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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증법이라는 말은 그리스어의 dialektike에서 유래한 것으로 대화술이나 문답법을 뜻하는 것이었다. 상대방의 논리가 지니고 있는 허점을 문답을 통해 밝혀냄으로써 자기 논리의 정당성을 밝히는 기술이었다. 변증법은 엘리아 학파의 제논을 창시자로 하며, 문답을 통해 진리를 향해 나아가고자 했던 소크라테스의 변론술로 널리 알려져 있기도 하다. 변증법이 이런 차원에서 좀더 나아가 새로운 논리학과 세계관의 형태로 자리잡게 된 것은 근대의 독일 철학자 헤겔에 의해서였다. 마르크스주의자들은 이를 이어받아 역사의 발전 과정에 대한 철학적 기초로 삼음으로써 변증법은 한층 중요한 의미를 지니게 되었다.
헤겔 철학의 논리적 뼈대가 되는 것으로서의 변증법은 무엇보다 운동과 변화를 포착하고 기술하는 논리라는 점에서 특징적이다. 헤겔은 자신의 삼단계 논리학(존재론, 본질론, 개념론) 중 첫번째에 해당하는 존재론에서, 그 첫번째 항목을 생성(Werden)으로 설정했다. 생성은 존재와 무의 통일로 이루어지는 것으로서, 존재와 무를 동시에 자기 안에 하나의 계기로 품고 있는 개념이다. 말하자면, 세상에는 순수한 있음도 순수한 없음도 없다는 것, 새로운 존재가 될 수 있는 계기를 품고 있는 무, 혹은 언제든 무화될 수 있는 한시적인 존재가 인식의 대상으로 의미 있는 것이며 그것이 세상의 실체라는 것이다.
따라서 이런 존재(=무)란 존재만도 아니고 무만도 아닌, 존재이면서 동시에 무인 어떤 것을 뜻하는데, 그렇다면 그것은 무엇인가. 시간 속에서 끝없이 있음과 없음을 반복함으로써 생겨나는 것, 곧 새롭게 생겨남이라는 뜻의 생성과 변화가 그것이다. 헤겔이 첫번째 의미 있는 항목으로 설정한 생성이라는 개념은 바로 그와 같은 변화나 운동을 지칭하는 개념인 것이다.
이처럼 운동과 변화를 포착하는 논리학이 헤겔식의 변증법적 논리학이다. 아리스토텔레스에 의해 정초된 전통적 논리학에 의하면, 있는 것(존재)은 있는 것이고 없는 것(무)은 없는 것이지 동시에 있으면서도 없을 수는 없다. 이것은 동일율(사람은 사람이다)과 모순율(사람은 사람이 아니다), 배중율(사람은 사람이면서 동시에 사람이 아닐 수는 없다. 둘 중 하나여야 한다. 배중율이라는 말은 양자택일의 중간항을 배제한다는 뜻이다)의 삼박자로 표현된다. 이런 틀에 대해 헤겔은 내용 없는 동어반복에 불과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전통적인 형이상학에서 중요한 위치를 점하고 있던 “무로부터는 아무것도 생겨나지 않는다”라는 명제를 공허한 논리라고 부정했던 것이 그 대표적인 예이다. 이와 같은 비판을 통해 헤겔이 제시하는 대안이 곧 생성으로, 이것은 존재와 무 같은 서로 모순되는 것들이 결합함으로써 생겨나는 발생과 소멸의 운동과 변화를 자기 안에 품고 있는 개념이다. 형식적인 분류 틀에 붙잡혀 있는 고정된 대상이 아니라, 운동하고 변화하는 대상들이 세상을 채우고 있으며 그것을 포착하는 일이 철학의 과업이라는 게 헤겔의 주장인 셈이다.
따라서 헤겔의 변증법적 논리학에서는 서로 상반되고 모순되는 요소들을 포착하는 것, 그리고 그런 요소들이 서로 반발하고 부정함으로써 어떻게 새로운 요소로 종합되는지를 파악하는 것이 중요한 과제가 된다. 흔히, 정반합(正反合, 정립・반정립・종합)이라 지칭되는 운동의 방식, 그리고 부정과 지양(止揚, Aufheben) 등의 용어들이 그의 논리학에서 핵심적인 위치를 점하게 되는 것도 그 때문이다. 정과 반이라는 서로 대립되는 요소들이 맞닥뜨려지고 서로를 부정하는 움직임 끝에 어떻게 새로운 요소로 탄생하는지를 설명하는 것이 곧 헤겔의 지양이라는 개념이 함축하고 있는 뜻이다.
여기에서 작동하는 부정이라는 개념은 상대방의 존재 자체를 전면적으로 부정해버리는 것이 아니라, 상대가 지니고 있는 통합될 수 없는 특정한 요소만을 부정하고 보존되어야 할 것은 끌어안은 채 새로운 차원의 통합을 향해 나아가는 것을 뜻하며, 이를 전면적 부정과 구분하여 규정적(특정한) 부정(die bestimmte Negation)이라 부른다. 헤겔은 이같이 대립자들의 통일, 모순된 것들의 새로운 차원으로의 지양, 축적된 양적 변화의 새로운 질적 변화로의 전환 등의 방법으로 구성되는 사고방식을 변증법적 논리학이라 불렀다.
헤겔의 이와 같은 논리는 마르크스주의자들에 의해 그들 특유의 역사관과 결합함으로써 변증법적 유물론이라는 세계관을 형성하기도 했다. 그들은 인류의 역사를 대상으로 자연과학과 같은 합법칙성을 찾아내고자 했으며 그것을 역사 발전의 법칙이라 불렀다. 그들은 헤겔이 자신의 역사 기술에서 역사 진행의 원천이라 생각했던 정신을 대신하여, 해당 시기 인류가 지니고 있던 생산력과 그것을 처분하는 방식이었던 생산양식과의 상호관계에 의해 인류 역사의 단계를 구분했고, 이러한 이론화를 통해 현재 상태를 넘어서는 새로운 역사적 시대의 필연성에 대해 예견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이들의 생각이 한때 세계의 절반을 지배하고 있었을 때 변증법은 매우 강력한 논리적 무기일 수 있었으나, 현실 사회주의가 몰락하고 냉전 체제가 해소된 이후로는 그 이전만큼의 힘을 지니고 있지 못한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이러한 부침과는 무관하게 철학적 개념으로서의 변증법은 운동과 변화를 포착하고 표현하는 헤겔적인 용법으로 구사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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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1961년 목포에서 태어나 서울대 국문과와 같은 과 대학원을 졸업했다. 한신대학교 문예창작학과에서 문학과 이론을 가르치고, 계간 『문학동네』 편집위원으로 일하고 있다. 주요 저서로는 『소설의 운..
출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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