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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더 기타리스

쳇 앳킨스

미스터 내쉬빌, Chet Atkins

내쉬빌 사운드의 창시자, 컨트리 뮤직의 안내자

요약 테이블
출생 1924년
사망 2001년
국적 미국
대표작 「Mister Guitar」(1959)

목차

  1. 미스터 내쉬빌! 미스터 기타!
  2. 불필요한 기교와 군더더기 없는 연주
쳇 앳킨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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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독립전쟁 때의 장군인 프랜시스 내쉬의 이름을 따서 도시의 이름을 붙인 내쉬빌은 미국 남동부의 작은 주인 테네시주의 주도이다. 내쉬빌은 현재 세계적인 보험, 금융 회사의 본사가 위치한 국제 금융의 중심도시이며 최초로 공립학교 제도를 도입한 교육의 중심지로도 유명하다. 하지만 음악 팬들이라면 당연히 이런 사전적 정보보다는 컨트리 음악의 본산으로서의 내쉬빌을 먼저 기억할 것이다. 그렇다. 내쉬빌은 컨트리 음악에 관해서라면 이곳을 빼고서는 설명이 불가능할 정도로 중요한 도시이다. 지금도 수많은 컨트리 스타들이 내쉬빌에 거주하거나 녹음작업을 위해 이곳을 향한다. '내쉬빌 사운드'는 컨트리 음악 중에서도 가장 팝화된 컨트리 스타일을 일컫는 말이다. 아마도 내쉬빌 사운드가 없었더라면 현대 컨트리 음악이 지금처럼 미국 전역에서, 때로는 미국을 넘어 전 세계적으로 사랑받지는 못했을 것이다.

쳇 앳킨스는 1950년대에 바로 이 내쉬빌 사운드를 창시한 인물이다. 그것은 결국 그가 없었다면 현대 컨트리의 인기는 없었을 것이라는 가정을 가능케 한다. 그만큼 그는 컨트리의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중요 인물이다. 물론 기타리스트로서도 마찬가지이다. 그의 가장 유명한 별명 중의 하나는 '미스터 내쉬빌'이다.

미스터 내쉬빌! 미스터 기타!

쳇 앳킨스는 1924년 미국 테네시주 러트렐에서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피아노와 우크렐레, 피들을 배웠고 아홉 살 때 처음으로 기타를 잡았다. 고등학교 때부터는 본격적으로 기타를 연습하기 시작했는데 1939년 멀 트래비스(Merle Travis, 1917~1983)의 연주를 들은 것이 그의 기타 인생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쳤다. 그는 오른손으로 스트로크 대신 손가락을 활용해 연주하는 멀 트래비스의 핑커스타일을 계승해 이를 더욱 발전시켰는데, 이것이 이후 자신을 대표하는 연주기법이 되었다. 엄지로 4,5,6번 줄의 베이스음을 치고 다음 세 손가락으로 1,2,3번 줄을 연주하는 전형적인 핑거스타일과 엄지와 집게, 중지만을 사용해 연주하는 이른바 쓰리핑거 스타일도 모두 쳇 앳킨스가 발전시킨 주법들이다.

1942년 고등학교를 중퇴한 쳇 앳킨스는 녹스빌의 라디오에서 일하며 가수들 뒤에서 기타와 피들을 연주했다. 수줍음이 많은 성격 탓에 직장을 자주 옮겼지만 실력만은 인정받아서 해고되더라도 그를 찾는 방송국이 금방 다시 나타났다. 1945년에는 오하이오주 신시내티의 라디오 방송국에서 리오나와 루이스 존슨 쌍둥이 자매의 반주자로 활약했던 것이 인연이 되어 이듬해 리오나와 결혼했다.

1946년 쳇 앳킨스는 당시 음악 비즈니스계의 거물이던 스티브 숄스(Steve Sholes)를 만나 RCA 빅터사와 계약을 맺었다. 이듬해에는 자신의 첫 번째 녹음을 했지만 시판되지는 않았다. 쳇 앳킨스의 첫 번째 히트곡은 1955년에 나왔는데 〈Mr. Sandman〉이 그것이었고 〈Silver Bell〉이 연달아 히트했다. 애초 그는 가수 겸 기타리스트로서 RCA와 계약을 맺었지만 그의 역할은 곧 무한확장되었다. 그는 악기를 연주하고 사운드를 디렉팅하고 음반을 프로듀싱하면서 많은 스타들의 뒤를 든든히 받쳤다. 1950년대와 60년대 쳇 앳킨스는 RCA가 만든 거의 모든 히트 레코드에 관여했는데 엘비스 프레슬리(Elvis Presley, 1935~1977)와 에디 아놀드(Eddy Arnold, 1918~2008), 돈 깁슨(Don Gibson, 1928~2003)과 웨일런 제닝스(Waylon Jennings, 1937~2002)의 앨범들이 대표적인 것들이다.

1950년대 중반 엘비스 프레슬리가 등장하고 록큰롤이 선풍적인 인기를 얻자 컨트리는 쇄락의 기운을 보이기 시작했다. 그러자 스티브 숄스는 컨트리의 인기를 되살릴 적임자로 쳇 앳킨스를 지목했다. 쳇 앳킨스는 컨트리에 팝적인 요소를 최대한 가미해 부드럽고 세련된 새로운 스타일의 컨트리를 만들어냈다. 이것이 소위 말하는 내쉬빌 사운드로 팝 컨트리의 원형이다.

기타리스트로서의 명성도 높아갔다. 그는 미국을 넘어 국제적으로 명성을 얻었고 '미스터 기타'라는 별명으로 불리기 시작했는데, 이것은 그가 1959년에 발표한 앨범 「Mister Guitar」에서 유래한 별명이었다. RCA 사내에서도 그의 위상은 갈수록 높아졌다. 그는 RCA 빅터 내쉬빌 스튜디오의 매니저로 일하면서 유명한 스튜디오 B를 완공했고 1968년에는 자신의 든든한 후원자이던 숄스의 지원 속에 RCA의 컨트리 부문 부사장에까지 올랐다.

1965년에 쳇 앳킨스는 자신의 최대 히트곡인 〈Yakety Axe〉를 발표했지만 회사의 임원이 되면서 업무 압박이 심해졌고 1970년대가 되면서 상대적으로 음악작업은 줄어들었다. 그러나 그러면서도 페리 코모(Perry Como, 1912~2001)의 히트곡 〈And I Love You So〉를 프로듀싱하는 등 음악에 대한 관심의 끈만은 놓지 않았다.

1970년대의 주요 작품으로는 레스 폴과 함께 한 두 장의 앨범인 1976년작 「Chester & Lester」와 1978년작 「Guitar Monsters」가 꼽힌다. 재즈적 관심을 확장시킨 이 앨범들은 그의 디스코그래피에서 상업적으로 가장 큰 성공을 거둔 작품들인데, 바로 이런 재즈적 요소들과 팝적인 성향 때문에 골수 컨트리 팬들은 쳇 앳킨스의 음악을 두고 진정한 컨트리가 아니라고 비판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 역시 자신이 컨트리 기타리스트로 불리는 걸 싫어했고 그저 기타리스트로 대접받기를 원했으니 억울할 일은 없다. 1980년대 이후 쳇 앳킨스는 마크 노플러, 제리 리드(Jerry Reed, 1937~2008)와 함께 작업하면서 자신의 음악적 뿌리인 컨트리로 회귀하는가 하면 퓨전 재즈적 색채가 짙은 작품을 발표하는 등 장르에 얽매이지 않고 음악적 스펙트럼을 넓혔다. 퓨전 재즈적 감성이 가장 잘 드러나는 작품으로는 1987년에 발표한 앨범 「Sails」가 있다.

쳇 앳킨스와 레스 폴이 협연한 「Chester & Lester」 재킷 뒤 실루엣 일러스트

그들은 스포트라이트 뒤에서 슈퍼스타들의 든든한 음악적 버팀목 역할을 했던 진정한 거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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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필요한 기교와 군더더기 없는 연주

쳇 앳킨스가 일렉트릭 기타 연주에 미친 영향은 머디 워터스의 그것에 비견된다. 그는 장르를 불문하고 수많은 후배들에게 큰 영향을 끼쳤는데 조지 해리슨과 스티브 하우, 마크 노플러 등이 그로부터 영향 받은 대표적인 기타리스트들이다. 이밖에도 클래식과 재즈, 플라멩코에 이르기까지 그가 영향 받고 영향을 끼친 분야는 넓다.

전체적으로 쳇 앳킨스는 불필요한 기교와 음들을 배제하고 효율적인 연주를 추구한다. 그의 연주는 기술적으로 낭비가 없는 효율성으로 유명하며 이것이 특히 많은 후배들에게 모범이 되었다. 부드러우면서도 섬세한 사운드를 들려주는 그는 솔로로 연주할 때에도 리드 연주와 리듬 플레이를 병행하는 효율성을 보여준다.

쳇 앳킨스가 주로 사용한 기타는 그레치였다. 그는 1955년에서 1980년 사이에는 그레치 기타의 자문역으로 일하며 그레치사의 일렉트릭 기타 디자인에 직접 관여하기도 했고 잠깐이지만 깁슨사에서도 비슷한 역할을 맡은 적이 있다.

그레치 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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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 클루(Earl Klugh)는 열세 살 때 페리 코모 쇼에 나온 쳇 앳킨스를 보고 완전히 매료되었다고 고백했다. 1967년에 제리 리드, 행크 스노우(Hank Snow, 1914~1999), 윌리 넬슨(Willie Nelson) 등 RCA의 동료들은 그의 생일을 기념해 〈Chet's Tune〉을 만들어 노래했고, 1997년 클린트 블랙(Clint Black)은 〈Ode to Chet〉을 그에게 바쳤다.

쳇 앳킨스는 2002년 록큰롤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다. 그는 지금까지 열네 개의 그래미 트로피를 수상했고 1993년에는 그래미 평생공로상을 받았다. 컨트리 음악협회가 주는 '올해의 컨트리 연주자상'도 아홉 차례나 수상했는데 1981년부터 1985년까지 5연패하기도 했다. 빌보드는 1997년 20세기를 결산하는 시상식에서 쳇 앳킨스를 '개성 있고 창의적인 성취의 가장 높은 업적'이라고 칭송하며 센트리상을 수여했다.

2001년 쳇 앳킨스는 내쉬빌의 집에서 지병인 암으로 사망했다. 미국 남서 조지아주의 185번 교차로 인근의 직선도로는 '쳇 앳킨스 파크웨이'로 명명되어 있다. 이 공원길은 쳇 앳킨스가 어린 시절을 보냈던 조지아주 포트슨을 따라 달린다.

「Mister Guitar」(19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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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일서 집필자 소개

1970년 순천에서 태어나 중학교 시절 가족과 함께 서울로 이사했다. 이때부터 지독한 라디오 키드, 팝송 키드였다. 휘문고등학교와 연세대학교 신문방송학과, 성공회대 문화대학원에서 공부했으며 19..

출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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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기타리스트 | 저자정일서 | cp명어바웃어북 도서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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