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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1 고대 중국 역사의 기원
하왕조의 시작
우순(虞舜)의 시대가 지나고 세습 왕조인 하왕조(夏王朝)가 우(禹)에 의하여 성립하였다. 처음 우임금은 제위를 아들에게 물려주겠다는 생각이 조금도 없었다. 그는 자기 신하 가운데 익(益)이라는 사람에게 천하를 넘겨주었으나 우임금이 죽고 3년상을 마치자 익은 우임금의 아들인 계(啓)에게 제위를 물려주고 기산(箕山)에 숨어버렸다. 계는 어진 사람이었기 때문에 백성들의 인망을 한몸에 안고 있었다.
우임금의 출생 경위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설이 있다. 요임금 말년 대홍수가 천하를 휩쓸자 우임금의 아버지 곤(鯀)으로 하여금 치수(治水)를 하도록 하였다. 9년에 걸친 치수 사업에도 성과가 없자 그 책임을 물어 우산(羽山)에 가둔 후 마침내 곤을 죽였다. 3년이 지나도록 그 시체가 썩지 않자 상제가 이를 괴이하게 여겨 상제의 보도(寶刀)로 그 시체를 자르도록 하였는데 그 뱃속에서 우임금이 나왔다고 한다.
우는 즉위한 후에도 치수 사업을 계속하고 도로의 건설 및 개척 사업에도 힘을 기울였으며 방방곡곡을 순행하였다.
하루는 어느 고을을 지나는데 수많은 사람들이 한 사나이를 둘러싸고 떠들고 있었다. 우임금이 그들 곁으로 다가가 연유를 묻자 “집안이 가난하여 배고픔을 견디지 못하고 벼를 훔쳤습니다. 이 몹쓸 놈을 벌하여 주시옵소서.”라고 그 사나이가 답했다.
사나이는 눈물을 흘리면서 자기의 비행을 사죄하고 뉘우치는 기색이 역력하였다. 이 모양을 본 우임금은 그 사나이의 손을 불쑥 잡고 눈물을 줄줄 흘리는 것이었다. 뜻밖의 일에 놀란 백성들이 조심스럽게 그 연유를 묻자 우임금은 “요임금이나 순임금이 천자로 계실 때는 모든 백성들이 모두 천자의 마음을 자기 마음으로 삼았다. 그런데 내가 제위에 오른 지금 백성들은 사리사욕에 사로잡혀 각자 자기 마음을 갖고 있다. 이는 다 나의 부덕한 소치니라.”라고 말했다.
이 말을 들은 모든 신하와 백성들은 감격하여 땅에 엎드려 함께 울었다.
그런데 우의 시대에 획기적인 발명이 이루어졌다. 수레(車)와 우물, 술이 그 대표적인 것인데 수레는 해중(奚仲), 우물은 익(益), 술은 의적(義狄)이 발명했다. 의적이 술을 발명하게 된 경위는 다음과 같다.
어느 날 의적은 물에 담근 쌀에서 향긋하고 달콤한 냄새를 맡게 되었다. 의적은 그 냄새에 이끌려 맛을 보니 지금까지 맛보지 못한 고상한 맛이었다. 그는 여기서 쌀로 술을 담그는 법을 생각해내고, 술을 담그어 맛을 보니 과연 천하진미였다.
‘이렇게 맛있는 것을 나 혼자만 먹을 수가 있겠는가. 천자님께 진상해야지.’
그는 우에게 헌상했다. 우는 그 술을 잔에다 받아 마셨다. 감미로운 향기가 코를 찔렀다. 한 잔 한 잔 마시는 동안 황홀경에 빠져 마침내 잠이 들었다.
“너무 맛이 있구나. 이렇듯 맛이 좋으니 경계하지 않으면 집안을 망치는 자, 나라를 망치는 자가 속출하겠다.”
그리고 다시는 술을 입에 대지 않았으며 의적을 멀리 했다고 한다.
우는 처음 제위에 오른 후 그 위엄을 보이기 위하여 제후들을 도산(塗山)에 모아 연회를 베풀었다. 일찍부터 우의 명성을 듣고 있었던 제후들은 앞을 다투어 공물(貢物)을 받쳐들고 모여드니 그 수가 수만을 헤아렸다. 다시 수년 후 우는 동으로 순행하여 절강성 회계(會稽) 땅에 이르러 다시 제후를 초청했는데 이때도 수만을 넘는 제후들이 옥과 비단을 들고 모여들어 천자의 위엄에 굴복했다. 그 후 우는 치수 공사에 너무 정력을 바친 탓인지 회계에서 병들어 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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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고대부터 전한 시대까지의 역사를 재미있는 에피소드와 함께 이야기 식으로 풀어 썼다. 엄청난 인구와 광대한 국토가 가진 무한한 가능성이야말로 진정한 중국의 힘이며, 이런 중국을 지탱해주는 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