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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1 춘추전국시대
도궁에 비수현
圖窮匕見초나라가 멸망한 다음해인 시황제 25년(기원전 222)에 진나라 장수 왕분은 요동(遼東)으로 도망한 연왕을 포로로 하고 드디어 연나라를 멸망시켰다. 진나라가 천하를 통일하는 역사적 과정에서 가장 극적인 사건을 든다면 그것은 연나라 태자 단(丹)이 자객 형가(荊軻)를 진나라에 보내어 시황제를 암살하려다 실패한 사건이다.
일찍이 연나라 태자 단은 조나라에 인질로 가 있었다. 이때 진왕 정은 조나라에 인질로 와 있던 자초(子楚)의 아들로 태어나서 소년 시절을 단과 친밀하게 보냈다. 이 정이 진나라의 임금이 되었을 때 단이 진나라에 인질로 가게 되었다. 태자 단은 진나라에 가면 진왕이 어렸을 때 친구였던 옛정을 생각해서 반가이 대해줄 줄 알았으나 진왕 정은 그를 냉정하게 대우하였다. 이에 태자 단은 원한을 품고 도망하여 돌아왔다. 돌아와서는 진왕에 대한 원수를 갚기 위해 백방으로 사람을 찾고 있었다.
그 뒤 진나라는 한나라를 멸망시키고 이어 조나라를 공격하여 수도 한단을 함락하고 제나라·초나라를 공격하는 한편 북쪽으로 연나라를 공략하려 하니 연나라에서는 임금과 신하들이 모두 벌벌 떨며 두려워하였다.
얼마 뒤 진나라의 장수 번오기(樊於期)가 진왕에게 죄를 짓고 연나라로 망명해왔다. 태자 단이 번오기를 받아들여 머물러 있게 하자 태부(太傳) 국무(鞠武)가 간하였다.
“진왕은 포악하여 연나라를 노리고 있습니다. 더구나 번 장군이 이곳에 있다는 것을 알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태자께서는 빨리 번 장군을 흉노 땅에 보내어 진나라에서 구실을 잡지 못하게 하십시오. 그리고 서쪽으로 삼진과 맹약을 맺고 남쪽으로 제나라·초나라와 연합하며 북쪽으로 흉노의 선우(單于)와 강화하게 하십시오. 그렇게 한 뒤에라야 진나라를 견제하고 연나라가 보전할 수 있습니다.”
“태부의 계책은 너무나 많은 시일이 걸립니다. 나는 진왕을 원망하는 마음이 극도에 달하여 잠깐 동안도 머뭇거릴 수가 없습니다. 번 장군은 몸을 의탁할 곳이 없어 저에게 의지하고 있습니다. 저는 이를 거절할 수는 없습니다. 바라옵건대 태부께서는 다른 계책을 가르쳐 주십시오.”
태자의 말을 들은 국무는 전광 선생(田光先生)을 태자에게 추천하였다.
태자가 전광 선생을 만나보고 몸을 낮추어 말하기를 “연나라와 진나라는 양립(兩立)할 수 없으니 원컨대 선생께서는 이 점에 유의하여 주십시오.”라고 하였다.
이 말을 들은 전광은 “신이 듣건대 군마는 하루에 천 리를 달릴 수 있으나 늙게 되면 노둔한 말만도 못 하다 하오니 신은 이제 늙은 말과 같습니다. 그러하오나 신이 어찌 나라 일에 가만히 앉아 있을 수 있겠습니까? 저와 친교가 있는 형가(荊軻)는 쓸 만한 인물입니다.”라고 하였다.
“그러시면 형가와 친교를 맺을 수 있도록 주선해주십시오.”
“삼가 그렇게 하겠습니다.”
전광이 즉시 일어나 바른 걸음으로 나가니 태자가 문까지 나와 조용히 말하였다.
“제가 말씀드린 것이나 선생이 말씀하신 것은 나라의 중대사이오니 선생께서는 누설하지 마십시오.”
전광이 머리를 숙이고 웃으며 “염려하지 마십시오.”라고 말하였다.
전광은 그 길로 형가를 방문하였다.
“태자에게 족하(足下)각주1) 를 추천하였으니 원컨대 궁으로 가서 태자를 뵙도록 하시오.”
형가가 “삼가 명령을 받들겠습니다.”라고 말하자 전광이 또 말하였다.
“내가 들으니 유덕한 사람은 일을 행하는 데 사람에게 의심나지 않게 한다고 합니다. 태자가 제게 말씀하시기를 ‘우리가 말한 것은 나라의 큰일이니 선생은 누설하지 마십시오.’라고 하였습니다. 그것은 태자가 저를 의심하는 것입니다. 사람에게 의심을 품게 하는 것은 의기 있는 대장부의 취할 바가 아닙니다.”
그리고는 스스로 목을 찔러 죽었다.
자신이 죽음으로써 국가의 중대사가 외부에 누설되지 않을 것을 보증하기 위함이었다. 전광의 이 같은 장렬한 죽음은 협객의 전형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전광이 태자에게 추천한 형가는 위(衛)나라 사람으로 그의 조상은 제나라 사람이었다. 글읽기와 칼쓰기를 좋아하였으며 그 기량을 내세워 위나라 원군(元君)을 설득하려 하였으나 원군이 그를 등용하지 않았다.
유세길에 나선 형가가 유차(楡次)라는 곳에서 갑섭(蓋聶)과 검술을 논하는데 서로 의견이 맞지 않자 갑섭이 성내어 눈을 부릅뜨고 노려보자 형가는 그곳을 떠나 한단으로 갔다. 한단에서 노구천(魯句踐)과 장기를 두다가 장기 규칙을 논하다가 다투게 되었다. 노구천이 성을 내어 형가를 꾸짖자 형가는 묵묵히 그곳을 떠나버렸다. 형가의 생각으로는 그들과 다투어 봐야 아무런 가치가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이었다.
연나라에 온 형가는 개백장과 축(筑, 악기)을 잘 타는 고점리(高漸離)와 사귀었다. 개백장이란 말할 것도 없이 개를 잡는 백장으로 천대받는 직업이었다. 그러나 형가는 의기가 상합하면 상대방의 신분 따위는 문제삼지 않는 인물이었다.
축이란 거문고와 비슷한 현악기의 일종으로 대나무로 그 줄을 타는 악기였다. 축의 명인 고점리가 축을 타면 형가는 거기에 장단을 맞추어 노래를 부르고 감격하면 곁에 사람이 있든 없든 구애받지 않고 호탕하게 놀았다.
그러나 형가는 여느 주객들과는 달랐다. 글읽기를 좋아하는 지식인이었기 때문에 어디를 가든 그곳의 호걸들과 교유하였다. 연나라에서도 처사 전광이 그가 보통 사람이 아님을 알고 그와 교유하였으며 또 태자에게 추천하였던 것이다.
형가는 태자를 찾아가 뵈었다. 전광이 이미 죽었다는 사실을 말하고 전광의 말을 태자에게 전하니 태자는 두 번 절하고 꿇어앉아 눈물을 흘렸다.
“제가 전 선생에게 누설하지 말라고 경계한 것은 큰일을 성공시키고자 했을 뿐입니다. 제가 어찌 전 선생을 의심했겠습니까?”
형가가 자리에 앉자 태자는 자리를 피하고 머리를 조아리며 말하였다.
“전 선생이 저의 불초함을 모르시고 족하를 추천하여 이렇게 만날 수 있게 되었으니 이것은 하늘이 연나라를 버리지 않으셨기 때문일 것입니다. 제가 생각해보건대 연나라는 힘이 약하여 온 나라의 힘을 다 기울인다 해도 진나라를 당하지 못할 것입니다.
또한 제후들은 모두 진나라에 굴복하여 감히 합종하는 자가 없습니다. 저의 어리석은 생각으로는 진실로 천하의 용사를 얻어 진나라에 사자로 보내어 말로써 진왕을 유인한다면 진왕은 탐욕이 많은 자라 반드시 진왕에게 접근할 수 있을 것이며 그리 되면 하고자 하는 일을 성취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진왕을 위협하여 제후들에게서 빼앗은 땅을 모두 돌려주게 한다면 그것은 최선의 성과이고 그렇게 할 수 없다면 그 기회에 진왕을 찔러 죽이는 길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목숨을 바칠 만한 사람을 알지 못합니다. 형경(형가를 높여 부르는 말)께서는 이 점에 유의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한참 있다가 형가가 말하였다.
“이것은 나라의 큰 일입니다. 신은 노둔하고 재능이 없어 그런 큰일을 맡겨 시키실 수 없을 것입니다.”
태자가 머리를 조아리며 여러 번 간청하니 형가는 드디어 허락하였다. 이에 형가에게 상경(上卿)의 벼슬을 내리고 일등 여관에 머무르게 하였다. 그리고 날마다 천하진미의 음식과 미녀를 보내어 형가의 마음을 흡족하게 하였다.
이렇게 한 지가 꽤 오래건만 형가는 떠날 생각을 하지 않았다.
태자가 참다 못하여 “진나라의 군대가 가까운 장래에 역수(易水)를 건너게 되면 족하를 오랫동안 모시고자 한들 어찌 그렇게 될 수 있겠습니까?”라고 말하였다.
형가는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이 “태자의 말씀은 잘 알겠습니다. 지금 당장 맨손으로 간다 해도 진왕에게 접근할 방법이 없습니다. 접근하지 못하면 만사는 끝장입니다. 지금 진왕은 번 장군을 찾기 위해 현상금까지 걸어놓고 있습니다. 번 장군의 머리와 연나라 독항(督亢)각주2) 땅의 지도를 얻어 진왕에게 선물로 바친다면 진왕은 반드시 신을 만나줄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원수를 기필코 갚을 수 있을 것입니다.”
번오기의 머리가 필요하다는 말을 들은 태자는 그것은 인정상 도저히 할 수 없는 일이라고 반대하였다.
형가는 태자의 심중을 헤아리고 직접 번오기를 만나서 말하였다.
“지금 번 장군의 부모와 일족들은 모두 장군 때문에 죽임을 당하였습니다. 진나라에서는 황금 천 근과 만 호의 고을을 상으로 내걸고 장군의 머리를 구하고 있다 합니다. 장군께서는 장차 어떻게 하시렵니까?”
번오기는 눈물을 흘리며 탄식하였다.
“저는 이 일을 생각하면 가슴이 터지는 듯하오나 아무리 생각해도 좋은 계책이 나오지 않습니다.”
형가가 말하였다.
“지금 당장 연나라의 근심을 풀어주고 장군의 원수를 갚을 수 있는 방법이 있다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번오기는 놀라는 듯 앞으로 나아가 말하였다.
“그게 어떤 계책입니까?”
“장군의 머리를 진왕에게 바치겠다고 하면 진왕은 반드시 신을 만나줄 것입니다. 그때 신이 왼손으로 진왕의 소매를 잡고 오른손으로 가슴을 겨냥하여 찌릅니다. 그렇게 하면 장군의 원수를 갚고 연나라가 보전할 수 있을 것입니다. 장군의 의향은 어떻습니까?”
번오기는 팔뚝을 걷어붙이며 나아가 말하였다.
“이야말로 제가 절치부심 기다리던 일입니다. 당신의 뜻을 알겠습니다.”
번오기는 스스로 목을 찔러 죽었다. 태자가 이 소식을 듣고 매우 슬퍼하였으나 어찌할 수 없었다. 마침내 번오기의 머리는 함에 넣어 봉하여졌다.
여기에 태자는 천하에 예리하기로 이름난 조나라 서부인(徐夫人)의 비수를 백금을 주고 사들였다. 독약을 칼날에 바르고 시험해본 결과 실오라기만큼의 피가 흐를 정도의 상처를 입었는데도 그 자리에서 죽지 않는 자가 없었다.
이 비수는 비단 두루마리로 된 지도 맨 끝에 감쪽같이 끼워 넣었다. 왕을 만나는 사람은 몸에 털끝만큼의 쇠붙이도 지닐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또 태자는 별도로 진무양(秦舞陽)이라는 용사를 형가의 부사로 삼아 형가를 수행토록 하였다. 이 진무양은 13세 때 사람을 죽인 일로 세상에 널리 알려진 용사인데 사람들이 감히 그를 쳐다보지 못하였다.
이렇게 하여 모든 준비는 완료되었으나 형가는 떠날 생각을 하지 않았다. 형가에게는 믿을 만한 사람이 있어 그와 함께 가기로 되어 있었으나 연락이 잘 안 되어 그가 아직 오지 않았기 때문에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태자는 형가의 마음이 변하여 혹시 후회하는 것이 아닌가 의심하여 형가에게 물었다.
“날짜가 이미 다하였습니다. 형경께서는 무슨 다른 생각이 있습니까?”
형가가 크게 성내면서 말하였다.
“이번 일은 헤아릴 수 없는 중대한 일입니다. 진무양이 아무리 용감하다 하나 더벅머리 아이에 불과합니다. 내가 머무르고 있는 것은 내가 믿을 만한 사람이 오기를 기다려 함께 가려고 한 것입니다. 이제 태자께서 재촉하시니 떠나겠습니다.”
형가는 분연히 일어나 길을 떠났다.
태자와 그 일을 알고 있는 빈객들은 모두 흰옷·흰갓 차림으로 그를 전송하여 역수 가에 이르렀다. 흰옷·흰갓은 상복이다. 일의 성패 여하에 관계없이 살아 돌아올 가능성은 만에 하나도 없기 때문에 모두 다 상복을 입은 것이다. 역수 가에 이르렀을 때 그의 친구 고점리는 축을 치고 형가는 거기에 맞추어 노래를 부르니 듣는 사람들이 모두 눈물을 흘리며 울었다. 또 앞으로 걸어가면서 노래를 부르니 그 가사는 다음과 같다.
-
바람소리 쓸쓸하고
風蕭蕭兮
-
역수 물은 차가워라
易水寒
-
장사 한번 가면
壯士一去兮
-
다시 오지 못하리
不復還
- 바람소리 쓸쓸하고
- 風蕭蕭兮
- 역수 물은 차가워라
- 易水寒
- 장사 한번 가면
- 壯士一去兮
- 다시 오지 못하리
- 不復還
그 노랫소리 강개(慷慨)하여 듣는 사람들이 모두 눈을 부릅뜨고 머리털이 갓을 치킬 듯 일어섰다. 이에 형가는 수레에 올라 떠났는데 끝내 뒤를 돌아보지 않았다.
드디어 진나라에 도착한 형가는 천 금을 들여 산 후한 선물을 진왕의 총신에게 바치고 그를 설득하여 진왕 뵙기를 청하였다.
진왕은 총신의 말을 듣고 매우 기뻐하여 연나라의 사자를 함양궁에서 인견(引見)하였다. 이때 형가는 번오기의 머리를 넣은 함을 받들고, 진무양은 독항의 지도를 넣은 상자를 들고 차례로 나아가는데 섬돌 앞에 이른 진무양은 갑자기 얼굴빛이 변하여 벌벌 떨었다.
진나라의 여러 신하들이 이 모습을 보고 괴이하게 여기자 형가가 무양을 돌아보고 웃으며 앞으로 나아가 말하였다.
“북녘 땅 오랑캐의 미천한 사람이 일찍이 천자를 뵈온 일이 없습니다. 그래서 떨며 두려워합니다. 대왕께서는 잠시 그를 용서하시고 사자의 임무를 마치게 해주십시오.”
진왕이 형가에게 말하였다.
“무양이 갖고 있는 지도를 받아오라.”
형가는 지도를 받아 올렸다. 진왕이 두루마리로 된 지도를 펼치면서 보는데 형가의 눈이 잠시도 지도에서 떠날 줄을 몰랐다. 긴장의 순간이었다. 마침내 지도가 끝나니 비수가 드러났다. 형가는 잽싸게 왼손으로 진왕의 소매를 잡고 오른손으로 비수를 잡아 진왕을 찔렀다. 비수가 미처 몸에 닿기 전에 진왕이 깜짝 놀라 몸을 떨쳐 일어서니 소맷자락이 찢어졌다. 진왕이 칼을 빼고자 했으나 황급하고 칼이 칼집에 꽉 꽂혀 있었기 때문에 당장에 뺄 수가 없었다. 형가가 진왕을 쫓아가자 진왕은 기둥을 돌며 달아났다.
여러 신하들은 모두 불의에 일어난 사태에 경악하여 어찌할 바를 몰랐다. 그리고 진나라 법에 당상에서 왕을 모시는 신하들은 한 치의 무기도 갖지 못하게 되어 있었다. 무기를 가진 호위 군사들은 모두 궁전의 아래에서 서 있을 뿐, 임금의 조서가 있어 부르기 전에는 전상에 올라올 수가 없었을 뿐만 아니라 이 황급한 상황에서 당하에 있는 무사를 불러올릴 겨를이 없었다.
그런 까닭에 형가가 진왕을 쫓고 있는데도 창졸간에 형가를 칠 물건이 없었다. 여러 신하들은 모두 손으로 칠 수밖에 없었다. 이때 시의(侍醫) 하무저(夏無且)가 받들고 있던 약이 든 자루를 형가에게 내던졌다. 그러나 진왕은 기둥을 돌며 쫓겨 다닐 뿐 자기 자신에게 칼이 있는 줄도 몰랐다.
좌우의 신하들이 “왕께서는 칼을 등에 짊어지십시오.”라고 외쳤다.
진왕은 그제서야 칼을 등 뒤로 돌리면서 드디어 빼서 형가의 왼쪽다리를 내리쳤다. 형가가 털썩 쓰러지면서 그 비수를 당겨 진왕을 겨냥하여 던졌다. 그러나 빗나가 구리기둥을 맞히고 말았다. 진왕의 장검이 잇달아 형가의 몸뚱이를 내려치니 형가는 여러 군데에 상처를 입어 유혈이 낭자하였다. 형가는 일이 실패했음을 알고 기둥에 의지하여 진왕을 꾸짖어 말하였다.
“내가 실패한 것은 산 채로 협박하여 제후들에게서 빼앗은 땅을 모두 돌려주겠다는 약속을 받아서 태자에게 보답하려고 했기 때문이다.”
이때에 좌우의 신하들이 몰려와서 형가를 죽였다.
이 극적인 사건은 그 후 여러 가지 전설을 후세에 남기고 있다. 진왕이 기둥을 돌며 형가에게 쫓기고 있을 때 위에서 말한 것과는 좀 달리 형가는 시의 하무저가 던진 약이 든 자루에 걸려 멈칫하는 순간 진왕이 장검을 빼어 형가를 내리쳤다는 이야기가 있는가 하면,` 형가가 진왕을 만난 곳은 지밀(至密) 내전으로 내시와 궁녀만이 있는 곳이었다. 지도 끝에 숨겨 놓은 비수가 나타나자 형가가 진왕의 목에 비수를 들이댔다. 진왕은 황급한 상황에서도 기지를 발휘하여 형가에게 마지막 소원이라고 하면서 다음과 같이 부탁하였다.
“이제 나는 꼼짝없이 죽게 되었소. 죽는 마당에 내 마지막 소원 하나 들어줄 수 있겠소?”
형가는 무슨 생각에서였는지 “그 마지막 소원이 무엇이오?”라고 물었다.
“나에게는 둘도 없이 사랑하는 여인이 있소. 그 여인의 거문고 타는 소리 한 곡조만 듣고 죽겠소.”
그 여자는 병풍 뒤에서 숨을 죽이며 형가와 진왕의 대화를 듣고 있었다. 거문고 타는 기회만 주어진다면 진왕을 살릴 수 있는 곡조를 타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렇게 합시다.”
형가의 말소리가 들려 왔다.
그 여인은 거문고를 타기 시작하였다.
“여덟 자 높이의 병풍도 대왕께서는 능히 뛰어넘으실 수 있습니다. 빨리 몸을 떨쳐 병풍을 뛰어넘으십시오.”
거문고 소리를 듣고 있던 진왕은 비호처럼 형가의 손을 떨치고 병풍을 뛰어넘어 위기를 모면할 수 있었다.
실패로 끝난 이 극적인 사건은 전국 시대 말기에 이르러 국력이 약한 연나라가 강국 진나라를 도저히 대항할 힘이 없었기 때문에 부득이 암살이라는 비상수단을 쓸 수밖에 없었던 당시의 상황을 대변해주고 있다. 이 사건은 250여 년에 걸친 전국 시대의 변화무쌍한 풍운의 역사가 서서히 그 막을 내리고 있음을 암시해주는 사건이라 할 수 있다.
이 사건이 있은 다음해(기원전 226) 진나라는 더욱 많은 군대를 동원하여 연나라 수도 계성(薊城)을 함락하니 연왕 희(喜)와 태자 단은 요동으로 도망하였다. 그래도 진나라가 공격을 늦추지 않자 연왕은 태자 단의 목을 베어 그 머리를 진왕에게 바쳤다. 그러나 진나라가 연나라를 공격하는 근본 의도는 암살 사건에 대한 보복이 아니고 천하를 통일하기 위한 것이었다.
형가가 진나라의 함양궁에서 죽임을 당한 5년 후 진나라의 대군은 요동까지 추격하여 연왕 희를 사로잡음으로써 연나라는 멸망하였다. 소공석(召公奭)을 시조로 하는 연나라는 8백여 년의 역사에 종지부를 찍었으며 희성(姬姓)의 나라 가운데 최후에 멸망한 것이 이 연나라였다.
6국 가운데 마지막으로 남은 것은 제나라였다. 연나라가 멸망한 다음해 진나라 장수 왕분은 연나라를 멸망시킨 여세를 몰아 창졸간에 제나라 수도 임치에 들이닥치니 제나라 사람들이 감히 대항하지 못하였다. 진나라는 사람을 시켜 제왕을 달랬다.
“만약 당신이 항복하면 5백 리의 땅을 주어 조상의 제사를 받들게 하고 당신의 자손들을 길이 보전하게 할 것이다.”
제왕이 항복하자 약속과는 달리 제왕을 공(共) 땅으로 추방하여 산 속에서 굶어 죽게 하였다. 이것이 시황제 26년(기원전 221)의 일로 제나라를 마지막으로 평정함으로써 마침내 천하통일의 대업을 이룩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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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출처
중국 고대부터 전한 시대까지의 역사를 재미있는 에피소드와 함께 이야기 식으로 풀어 썼다. 엄청난 인구와 광대한 국토가 가진 무한한 가능성이야말로 진정한 중국의 힘이며, 이런 중국을 지탱해주는 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