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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인문학
이야기 4 왜 4달러 커피를 마시면서 팁으로 2달러를 내는 사람이 많은가?
팁
tiptip은 “팁, 행하(行下 , 품삯 이외에 더 주는 돈), 사례금”이다. 옛날 영국의 여관들엔 고객들이 종업원들에게 주기 위해 동전을 넣을 수 있는 통이 마련되어 있었다. 그 통엔 이런 글이 쓰여 있었다. “To insure promptness(신속한 서비스를 위하여).” 나중엔 이 단어들의 첫 글자만 따서 “T.I.P.”라고 써 붙였는데, 이게 오늘날의 tip이 되었다는 이야기다.각주1)
팁 문화는 미국에선 당연하게 여겨지지만, 세계 보편적인건 아니다. CNN에서 전 세계 7,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를 보면, tip을 주는 사람들의 국적은 태국(89퍼센트), 필리 핀(75퍼센트), 홍콩(71퍼센트), 인도(61퍼센트), 호주(55퍼센트), 말레이시아(40퍼센트), 인도네시아(40퍼센트), 싱가포르(33퍼 센트), 베트남(30퍼센트), 중국(28퍼센트), 뉴질랜드(20퍼센트), 대만(17퍼센트), 한국(13퍼센트), 일본(3퍼센트) 순으로 나타났다.각주2)
하지만 미국에서도 팁이 처음부터 문화적 규범으로 받아 들여진 건 아니었다. 비비에나 첼리저(Viviana A. Zelizer)는 『돈의 사회적 의미(The Social Meaning of Money)』(1994)에서 “1900년대 초 팁이 점점 대중화되어 가자 그것은 커다란 도덕적, 사회적 논쟁을 야기하였다. 실제로 팁을 주는 행위를 근절하려는 노력이 전국적으로 확산되었다. 주 의회들은 그러한 행위를 처벌 가능한 행위로 규정하면서 팁의 관행을 근절시키려고 하였고, 이들 중 일부는 성공적이었다”며 다음과 같이 말한다.
“에티켓 서적에서, 그리고 법정에서조차 팁은 호기심, 즐거움, 동요 때로는 공공연한 적개심 등이 혼합되어 상세하게 조사되었다. 1907년 정부는 미 해군의 위촉 공무원과 미 해군 명부에 등록된 사람들이 그들의 여행 경비 영수증 항목에 팁을 포함시킬 수 있도록 승인함으로써 공식적으로 팁을 허용하였다. 당시 그 결정은 불법적인 부당이득을 승인하는 것이라 는 비난을 받았다. 주기적으로 팁반대연맹을 구성하자는 요구들이 있었다.”로런스 레시그(Lawrence Lessig), 김정오 옮김, 『코드: 사이버공간의 법이론』(나남출판, 1999/2002), 354~355쪽.
디지털 시대에 이르러 미국의 팁 문화가 큰 변화를 겪고 있다. 팁을 요구하는 쪽이 뻔뻔해지고 있다고나 할까? 이른바 ‘디폴트 세팅(default setting, 초기 설정)’때문이다. IT 기업들은 대부분의 사용자가 기기나 서비스의 구입 또는 설치 당시의 ‘디폴트 세팅(default setting , 초기 설정)’대로 사용한다는 점을 알고,이를 자사의 이익을 위해 최대한 활용, 아니 악용하는 경향이 있다. 이와 관련, 구본권은 “디폴트 세팅 경쟁은 스마트폰 등장 이후 PC에서 모바일 환경으로 옮겨갔다. 스마트폰은 화면이 작아 PC에 비해 사용자가 수시로 설정을 바꾸기가 쉽지 않다”며 다음과 같이 경고한다.
“업체 위주의 디폴트 세팅은 공정한 경쟁을 방해하고 결국 사용자 편의를 저해한다.⋯⋯디폴트 세팅은 사용자인 당신이 스스로를 위해 맞춤형으로 설정한 것이 아니다. 사업자의 이익을 위해 개발되었거나 설정된 경우가 대부분이다.⋯⋯기술의 구조를 모르거나 이해하지 못할 경우, 또 알더라도 게을러서 수정하지 않는 경우 사용자들은 사업자들이 만들어놓은 디폴트 세팅의 덫에 걸려든 먹잇감이 될 수 있다.”구본권, 『당신을 공유하시겠습니까?』(어크로스,2014),104~108쪽.
심지어 커피전문점, 택시, 미용실까지 그런 ‘디폴트 상술’에 뛰어들고 있다. 미국 뉴욕의 커피전문점 ‘카페 그럼피(Cafe Grumpy)’에서 커피를 주문하면 마지막에 커피값은 4달러인데 팁을 1, 2, 3달러 중 얼마나 주겠느냐고 강요당한다. 물론 ‘노 팁’ 과 ‘직접 기재’도 적혀 있기는 하지만, 커다란 아이패드 모니터에 터치스크린 방식으로 누르게 되어 있어 점원과 뒷사람이 다 지켜보고 있다. 그런 시선 때문에 가운데 있는 2달러를 누르는 사람이 많은데, 4달러 커피에 2달러면, 팁이 무려 50퍼센트다. 뉴욕에서 택시를 타도 신용카드로 결제하면 팁을 20퍼센트, 25퍼센트, 30퍼센트 중 얼마 줄 거냐고 묻는 창이 결제 화면에 뜬다.
『뉴욕타임스』는 “모바일 장치와 기술이 발전하면서 덩달아 팁까지 올라가고 있다”고 꼬집었고, 『포브스』는 팁이 커지는 이유 중 하나를 ‘초기 설정값(default)’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종이 영수증과 달리, 모니터상에 어떤 화면을 어떤 크기로, 어떤 위치에 띄울지 각각의 상황마다 쉽게 프로그램을 바꿀 수 있기 때문에 가게에 유리하게 할 수 있다는 것이다. 『포브스』 는 “디지털 기술이 팁을 계산하거나 직접 기재하는 불편함을 덜어주는 대신 더 많은 팁을 내게 한다” 며 “요구하는 대로 따라 하기보다는 창피함을 무릅쓰고라도 본인의 의지대로 팁을 주는 게 현명한 소비자”라고 말했다.각주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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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대학교 신문방송학과 교수. 탁월한 인물 비평과 정교한 한국학 연구로 우리사회에 의미있는 반향을 일으켜온 대한민국 대표 지식인. 대표 저서로는 <강남 좌파>, <한국 현대사 산..
출처
‘재미 영어’를 위한 이 책은 심리·마음·두뇌, 정치·갈등·리더십, 역사·사회·변화, 경제·세계화·국제관계, 교육·대학·가족, 인생·삶·행복, 사랑·남녀관계·인간관계, 언론·대중문화·마케팅, 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