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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이야기 중국
사1
진나라의 흥망

홍문의 만남

패공(유방)의 진영에는 위험한 고비가 숨막히게 다가오고 있었다. 40만 항우 군사가 습격을 노리고 있는 것이다. 정면 대결을 해도 승산이 없을 것이 뻔한데 급습을 당한다면 묵사발이 될 것은 불을 보듯 뻔했다.

항우의 진영에 항백(項伯)이라는 자가 있었다. 항백은 항우의 숙부로 장량이 망명 생활을 보내고 있을 때 그도 망명 생활을 하면서 장량의 신세를 진 적이 있는 사람이었다. 항백뿐 아니라 그의 일족이 모두 장량의 신세를 졌었다.

항백은 장량의 일이 걱정되었다. 내일이면 패공(유방)의 군사가 전멸될지도 모르니 장량 또한 생명이 위태로웠다. 신세진 의리를 생각해서라도 그대로 앉아 있을 수 없어 항백은 그날 밤 몰래 말을 몰아 패공(유방)의 본진이 있는 패상으로 달려가 장량을 만났다.

“내일이면 패공(유방)의 군사는 묵사발이 되네. 항우의 40만 대군이 급습하기로 되어 있거든. 나와 함께 도망하는 것이 어떻겠나?”

장량은 침착한 태도로 말하였다.

“도망칠 수 없습니다. 신은 패공(유방)으로 인하여 한나라의 망국한을 풀었습니다. 이제 패공(유방)께서 위급한 상황에 처해 있는데 패공(유방)을 버리고 떠나는 것은 의리가 아닙니다. 이 일을 패공(유방)에게 빨리 알려드려야 하겠습니다.”

장량이 패공(유방)에게 자초지종을 이야기하니 패공(유방)은 항백을 맞아들여 친히 술을 권하면서 말하였다.

“내가 관중에 들어온 후 모든 것에 털끝만큼도 손댄 일 없이 관리와 백성들을 위로하고 궁전의 보물창고와 부중에 있는 창고를 봉해 놓은 것은 모두 항 장군이 오기를 기다리기 위함이었습니다. 또 장수를 보내어 함곡관을 지키게 한 것은 다른 도적들의 침입을 막기 위함일 뿐 어찌 다른 뜻이 있었겠습니까. 이 모두가 항 장군을 위한 것이었으니 원하옵건대 항백 대인께서는 이러한 나의 마음을 헤아려 항 장군에게 잘 말씀드려 오해가 없도록 힘써 주시기 바랍니다.”

항백은 패공(유방)의 말을 듣자 쾌히 허락하고 패공(유방)에게 다음과 같이 부탁하였다.

“신이 항 장군에게 자세히 설명하겠사오나 패공(유방)께서도 내일 아침 일찍 오셔서 항 장군에게 사죄의 뜻을 표하는 것이 좋을 듯합니다.”

패공(유방)은 선뜻 내키지 않았으나 장량의 권고도 있고 해서 그렇게 하기로 하였다. 항백은 그날 밤 항우의 본진으로 돌아가 패공(유방)을 위해 항우를 설득하였다.

“패공(유방)이 먼저 함양을 함락한 것은 장군을 위함이지 패공(유방) 자신을 위한 일이 아닙니다. 그렇기 때문에 보물창고를 모두 봉해 놓고 털끝만큼도 손댄 일이 없이 장군이 오기를 기다린 게 아니겠습니까? 이제 장군께서 이처럼 큰 공이 있는 사람을 공격하고자 한다면 이것은 의가 아닙니다. 장군과 패공(유방)이 다 함께 무도한 진나라를 없애고자 하는 것은 의를 위함이거늘 이제 의를 저버린다면 이는 백성들의 신망을 잃게 되는 일입니다. 패공(유방)을 공격하기보다는 잘 대우하는 것이 이로울 것입니다.”

항우는 항백의 말을 듣고 살기등등했던 기세가 누그러졌다.

다음날 아침 패공(유방)은 백여 기를 따르게 하고 변명과 사죄를 하기 위해 항우의 본진인 홍문(鴻門)으로 향했다. 이것이 역사상 유명한 홍문의 잔치이다.

홍문연

함양을 정복한 항우가 유방을 홍문으로 초대해 떠보는 홍문의 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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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공(유방)은 항우의 군문에 나아가 사죄하였다. 이때 패공(유방)은 자신을 신이라 일컬었다. 굴욕적인 항복과 같은 것이었다. 99번 지더라도 최후의 승리자가 되면 되는 것이다. 최후의 승리자가 되기 위해서는 수모도 참고 견뎌야 한다. 패공(유방)은 장량이 간곡히 부탁한 말을 되새기며 사죄하였다.

“신이 장군과 더불어 힘을 합하여 진나라를 공략할 때 장군께서는 하북(河北)에서 격전을 벌이시고 신은 하남(河南)에서 싸움을 벌였습니다. 천만 뜻밖에도 신이 먼저 관중에 들어가 진나라의 항복을 받았으나 이것은 모두 장군을 위한 것입니다. 신은 모든 것을 완전한 형태로 장군에게 드리려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래서 군사를 패상에 물리고 장군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장군께서는 소인배의 말을 들으시고 신을 의심하신다 하오니 신은 천하 백성들이 장군을 의심할까 두렵습니다.”

패공(유방)의 말을 들은 항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패공(유방)을 죽이지 않겠다는 마음이 싹트기 시작한 것이다.

“나는 원래 패공(유방)을 의심하지 않았소. 그런데 당신의 좌사마 조무상이란 자가 사람을 보내어 여러 말을 하여 일이 이 지경에 이르렀소이다. 이 어찌 내 본심이겠소.”

항우는 패공(유방)을 머물게 하고 잔치를 벌였다. 술자리가 무르익을 무렵 범증은 자주 항우에게 눈짓을 보내기도 하고 자신이 차고 있던 옥결(玉玦)을 꺼내 보이면서 ‘유방을 살해할 기회는 바로 지금이요, 때를 놓치지 마시오’라고 재촉하였으나 항우는 끝내 듣지 않았다. 초조해진 범증은 연회장 밖으로 나와서 항우의 사촌 동생 항장(項莊)을 밖으로 불러내어 말하였다.

“항 장군이 소심하여 차마 결단을 내리지 못하고 있으니 그대는 연석에 들어가 축배를 올리고 칼춤 추기를 청하여 칼춤을 빙자하여 패공(유방)을 쳐서 그 자리에서 죽여야 하오. 그렇지 못하면 항씨 일족은 나중에 모두 패공(유방)의 포로가 될 것이오.”

항장은 고개를 끄덕이고 연회장으로 들어갔다. 축배를 올린 다음 좌중을 둘러보며 말하였다.

“군중에 너무 흥이 없으니 칼춤으로써 흥을 돋울까 합니다.”

항우가 허락하였다.

혈기 왕성한 항장은 칼을 빼들고 일어나 칼춤을 추기 시작했다. 항백은 항장이 패공(유방)을 노리는 것을 알아차렸다. 항백 또한 칼을 빼들고 칼춤을 추면서 패공(유방)을 가로막아 항장의 칼이 패공(유방)에게 향하지 못하도록 하였다.

좌중에 있던 장량도 이젠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다. 연회장 밖에 나아가 번쾌를 보고 말하였다.

“지금 항장이 칼춤을 추면서 패공(유방)을 노리고 있으니 형세가 아주 급박하오.”

장량의 말을 들은 번쾌는 “안 되겠습니다. 내가 들어가 패공(유방)과 생명을 같이 하겠습니다.”하였다.

번쾌는 칼을 찬 채 쇠방패를 갖고 연회장에 이르러 들어가려고 하였다.

연회장을 지키던 수위가 “초대되지 않은 손님은 연회장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하고 번쾌를 가로막았다.

번쾌는 들은 척도 하지 않고 방패로 수위를 떠밀었다. 수위는 번쾌의 억센 힘에 꼼짝도 못하고 땅바닥에 고꾸라졌다. 이 틈을 타서 번쾌는 성큼성큼 들어가 장막을 걷어올리고 딱 버티고 선 채 항우를 쏘아보았다.

번쾌는 심한 분노에 차 머리칼은 곤두서고 눈꼬리는 째질 것 같은 험상궂은 모습이었다.

항우는 저도 모르게 칼자루를 만지며 큰 소리로 물었다.

“누군가?”

“패공(유방)의 참승(驂乘)각주1) 번쾌입니다.”

장량이 대답하였다.

“장사로군! 이 자에게 술을 주도록 하라.”

한말들이 술잔이 그에게 주어졌다. 번쾌는 일어선 채 술잔의 술을 단숨에 들이켰다.

“이 자에게 생돼지 다리를 하나 가져다 주어라.” 번쾌는 방패를 도마로 삼아 칼을 빼서 고기를 잘라 날고기를 그 자리에서 먹어 치웠다.

“과연 장사로군! 더 마실 수 있겠는가?” 하고 항우가 물었다.

“예, 신은 죽음도 사양하지 않습니다. 어찌 술 따위를 사양하겠습니까. 일찍이 진나라는 호랑이 같은 마음을 품고 사람 죽이기와 처벌하기를 밥 먹듯 하였기 때문에 천하가 모두 배반하였습니다. 회왕이 여러 장수들을 모아 놓고 선언하기를 ‘먼저 진나라를 깨뜨리고 함양에 입성한 자를 그곳의 왕으로 삼는다’라고 하였습니다. 우리 주군 패공(유방)께서는 여러 장수에 앞서서 함양을 평정하고 어느 것 하나 손대지 않고 군사를 패상에 물려 장군을 기다리고 계셨습니다. 이렇듯 노고가 많고 공이 큰데도 장군께서는 봉작을 내리기는커녕 오히려 소인배의 말만 들으시고 공이 있는 사람을 없애려 하시니 이것은 진나라의 포악한 정치를 그대로 답습하는 일인지라 장군께서 취할 바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항우는 묵묵히 말이 없었다.

패공(유방)의 운명은 아주 아슬아슬한 위기에 놓였다. 항우가 패공(유방)을 살리려 해도 그의 부하들이 어떠한 일을 꾸밀지 모르는 일이었다. 패공(유방)도 이러한 위험을 느끼고 있었다.

패공(유방)은 변소에 가는 체하여 번쾌에게 손짓해 그를 장막 밖으로 불러내었다.

패공(유방)이 밖으로 나오자 항우는 도위 진평(陳平)에게 패공(유방)을 불러오라고 명하였다. 패공(유방)은 어떻게 하든 그대로 돌아가야겠다고 생각했다.

“나는 이대로 돌아가고 싶은데 하직의 말도 하지 않고 그대로 나왔으니 어찌하면 좋겠소?” 하고 번쾌에게 물었다.

“대행(大行)은 세근(細謹)을 돌아보지 않고 대례(大禮)는 소양(小讓)을 사(辭)하지 않는다 하였습니다(큰 일을 하려면 자질구레한 일은 무시해도 된다). 지금 형편으로 보아 저쪽은 칼과 도마이고 우리 쪽은 어육입니다. 하직 인사 따위 차릴 수가 없습니다.” 패공(유방)은 마침내 그대로 돌아가고 뒷일은 장량에게 부탁하여 사죄하도록 하였다.

패공(유방)은 수레를 버린 채 홀로 말 한 필에 타고 사잇길로 빠져나와 패상의 본진으로 급히 말을 달렸다.

인사도 하지 않고 그 자리를 뜨는 것이므로 함께 데리고 온 백여 기를 거느리고 돌아갈 수가 없었다. 경비병에게 발각되어 본부에 연락하게 되면 어떠한 사태가 일어날지 모르기 때문이었다. 이때 패공(유방)을 따른 사람은 번쾌·하후영(夏侯嬰)·근강(革斤彊)·기신(紀信) 등 네 사람뿐이었는데 모두가 창과 칼만 가졌을 뿐 도보였다.

패공(유방)이 패상의 본진에 도착했을 무렵 장량은 항우 앞에 나아가 “패공(유방)은 너무 융숭한 대접을 받자와 인사도 차릴 수 없을 만큼 취하셨습니다. 그리하여 저에게 명하여 대왕에게 백벽(白璧) 한 쌍, 대장군에게 옥두(玉斗) 한 벌을 올리라 하셨습니다. 변변치 못한 물건이오나 물리치지 마시기 바랍니다.”

대왕이란 항우, 대장군이란 범증을 가리키는 말이다.

“그래요! 패공(유방)은 지금 어디 있소?”

“대왕께서 패공(유방)의 잘못을 나무라실까 두려워 홀로 피해 달아났사옵니다. 지금쯤 아마 패상에 도착했을 것으로 짐작되옵니다.”

“그렇겠군!”

항우는 패공(유방)이 자신을 두려워하는 것이 별로 나쁘게 생각되지 않았다.

“역시 소심한 사람이군!” 마음속으로 그렇게 생각했다.

항우는 장량이 올리는 백벽을 받아 자리 옆에 놓았다. 그러나 범증은 장량이 올리는 옥두를 받자 땅위에 놓고 칼을 빼어 그것을 쳐깨뜨리며 “통탄할 일이로다. 소인배와는 함께 일을 도모할 수 없구나! 장차 항왕의 천하를 빼앗는 자가 있다면 그것은 반드시 패공(유방)일 것이다. 우리들 일당은 패공(유방)의 포로가 되고 말 것이다.”라고 분개하였다.

사실 범증으로서는 안타깝기 그지없는 일이었다. 패공(유방)과 같은 인물을 그런 절호의 기회에 제거하지 못했으니 치밀어 오르는 분노로 배알이 뒤틀릴 지경이었다. 그래서 항우가 나간 다음 항장에게 소인배라고 빗대어 항우를 비꼬았던 것이다.

이 무렵 패상으로 돌아온 패공(유방)은 조무상을 끌어내어 베어 죽였다. 홍문의 잔치는 기원전 206년 12월의 일이었다.

수일 후 항우의 40만 대군은 함양을 도륙하여 항복한 진왕 자영을 죽이고 패공(유방)이 봉인해 둔 금은보화며 비단 등을 모두 빼앗고 미녀들까지도 거리낌없이 몰수했다. 그리고 궁전에도 불을 질렀다. 항우가 지른 불은 함양의 거리를 태워 3개월 동안이나 꺼지지 않았다. 이렇게 함양을 유린해야만 항우의 직성이 풀렸을 것이다.

패공(유방)이 일찍이 관중에 들어갔을 때 부로들에게 약속하기를 법 3장의 원칙에 따라 다스리고 나머지 가혹한 법률은 모두 폐지한다고 선언한 바 있다. 까다로운 법률에 시달려 온 진나라 백성들은 패공(유방)의 이 같은 선언에 쾌재를 부르며 그가 관중의 왕이 되기를 가뭄에 비 기다리듯 고대하였다. 그러나 관중의 부로들이 바라던 기대와는 달리 패공(유방)은 관중의 왕이 아니고 파(巴)·촉(蜀)·한중(漢中)의 왕이 되었다. 그의 공식 칭호는 한왕(유방, 漢王)이었다.

함양을 유린한 후 항우는 앞으로의 일을 구상했다.

“이제부터 어떻게 할 것인가?”

항우는 고향인 동쪽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였다. 항우의 속마음을 알아차린 어떤 사람이 다음과 같이 진언하였다.

“관중은 사방이 산천에 의해 가로막힌 천연의 요충지이며 토지 또한 비옥합니다. 이곳을 도읍으로 삼는다면 가히 천하의 주인이 될 것입니다.”

항우는 혈기가 앞설 뿐 심사숙고하는 성품이 아니었다. 앞에 보이는 것은 불타버린 궁실의 폐허뿐 도대체 함양은 을씨년스럽게만 느껴졌다.

“아니야, 역시 고향으로 돌아가야 해.”

항우는 고향행을 결정했다.

“부귀공명을 이룩하고서도 고향에 돌아가지 않는 것은 마치 비단옷을 입고 밤길을 걷는 것과 같은 것이 아닌가, 아무도 알아주는 사람이 없으면 얼마나 쓸쓸한 일이겠는가?”

항우는 관중에서 얻은 금은보화·비단·미녀들을 가득 싣고 금의환향의 길을 재촉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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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영 집필자 소개

서울에서 태어나 한문사숙에서 한문을 수학하고 충남대학교에서 공부했다. 저서로 《이야기 일본사》, 《이야기 중국사》가 있다.

출처

이야기 중국사1
이야기 중국사1 | 저자김희영 | cp명청아출판사 도서 소개

중국 고대부터 전한 시대까지의 역사를 재미있는 에피소드와 함께 이야기 식으로 풀어 썼다. 엄청난 인구와 광대한 국토가 가진 무한한 가능성이야말로 진정한 중국의 힘이며, 이런 중국을 지탱해주는 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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