커와 부커 화이트, 재즈 연주자인 찰리 크리스천, 장고 라인하르트로부터 큰 영향을 받았다. 그는 블루스와 재즈를 기반으로 팝과 록을 녹여 넣어 자신만의 독특한 스타일을 만들었다. 깁슨 기타에서 뽑아내는 내추럴 사운드와 특유의 벤트 노트는 그의 트레이드마크이며 스타카토 피킹 역시 후대에 막대한 영향을 끼친 그의 대표적인 기술이다. 특히 유연한 벤딩과 왼손 비브라토를 앞세운 정교한 솔로 연주는 현대 블루스의 완성형이며 거의 모든 록 기타리스트들이 반드시 마스터해야만 하는 필수 과목이 되었다. 에릭 클랩튼, 제프 벡, 조지 해리슨, 마이크 블룸필드, 지미 헨드릭스를 비롯한 수천, 수만의 기타리스트들이 비비 킹의 연주를 롤 모델로 삼아 자신의 기술을 발전시켰다.

비비 킹은 코드 위주의 틀에 박힌 연주를 싫어하고 즉흥적인 잼 연주를 즐긴다. 라이브에서 보여주는 그의 강약조절은 그가 지나온 세월의 무게만큼이나 완숙한 경지에 이르렀으니 그에게 붙여진 '블루스 기타의 왕' '블루스 기타의 교과서'라는 칭호는 결코 과장된 것이 아니다. 비비 킹은 입으로도 노래하지만 기타로도 노래한다. 그는 말했다. "내가 노래할 때 나는 마음으로 노래한다. 내가 입으로 노래하는 걸 멈추는 순간, 나는 루씰로 노래하기 시작한다." 그의 노래는 멈추지 않는다.

여전히 소규모 클럽 무대를 즐기는 아흔을 앞둔 거장

'루씰'이라는 애칭이 붙은 비비킹의 기타 깁슨 ES-355 모델

헤드에 'B.B. KING'이라고 새겨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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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씰은 원래 깁슨 ES-355 모델이다. 1980년에 깁슨사는 별도로 검은색의 깁슨 루씰 모델을 만들었다. 루씰이 기존의 ES-355 모델과 다른 점은 기타의 헤드에 루씰(예전 모델) 혹은 비비 킹이라는 글씨가 씌여 있다는 것과 에프홀이 없다는 것이다. 비비 킹이 피드백을 줄이기 위해 에프 홀을 없애달라고 요청했기 때문이다.

비비 킹은 수많은 록 뮤지션들과 협연을 펼쳐왔다. 1969년에 롤링 스톤스의 미국 투어에 동행해 록 팬들에게도 깊은 인상을 남겼고, 1988년에는 U2의 「Rattle and Hum」 앨범에 참여해 〈When Love Comes to Town〉으로 젊은이들을 매료시켰다. 2000년에는 에릭 클랩튼과 함께 「Riding with the King」을 만들었다. "음반이 다 닳아 하얗게 될 때까지 그의 음반을 들었다"고 고백한 바 있는 에릭 클랩튼은 이 거장이 나이 들어가는 것을 보면서 아마도 마음은 급하고 몸은 달았을 것이다. 더 늦기 전에 그와 함께 작업하고 싶어서 말이다. 에릭 클랩튼은 2000년 앨범 「Riding with the King」에 와서야 마침내 그 소원을 이루었다.

미국 전역에서 성업 중인 비비 킹스 블루스 클럽. 사진은 2000년에 문을 연 뉴욕 지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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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그의 80회 생일을 기념해 발표된 앨범 「B.B. King & Friends : 80」에 참여하고 있는 이들의 면면은 비비 킹이 가지는 위상을 그대로 보여준다. 앨범에서는 밴 모리슨(Van Morrison)에서 빌리 기본스, 에릭 클랩튼, 쉐릴 크로우(Sheryl Crow), 마크 노플러, 글렌 프레이(Glenn Frey), 엘튼 존(Elton John), 윌리 넬슨, 글로리아 에스테판(Gloria Estefan), 로저 달트리(Roger Daltrey), 대릴 홀(Daryl Hohl) 그리고 젊은 신성 존 메이어에 이르기까지 쟁쟁한 뮤지션들이 모두 그에 대한 존경을 담아 함께 노래하고 있다.

비비 킹은 연간 300일 이상의 크고 작은 공연을 하는데 특히 매년 200회가 넘는 소규모 클럽 공연을 소화한다. 라이브는 그의 음악이 살아 숨 쉬는 공간이며 그의 생명과도 같다. 지금까지 데뷔 이후 그가 행한 공연의 회수는 대략 15,000여회를 상회하는 것으로 추산된다. 이를 바탕으로 비비 킹스 블루스 클럽(B.B. King's Blues Club)이 1991년 미국 멤피스에 처음 문을 연 것을 시작으로 1994년 로스엔젤리스에, 2000년에는 뉴욕에, 2003년에는 내쉬빌에 문을 여는 등 현재 미국 전역에서 성업 중에 있다.

1996년에 출간된 비비 킹의 자서전 『Blues All Around Me』의 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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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비 킹은 1980년에 블루스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고 1987년에는 록큰롤 명예의 전당에도 헌액되었다. 그는 2003년 「롤링 스톤」이 발표한 '역사상 가장 위대한 기타리스트 100' 순위에서 3위에 올랐으며 'www.guitar.com'이 발표한 순위에서도 역시 3위에 올랐다.

1996년 출반된 비비 킹 자서전의 제목은 '내 주위는 온통 블루스'(Blues All Around Me)이다. 맞는 제목이다. 그는 온통 블루스에 둘러싸여 살았을 테니.

「Live at the Regal」(19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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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일서 집필자 소개

1970년 순천에서 태어나 중학교 시절 가족과 함께 서울로 이사했다. 이때부터 지독한 라디오 키드, 팝송 키드였다. 휘문고등학교와 연세대학교 신문방송학과, 성공회대 문화대학원에서 공부했으며 19..

출처

더 기타리스트
더 기타리스트 | 저자정일서 | cp명어바웃어북 도서 소개

1950년대부터 2010년대까지 대중을 이끈 위대한 기타리스트! 재즈와 블루스, 록큰롤, 하드 록과 헤비메탈, 펑크와 모던 록 탄생에 이르는 대중음악의 역사 속 기타리스트들의 화려한 전성기를 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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