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치는 독일어에서 유래된 단어로 싸구려 저급 예술작품을 뜻하는 말이다. 민간 어원에 따르면, 패키지 단체 여행이 시작된 19세기 후반, 이탈리아에 여행 온 단체 관광객들을 위해 상투적으로 제작된 그림들을 키치라고 불렀다 한다. 그들이 여행 기념으로 사고자 했던 값싼 스케치에서 유래한 말이라는 것이다. 흔히 이발소 그림이라 불리는 상투적인 유화나 사진들이 우리 주변에서 확인할 수 있는 키치의 대표적인 예일 것이며, 나아가서는 미사여구로만 가득차 있는 서울 지하철 역사의 서정시,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는 드라마틱한 장면으로만 채워져 있는 TV 드라마 같은 것들이 키치로 분류될 수 있겠다.

아도르노는 키치를 정의하여, “지난날에는 미였으나 그 대립자의 결여로 인해 미에 대해 모순을 이루게 된 것”이라 했다. 자기 안에 추의 계기를 지니지 않아서 추와의 어떤 긴장도 상실해버린 미, 즉 아름다움이라고 이미 규정된 요소들로만 채워져 있는 예술작품은 더이상 아름다움일 수 없다는 것이다. 자신의 본성에 대해 의심하는 아름다움, 자기다움에 대한 성찰을 통해 추와의 긴장을 유지하고 있는 아름다움만이 키치의 수준으로 떨어지지 않는다. 그러니까 키치는 이미 상투화되어 더이상 아름다움일 수 없는 아름다움을 지칭하는 말이다.

캠프는 키치와는 반대로, 저급한 것을 고급한 차원으로 고양시키는 계기를 뜻한다. 캠프라는 말 자체는 재미 삼아 연출된 과장된 저급함 같은 것을 뜻한다. 이를테면 만화책을 보며 낄낄대는 피카소, 심각하게 오목을 두는 아인슈타인이나 신명나게 트로트 창법으로 노래를 부르는 마리아 칼라스 등을 상상해볼 수 있겠다. 고급문화와 대중문화의 경계가 문제적인 것이 되면서부터는 캠프도 예술적 의미를 지닌 진지한 것으로 고려되게 된다. 의도된 유치함은 고급문화가 지니고 있는 지나친 엘리트주의나 형식주의, 위선 등에 대한 도전과 비판의 의미를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유치함 속에도 단순함과 순수함 같은 미덕이 있다. 너무 세련되어 오히려 상투적이 되어버린 고급스러운 문화 옆에 이런 단순함을 세워놓는 것은 그 자체로 신선한 것일 수 있다. 캠프적 감수성과 상상력은 그런 신선함을 향해 나아간다. 통속적이고 저급한 대상으로서의 키치도 캠프적 계기를 통해서라면 참신한 예술작품으로 재탄생할 수 있다. 앤디 워홀의 팝아트 같은 것이 대표적인 예이다. 이처럼 캠프적 계기는, 스스로 차이를 만들어가며 새로운 신선함의 영역을 향해 나아가는 우리 시대 미의식의 변증법적 행로를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