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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1 춘추전국시대
천토의 회맹
진(晋)의 문공을 맹주로 하는 연합군이 성복의 대전에서 승리하고 개선한다는 소식을 들은 주의 양왕은 개선군을 위로하기 위해 천토(踐土)까지 마중하였다. 진의 문공은 그곳에 왕궁을 짓고 맹주가 되어 제(齊)·노(魯)·송(宋)·채(蔡)·정(鄭)·위(衙)·거(莒)의 제후와 회맹하였다. 이때의 맹약을 《춘추좌전》에는, ‘제후들은 모두 주나라 왕실을 도와 제후들이 서로 침해하는 일이 없어야 한다. 만일 이 동맹을 위반하면 밝은 신은 이들을 죽이고 그 군대를 약하게 하며, 그 나라에는 행복이 없고 그들의 자자손손에 이르기까지 노소를 가릴 것 없이 모두 벌을 받을 것이다.’라고 기록하고 있다.
이 맹약을 규구의 맹약에 비하면 구체성이 매우 결여되어 있다. 태자를 바꾸지 말 것, 흉년이 들었을 때 식량을 융통해줄 것 등은 이미 규구의 맹약에서 약속한 바 있었기 때문에 중복을 피하기 위해 생략한 것인지도 모른다.
그 해 겨울에 진의 문공은 다시 온(溫, 하남성)에서 제후를 소집했다. 이 회맹에 참가한 제후들을 《춘추》에는 ‘노희공(魯僖公)·진후(晋侯)·제후(齊侯)·송공(宋公)·채후(蔡侯)·정백(鄭伯)·진자(陳子)·거자(莒子)·주자(邾子)·진인(秦人)’ 등으로 열거하고 있다. 다른 모든 나라의 제후들은 작위를 넣었으면서도 대국이었던 진(秦)을 맨 끝에 열거했고 그것도 진백(秦伯)이라 하지 않고 진인이라고 한 것은 진나라는 목공 자신이 참가하지 않고 대신을 파견했기 때문인 듯하다.
《사기》에는 진의 문공이 맹주로서 이들 제후들을 거느리고 주왕실에 조회하려고 하였으나 아직도 힘이 부족하여 혹시 배반자가 있을지 몰라 주의 양왕을 천토에 있는 궁전에서 하양(河陽)까지 불러냈다고 기록하고 있다. 확실히 말해서 이들 제후 가운데에는 정·채·진 등 일찍이 초나라에 속해 있던 제후도 포함되어 있었기 때문에 이들 제후들이 배반할 우려도 없지 않았으나 모두 소국에 불과했다. 이런 점으로 볼 때 문공의 본의는 패자로서 자신의 위엄을 보이기 위해서였다고 볼 수 있다.
성복의 승전 이후 2년째 되는 해에 진(晋)나라는 진(秦)나라와 함께 정(鄭)나라를 공격하였다. 성복의 대전 때 정나라는 초나라를 도왔다는 것과 진의 문공이 망명했을 때 정나라로부터 무례한 대우를 받았다는 것이 정나라 토벌의 구실이었다.
지리적으로 강대국 사이에 낀 정나라로선 동네북처럼 강대국에게 치이기 일쑤였다. 초나라가 북진하기 위해서는 정나라를 통과해야 하기 때문에 만약 초나라의 말을 듣지 않으면 정나라는 멸망해버릴 형편이었다. 성복의 대전 때도 이러한 이유 때문에 초나라에 협조하였던 것이며 초나라가 패하자 개전의 뜻을 보이기 위해 천토의 회맹과 하양의 회맹에도 참가하여 진의 문공에게 호의를 보였던 것이다. 게다가 문공이 망명 생활 때 냉대한 것은 이미 7년 전의 일로 정나라에서는 까마득히 잊고 있는 일이니 약소국인 정나라로선 이번의 침공을 약소국의 비애로 돌릴 수밖에 없었다.
“중이 일행을 후대하지 않을 바엔 모두 죽여 없애 버립시다.”
이 말은 일찍이 문공이 정나라에 망명했을 때 대부 숙첨이 정의 문공에게 진언한 말이다. 이 말이 문공의 귀에 들어갔고, 이 사실을 알게 된 숙첨은 이제 끝장이다 생각하고 자결하였다. 정나라는 숙첨의 목을 바치면서 용서를 빌었으나 진나라에선 모든 책임은 군주에게 있으니 정의 문공이 직접 나와 항복해야 한다며 거절하였다.
막다른 골목에 이른 정나라에선 진(秦)의 진영에 사자를 보내어 다음과 같이 호소하였다.
“만약 이번 싸움에 정나라가 망한다면 진(晋)나라의 영토가 될 것이 뻔합니다. 이렇게 되면 진(秦)에서는 이번 싸움에 쓸데없는 희생만 치를 뿐 아무런 소득이 없을 뿐만 아니라 동방의 우호국을 하나 잃는 것은 물론 동방에 진출할 수 있는 교두보를 잃는 셈이 되니 만약 진(秦)나라가 앞으로 천하의 패자가 되고자 한다면 차라리 정나라를 살려두는 편이 훨씬 유리하지 않겠습니까?”
진(秦)나라에서는 이 말을 옳게 여겨 군대를 철수하자 진(晋)나라에서도 할 수 없이 철수하여 정나라는 겨우 위기를 모면했다.
이로부터 2년(기원전 628) 후 진의 문공과 정의 문공은 모두 세상을 떠났다. 19년 동안 망명 생활을 보낸 진의 문공은 진나라에 복귀하여 재위한 것이 9년에 불과하였다. 그러나 그는 주의 양왕을 복위시키고 제후의 맹주로서 초나라를 격퇴시키고 주의 양왕을 불러내어 회맹하는 등 빛나는 업적을 남겨 명실공히 패자로서의 위엄을 떨친 인물이었다.
제나라는 환공이 죽자 바로 패자의 나라로서의 역량을 상실했으나 진나라는 문공이 죽은 후에도 여전히 강국의 지위를 유지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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