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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1 진나라의 흥망
약법삼장
約法三章진나라는 법률 지상주의의 나라였다. 세세한 부분까지 법률로 정해져 있었고 그 시행이 엄격하여 백성들은 압박감에서 헤어나지 못했었다. 패공(유방)은 전군을 함양에서 패상으로 물린 후 장량의 조언에 따라 관중의 나이 많은 어른과 호걸들을 불러 모아놓고 이렇게 약속하였다.
“여러분들은 진나라의 가혹한 법에 시달린 지 오래입니다. 정부를 비방하는 자는 삼족을 멸하고, 둘이서 말을 주고받는 자는 저자에서 목을 베니 이 얼마나 무서운 세상이었습니까. 내가 관중의 왕이 된다면 이러한 진나라의 가혹한 법을 모두 폐지하고 삼장(三章)의 법으로 다스릴 것을 약속합니다. ‘사람을 죽인 자는 죽이고, 사람을 상하게 하거나 도둑질한 자는 그에 상응하는 벌을 준다.’
이 세 가지 원칙에 따라 법을 시행하겠으니 모든 관리와 백성들은 안심하고 옛날과 같이 생업에 종사하기 바랄 뿐입니다. 내가 이곳에 온 목적은 백성들의 나쁜 일을 없애기 위함이오, 결코 침해하는 일은 없을 것이니 조금도 두려워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또 한 가지 밝혀둘 것은 내가 군대를 패상에 주둔시키는 뜻은 제후들이 관중에 오기를 기다려 그들과 약속을 정하기 위함입니다.”
이렇게 선언한 패공(유방)은 사람들을 시켜 진나라 관리들과 함께 각 현과 향읍을 돌면서 패공(유방)이 약속한 정책을 고유하니 진나라 백성들이 크게 기뻐하여 앞을 다투어 소·양·술·음식 따위를 가지고 와 군사들에게 헌상하려 하였다.
패공(유방)은 이를 사양하여 하나도 받지 않고 “창고에 남은 곡식이 있으니 민폐를 끼치지 않을 작정입니다.”라고 하니 백성들이 더욱 기뻐하여 패공(유방)이 관중의 왕이 되지 못할까 걱정할 정도였다.
이렇게 관중의 백성들이 패공(유방)을 흠모하고 있을 때 항우가 백만 대군을 거느리고 쳐들어온다는 소문이 백성들에게 퍼졌다. 백성들은 항우가 쳐들어오면 혹시 패공(유방)이 관중의 왕이 되지 못할까 두려웠다. 진나라 백성들은 패공(유방)을 위해 함곡관의 군비를 증강하여 다른 제후 군사들의 입관(入關)을 막으려 하였다.
장수의 남쪽에서 진장 장한과 40여 일간의 대치 끝에 장한을 항복시킨 항우의 군대에서는 심상치 않은 움직임이 일고 있었다. 장한의 휘하에 있던 20만의 진군들은 대부분 장한의 항복에 불만을 품고 있었다. 그 위에 원래 항우가 거느렸던 관동의 병사들이 이들 항복한 군사들에게 복수전을 벌이고 있었다.
일찍이 진나라가 천하를 통일하자 아방궁을 짓는다, 장성을 쌓는다, 여산릉을 만든다는 등 많은 공사를 벌여 쉴 새 없이 관동 지방의 백성들을 강제로 징용하여 중노동에 종사시켰다. 이럴 때면 으레 관서의 병졸들이 감독자가 되어 으스대면서 채찍을 들고 노동자들을 괴롭혔던 것이다. 이때 괴롭힘을 당했던 4,50만의 관동 군사가 괴롭힘을 준 관서 군사 20만에게 앙갚음을 하려는 것이다. 이들 투항병들은 투항한 이래 여지없이 혹사당하여 톡톡히 보복을 받았다. 투항병들은 참을 수가 없었다.
“천하를 호령하던 우리가 이렇게 굴욕을 당하다니, 어디 함곡관에만 들어서 보아라. 그때는 맛을 톡톡히 보여주리라!”
그들은 이렇게 마음속으로 다지고 있었다. 물과 기름이 서로 섞일 수 없듯이 이들 군부 내에는 심한 갈등이 일고 있었다. 이러한 분위기를 알아차린 항우는 무서운 명령을 내렸다.
“항복한 진병 20만은 한 놈도 남기지 말고 모두 죽여 버려라. 그대로 두었다간 애써 관중에 들어간 다음 반란을 일으킬 가능성이 있다.”
항우의 명령을 받은 관동의 군사들은 이들을 밤에 습격하여 진병 20여 만을 신안성 남쪽 구덩이에 생매장하였다. 말만 들어도 소름이 끼치는 잔악한 행위이다.
이리하여 항우는 대군을 이끌고 관중을 목표로 진격을 계속하여 함곡관에 이르렀다. 이곳에서 패공(유방)이 이미 관중에 들어가 함양을 함락하고 진왕 자영으로부터 항복을 받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항우의 분노는 머리끝까지 치솟았다.
“그 촌놈이 먼저 관중에 들어갔다고, 내 그놈에게 본때를 보여주리라!”
항우는 이를 갈았다.
사실 힘에 있어서 패공(유방)은 항우의 적수가 못되었다. 이때 항우의 군사는 40만이고 패공(유방)의 군사는 10만에 불과하였다. 그것도 패공(유방)의 군사는 진에서 투항한 군사가 대부분이었으나 항우의 군사는 진에서 항복한 이질적인 군사 20만을 처치하였으므로 거의가 순수한 산동 출신의 병력이었다. 극단적으로 말하여 패공(유방)의 군사는 혼혈 집단이라 할 수 있고 항우의 군사는 순수 집단이라 할 수 있는데 그 숫자에 있어서도 4대 1로 패공(유방) 쪽이 열세에 놓여 있었다.
항우는 단숨에 함곡관을 쳐부수려 하였다. 그러나 함곡관을 지키는 군사들이 패공(유방)을 위하여 결사적으로 분전하여 쉽게 함락되지 않았다. 항우는 경포를 시켜서 먼저 사잇길로 쳐들어가 관 아래에 있는 진군을 격파하여 마침내 함곡관을 깨뜨릴 수 있었다.
함곡관을 함락한 항우는 단숨에 위수(渭水)의 서쪽까지 군대를 진격시켰다.
패공(유방)의 군중에서도 자신들의 힘이 항우보다 훨씬 열세임을 알고 항우 쪽에 붙으려는 자가 있었다. 패공(유방)의 좌사마(左司馬) 조무상(曺無傷)이 항우의 진영에 몰래 사람을 보내어 “패공(유방)은 관중의 왕이 되고자 하여 함양 궁전의 금은보화와 미녀들을 모두 자기 소유로 하고 관중의 왕으로 봉함을 받고자 합니다.”라고 고자질하였다. 과격한 성격의 항우는 이 말을 듣고 크게 노하였다.
“모든 병사들을 호궤(犒饋)각주1) 하라. 내일을 기하여 패공(유방)의 군사를 도륙하리라.”
항우는 큰 소리로 명령하였다.
이때 항우의 군사는 도합 40만이었는데 이를 불려 백만이라 일컫고 신풍(新豊)의 홍문(鴻門)에 진을 치고 있었으며 패공(유방)의 군사는 모두 10만인데 20만이라 일컫고 패상에 진을 치고 있었다. 항우의 군사(軍師) 범증이 항우에게 진언하였다.
“패공(유방)이 일찍이 산동에 있을 무렵 남의 재물을 탐하고 여자를 좋아하는 무뢰한이었습니다. 그런데 관중에 들어와서는 재물을 취하는 일도 없고 여자를 가까이 하지도 않으니 이것은 그의 사람됨이 결코 작지 않다는 증거입니다. 내가 사람으로 하여금 그의 기상을 살피게 하였던바 천자의 기상이 있다 하니 때를 놓치지 말고 하루라도 빨리 처치하십시오.”
항우는 고개를 끄덕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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