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과사전 본문 인쇄하기

출처 이야기 중국
사1
고대 중국 역사의 기원

계의 세습 왕조 체제

우의 뒤를 이어 우의 아들 계(啓)가 제위에 올랐다. 지금까지는 천자가 어진 인물을 골라 제위를 물려주는 이른바 선양의 방법으로 제위가 계승되었으나 우의 아들 계에 이르러 이 선양의 체제가 무너지고 세습의 방법으로 바뀌게 되었다. 우는 자기의 뒤를 익에게 물려주려 하였으나 제후들이 우의 공덕을 추모하여 그의 아들 계를 제위에 앉힌 것이다.

계의 출생에는 다음과 같은 전설이 있다.

우는 일찍이 제후인 도산씨(塗山氏)의 딸을 아내로 맞이했다. 도산은 안휘성(安徽省) 회원현(懷遠縣) 부근으로 회하(淮河)에 면한 지방이다. 치수 공사에 한창 바쁠 때 결혼하였기 때문에 일에 쫓기는 우로서는 결혼한 지 4일 만에 다시 치수 공사에 나가지 않으면 안 되었다. 그래서 신혼생활을 치수 공사장 부근의 대상(臺桑)이라는 곳에서 시작하였다.

그런데 어쩌다 실수로 그의 아내에게 보여서는 안 될 흉한 모습을 드러내고 말았다. 험한 길을 빨리 가기 위하여 마구 달렸는데 그때의 모습이 흡사 곰과 같았다. 그의 아내는 이 모습을 보고 소스라치게 놀라 도망치다가 그만 돌덩이로 변해버렸다. 이때 그녀는 임신 중이었다. 우는 그 돌덩이를 향해 “제발 내 자식이나 돌려주시오.” 하고 외치자 돌덩이가 깨어지면서 아기가 나왔다. 이 아기가 바로 계라는 것이다. 계(啓)는 ‘열리다’의 뜻으로 그가 돌을 열고 나왔다는 뜻에서 그 이름이 붙여졌다.

이곳이 숭산(嵩山) 기슭이었는데 이보다 훨씬 뒤인 한무제(漢武帝) 원봉 원년(元封元年)에 무제가 이곳에 와서 ‘하후계모석(夏后啓母石)’을 발견하고 그 이튿날 숭산에 올라 사당을 짓고 산 밑 3백 호를 이 사당의 봉읍(奉邑)으로 한다는 조서를 내렸다는 기록이 있다 .

굴원(屈原)은 〈천문(天問)〉에서 그들의 출생을 슬퍼하였다.

“우의 아들이며 도산씨의 소생인 계는 예악(禮樂)을 정비한 인물인 듯하다. 그는 음률(音律)을 정비함으로써 ‘구변(九辯)’, ‘구가(九歌)’를 지어 사람들을 즐겁게 하였다. 이렇게 근면한 사람이 어찌하여 어머니를 죽이고 태어났단 말인가. 성인으로 추앙되는 우, 예악을 창시한 그의 아들 계 모두가 인생으로서 만족한 삶을 누렸다고 할 수 없으니 안타까운 일이로다.”

계는 제위에 오른 지 39년 만인 78세에 죽었다고 하는데 그의 후계자들이 유능하지 못하여 하왕조에 위기가 닥쳤다.

계의 아들 태강은 할아버지 우, 아버지 계와는 달리 몹시 우둔한 인물이었다. 하국(夏國)의 도성에서 가까운 곳에 유궁(有窮)이란 나라가 있었는데 그의 왕 후예(后羿)가 은근히 야심을 품고 태강의 행동을 살피고 있었다. 당시 하국의 수도는 지금의 하남성 공현(鞏縣) 부근으로 서남쪽으로 낙수(洛水)·이수(伊水)가 흐르고 북쪽에는 황하가 흐르고 있었다. 사냥을 즐기는 태강은 소수의 병력만을 거느리고 기분내키는 대로 사냥을 하다가 낙수를 건너 국경 밖으로 벗어나 버렸다.

기회를 노리고 있던 유궁의 후예는 많은 군사를 이끌고 낙수 기슭에서 태강이 오기를 기다리고 있다가 태강과 결전을 벌였다. 태강은 힘을 다하여 대항하려 하였으나 소수의 군세로 어찌할 도리가 없어 말머리를 돌려 달아났다. 그곳에서 사방의 제후들에게 원조를 요청하고 제후의 힘을 빌려 국세를 회복하려 하였으나 그를 도우려는 제후는 한 사람도 없었다. 그만큼 그는 실덕(失德)이 컸던 것이다. 애만 태우다가 얼마 후 병사하고 말았다.

태강을 몰아내고 하나라의 정권을 대신한 예는 요임금 때 9개의 태양을 쏘아 떨어뜨렸다는 신화 속 활의 명인 예와 동일한 인물인지도 모른다. 그는 활 솜씨만을 믿고 정사는 멀리하고 사냥과 술, 계집으로 일을 삼았다. 무라(武羅)·백인(伯因) 등 어진 사람을 멀리하고 간사한 한착(寒浞)을 재상에 등용하였다. 한착은 예에게 아부하고 예의 측근들에게 뇌물을 뿌리며 주군인 예로 하여금 사냥에만 몰두하도록 하였다. 그 목적은 나라를 빼앗기 위한 것이었다. 어느 날 예는 사냥에서 돌아와 한착의 부하에게 죽임을 당하였다.

청동 술잔

현재 중국에서 발견된 유물 중 가장 오래된 청동 용기이다.

ⓒ 청아출판사 | 저작권자의 허가 없이 사용할 수 없습니다.

한착은 예를 죽여 그를 불에 구워 예의 아들에게 그 고기를 먹이려 하였으나 예의 아들은 아버지의 살을 차마 먹지 못하고 그대로 굶어 죽었다. 또 한착은 예의 처와 첩을 모두 빼앗아 차지한 후 요(澆)를 낳았다.

요는 한때 하나라의 중신인 침관(斟灌)·침심(斟甚)을 멸망시켜 세력을 확장하였으나 하나라의 옛 신하들이 궐기하여 한착을 토멸하고 소강(少康)을 황제로 옹립였다. 소강은 유궁국을 완전히 멸망시키고 하왕조를 중흥시켰다.

그 후 하왕조는 4백여 년에 걸쳐 중국에 군림하였다. 소강의 11대 천자로 걸(桀)이라는 악명 높은 천자가 제위에 오르니 이 이가 후대의 은(殷)나라 주(紂)와 함께 악역무도한 군주의 표본으로 상징되는 인물이다.

본 콘텐츠를 무단으로 이용하는 경우 저작권법에 따라 법적 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
위 내용에 대한 저작권 및 법적 책임은 자료제공처 또는 저자에게 있으며, Kakao의 입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김희영 집필자 소개

서울에서 태어나 한문사숙에서 한문을 수학하고 충남대학교에서 공부했다. 저서로 《이야기 일본사》, 《이야기 중국사》가 있다.

출처

이야기 중국사1
이야기 중국사1 | 저자김희영 | cp명청아출판사 도서 소개

중국 고대부터 전한 시대까지의 역사를 재미있는 에피소드와 함께 이야기 식으로 풀어 썼다. 엄청난 인구와 광대한 국토가 가진 무한한 가능성이야말로 진정한 중국의 힘이며, 이런 중국을 지탱해주는 저..

본 콘텐츠를 무단으로 이용하는 경우 저작권법에 따라 법적 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
위 내용에 대한 저작권 및 법적 책임은 자료제공처 또는 저자에게 있으며, Kakao의 입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