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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인문학 개념
정원

루카치의 별과 칸트의 별

소설, 근대가 쏘아올린 별

루카치의 『소설의 이론』의 초두는 별이 빛나는 하늘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한다. 매우 유명한 그 첫 문장은 다음과 같다. “별이 빛나는 하늘을 보면서 갈 수 있고 또 가야 할 길의 지도를 읽을 수 있던 시대는 얼마나 행복했던가.” 밤하늘의 성좌가 지도의 역할을 하던 시대란 어떤 시대인가. 나침반이 없던 시대라고 쉽게 답할 수 있다. 그런데 그 시대가 행복했다는 것은 무엇 때문인가.

여기에서 주목해야 할 것은, 밤하늘의 별자리가 가르쳐주는 길이란 단순히 지도상의 방위만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 즉 인간이 걸어야 할 삶의 길이기도 하다는 것이다. 루카치는 이런 사정을 일컬어 “하늘의 별빛과 내면의 불꽃이 완전히 동일한 시대였다”고 표현했다. 하늘의 별빛이란 천상의 질서, 즉 초월적인 존재로서의 신의 뜻을 표상하고, 내면의 불꽃이란 그 뜻을 향해 나아가고자 하는 인간의 의지를 뜻한다. 루카치의 이런 표현은 고대 그리스의 문화를 염두에 둔 것으로, 형이상학과 우주론과 윤리학이 하나로 결합되어 있는 상태를 뜻한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우주관과 자연관은 단순한 물리학의 차원에 그치는 것이 아니며, 그 자체로 세계 속에 존재하는 신적인 원리(이를 로고스라 불렀다)의 완전성을 표상하는 것이기도 했다.

인간의 운명이란 그를 지상으로 내려보낸 로고스의 섭리에 의해 결정되어 있고, 사람들은 점성술이나 신탁을 통해 그 뜻에 접근할 수 있었다. 그러니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대답도 이미 결정되어 있는 것이나 다름없다. 로고스의 섭리에 따라 사는 것이 그 대답인 것이다. 이처럼 인간의 세계와 신의 세계가 완벽하게 하나의 질서로 통합되어 있는 상태, 그 사이에 어떤 균열도 없이 천상과 지상이 하나의 원으로 온전히 이어진 상태를 루카치는 완결성, 총체성 등으로 표현했고, 그런 상태가 구현되어 있는 세계를 ‘서사시의 시대’라고 불렀다.

루카치가 파악하는 그리스 세계는 세 개의 시대로 구분된다.

첫째, 총체성이 구현되어 있는 서사시의 시대이다. 호메로스의 『일리아드』와 『오디세이아』에서는 신과 인간이 하나로 얽혀 있다. 사람들이 그리스와 트로이 두 패로 나뉘어 전쟁을 벌일 때 올림푸스의 신들도 두 패로 나뉘어 싸움에 끼어든다. 인간의 모습을 하고 전쟁터에 뛰어들어 활을 쏘고 창을 던지며 인간과 함께 나뒹구는 것이다.

둘째는 비극의 시대로, 소포클레스나 에우리피데스 등의 비극에서는 이런 총체성이 흔들려 신과 인간의 세계가 나뉘어진다. 하지만 그 두 세계는 완전히 분열된 것은 아니어서 신탁이라는 매우 연약한 통로를 통해 이어져 있다. 비극에서 신은 인간의 행위에 구체적으로 개입하지 않은 채, 신탁이라는 통로를 통해서만 자신의 뜻을 전달하는 존재로 변모한다.

셋째, 플라톤으로 대표되는 철학의 시대이다. 이 시대는 이미 계몽된 세계여서 신탁 같은 것은 신뢰할 수 없게 되었다. 신과 인간의 세계가 완전히 단절됨으로써 신의 세계는 인격적 성격을 상실하여 ‘이데아’라는 추상성의 세계로 바뀐다. 천상의 세계와 지상의 세계는 그 사이에 어떤 통로도 존재할 수 없는, 절대적으로 단절된 세계가 되었다. 철학의 시대는 말하자면 계몽된 그리스 세계이자 그리스의 근대 세계였던 셈이다.

이 세번째 세계에 대하여 루카치는 “별이 빛나는 칸트의 하늘”이라는 표현을 썼다. 물론 칸트는 플라톤의 시대로부터 이천 년이 훨씬 더 지난 근대세계의 인물이다. 그가 쓴 세 권의 주저(主著) 『순수이성비판』 『실천이성비판』 『판단력비판』은 각각 과학과 윤리와 예술의 세계를 다룬 것이다. 근대적 질서 속에서 이 세 세계의 진리를 표상하는 진선미는 자기의 독자적인 원리와 영역을 지니고 있다. 과학적 진리와 윤리적 선과 예술적 아름다움은, 근대 이전의 질서 속에서는 하나로 결합되어 있었다. 진리는 선하고 아름다운 것이며, 윤리적 선이라야 아름다울 수 있는 세계였던 것이다.

그러나 근대가 열린 이후로 진・선・미는 서로 개입할 수 없는 독자적 세계가 되었다. 약육강식과 적자생존의 법칙이 지배하는 동물 왕국의 원리로서 진화론은 과학적 진리일 수는 있으되 윤리적이거나 아름다운 것일 수는 없다. 반면 예술적인 아름다움은 사실이 아니라 허구로부터, 가령 보들레르의 시집 『악의 꽃』이 표상하듯 오히려 비윤리성으로부터 도출될 수도 있는 세계가 곧 칸트적인 삼분법의 세계, 근대의 세계이다. 칸트가 제시한 윤리적 강령 역시 신의 섭리와는 무관한 곳에서, 절대적 주관성과 내면성 속에서 도출된다. 양심의 존재가 곧 그것이다.

칸트는 그런 사정을 일컬어, “내 머리 위의 별이 빛나는 하늘과 내 마음속의 도덕법칙”이라고 했다. 그럼에도 칸트의 별은 단 한 명의 고독한 방랑자의 길도 밝혀주지 못한다고 루카치는 썼다. 이것은 로고스의 섭리가 존재하지 않는 절대적 소외 상태를 자신의 운명으로 받아들여야 하는 근대인의 존재 조건을 지칭하는 것이다.

이와 같은 방식으로 루카치의 ‘행복한 시대의 별’과 칸트의 ‘소외된 시대의 별’은 구분된다. 루카치의 별이 총체성을 간직하고 있는 그리스 시대, 좀더 정확하게는 서사시의 시대가 쏘아올린 별이라면, 칸트의 별은 이제 몰락해버린 로고스의 잔해 위에서 스스로 운명의 별을 찾아나서야 하는 근대성을 표상한다. 그리스의 별을 대체하고 나선 칸트의 별, 이 새로운 시대의 대표적인 예술 장르로 존재하는 것이 곧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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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영채 집필자 소개

1961년 목포에서 태어나 서울대 국문과와 같은 과 대학원을 졸업했다. 한신대학교 문예창작학과에서 문학과 이론을 가르치고, 계간 『문학동네』 편집위원으로 일하고 있다. 주요 저서로는 『소설의 운..

출처

인문학 개념정원
인문학 개념정원 | 저자서영채 | cp명문학동네 도서 소개

모르는 사람에게는 보이지 않고 아는 사람에게는 ‘아름답게’ 보이는 것, 그게 바로 인문학이다. 한번쯤 들어보거나 읽어본 개념어는 많은데 그 개념의 어원이나 구체적 쓰임 같은 맥락에 어두웠던 독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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