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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인문학 개념
정원

억압적 탈승화

승화될 수 없는 것들의 섬뜩함

승화(sublimation)라는 말은 마음이 추구하는 만족의 수준이 문화적으로 낮은 차원에서 높은 차원으로 옮겨가는 것, 좀더 좁은 의미로는, 리비도 에너지가 성적 대상으로부터 성적이지 않은 대상으로 이동하는 것을 뜻한다. 성교육 시간에 청소년들이 흔히 운동이나 다른 유익한 것을 함으로써 성 충동을 승화시켜야 한다는 식의 말속에서 만나곤 하는 좀 고리타분해 보이는 단어이기도 하다. 탈승화란 이런 뜻의 승화와 정확하게 반대되는 말이다. 만족의 수준이 문화적으로 저급한 쪽으로, 또 리비도 에너지가 성적인 대상으로 옮겨가는 것이 탈승화이다. 게다가 억압적이라는 말이 붙어 있다. 자율적이거나 자유롭지 못하다는 뜻이니 이 또한 좋을 수는 없는 말이다.

억압적 탈승화는 제2차세계대전 후 마르쿠제가 상업적으로 번성하는 미국의 대중문화를 바라보면서 썼던 말이다. 그 뜻인즉 대중을 상대로 시장에서 유통되는 문화 상품이 저급하고 저열한데다 그런 풍조가 압도적이어서 저항하기 어려울 정도라는 뜻이다. 그런데 그것이 왜 문제라는 것인가. 물론 예술이 대중화되는 현상 자체가 문제일 수는 없다. 그로 인해 초래되는 예술의 저급화가 문제라는 것이다.

하지만 그 저급화라는 것이 쉬워지고 단순화되고 성적 표현이 풍부해지는 것을 뜻한다면 그것이 반드시 나쁘기만 한 것인가. 가치 있는 것으로서의 문화와 예술이 반드시 어렵고 복잡하고 성적으로 결백한 것일 수만은 없지 않은가. 이런 반론의 가능성에도 불구하고 예술의 저급한 대중화 현상에 대해 마르쿠제가 비판했던 것은, 파시즘과 대량 살육의 시대를 거쳐온 지식인의 한 사람으로서 그가 예술에 대해 지니고 있던 특별한 기대 때문이었다.

전체주의 사회란 목표를 위해 수단을 돌보지 않고, 지도자를 정점으로 전 사회를 기계처럼 작동하게 만들고자 한다는 점에서 기본적으로 근대 합리주의의 산물이다. 실용적이고 현실적이며 과학주의에 입각해 있는 사유 체계라는 점에서 그렇다. 그럼에도 그런 합리주의의 바탕에 있는 것은 목표가 아니라 방법의 효율성과 과학성만을 따지는 이상한 합리성, 그리고 그 과정에서, 정작 중요한 목표에 대한 이성적 사고를 배제해버리는 미친 합리성이다. 그 안에서 살아남기 어려운 것은 자유롭고 자율적인 개인이라는 이상이다. 하지만 그런 이상이 위기에 처한 것은 단지 파시즘의 세계에서만은 아니다. 생활비를 벌기 위해 원치 않는 노동에 임해야 하는 세계라면, 자유롭고 자율적인 주체라는 이상이 처해 있는 상황은 전체주의 사회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근대성이 초래한 이런 세계 상태 속에서 예술은, 자율적인 개인과 소외되지 않은 노동의 이상이 숨쉴 수 있는 곳, 또한 전체주의화되는 힘에 대한 저항의 에너지가 보존되어 있는 곳으로 간주되었다. 그래서 예술은 그것의 존재 자체만으로도, 기형적으로 합리화된 세계에 대한 ‘위대한 거부’의 표상으로 기려지기도 했다.

예술이 문화 산업의 대중적 상품으로 유통되는 것에 대한 마르쿠제의 거부감은, 예술에 부여된 이런 지위 때문에 좀더 강하게 나타났다. 망가지는 예술이 문제가 아니라 저항 에너지의 저장고가 텅 비게 되는 것이 문제라는 것이다. 또한 예술이 대중화되고 상품화됨에 따라 그동안 금기시되었던 성적 표현의 폭이 점점 넓어져간다. 낭만적인 반도덕성이 등장하고 외설이 권장되기도 한다.

그런데 그것이 왜 문제인가. 표현 영역이 넓어지고 성에 대한 표현의 제한이 조금씩 허물어지는 것은 표현의 자유와 주체의 자율성을 위해 바람직한 것이 아닌가. 마르쿠제가 문제삼고자 했던 것은, 쾌락을 추구하는 것 자체가 아니라 그것이 상품화되고 지배 논리에 순치됨으로써 거기에 내장되어 있는 저항의 에너지가 사라져버리는 것이다. 지배 논리에 저항해야 할, 또 여차하면 전복적 사유의 일선으로 몰려가야 할 문제아들이 고작해야 정해진 울타리 안에서만 저항의 포즈를 취하는 순치된 반항아가 되는 것이 문제라는 것이다. 게다가 쾌락에 대한 추구가 기성 질서의 금지에 대한 저항의 형태가 아니라 오히려 은밀히 권유되거나 공공연하게 강요되는 형태라면 더욱 곤란하다. 그것은 쾌락 추구의 에너지가 지니고 있는 저항성을 위축시키는 일이기 때문이다.

억압적 탈승화라는 말이 제2차세계대전 이후에 대두된 대중사회의 문화적 현상으로 지적되고 비판적으로 구사되었던 것은 이 때문이다. 여기에서 한걸음 더 나가보면 어떨까. 얼마 전부터 대중매체에서는 ‘섹시하다’는 말이 남성이나 여성의 외양에 대한 민망하지 않은 찬사로 쓰이기 시작했다. 전체적인 분위기로 보건대 모두가 성적 매력을 감추지 않는, 섹시해지기를 권하는 사회가 되어가는 중이라 해도 좋을 것이다. 또 국가대표 운동선수들이나 감독들의 입에서도 게임을 즐긴다는 말이 나오고 있다. 이를테면, 내일 저녁 경기를 위해 우리는 마지막 준비를 끝냈고 이제는 선수들이 경기를 즐기기 바란다고 한 감독이 말했다. 감독이라는 초자아의 입에서 떨어진 명령이 ‘반드시 이겨라’도 아니고 ‘정신력으로 버텨라’나 ‘국가를 위해 헌신하라’도 아니고, ‘즐겨라’이다.

이 말은 최소한 두 가지로 번역될 수 있다. 첫째, 긴장을 풀고 경기 외적인 것은 모두 무시한 채 경기 자체에 집중하라는 말이다. 이것은 국가를 대표하는 선수들의 마음 부담을 덜어주기 위한 배려의 말이겠다. 둘째, 모든 준비가 완벽하게 끝났다는 대단한 자신감의 표현이다. 평소에 하던 대로만 하면 즐겁게 해도 결과가 보장되어 있다는 말이겠다. 경기에 완전히 몰입해 있는 상태로 의식의 특별한 사용 없이 육체의 움직임 자체를 즐기면서도 좋은 경기를 할 수 있다는 것은 이미 그의 선수들의 신체가 완벽하게 프로그램화된 상태, 곧 기계의 상태에 도달했다는 것을 뜻한다. 특별한 정신적 에너지의 투입 없이도 숙련을 통해 익힌 동작이 저 스스로 흘러나오게 하는 것, 그 동작의 주인공은 그저 자기 신체의 움직임을 바라보는 것으로 족한 상태에 도달하는 것은 모든 운동선수들의 꿈일 것이다.

‘즐겨라’라는 초자아의 명령은 이런 의미에서 대상을 기계로 만든다. 초자아가 내리는 쾌락을 누리라는 명령은 자아의 부담을 덜어주지만 동시에 죄의식도 사라지게 한다. 자아는 내면화된 금지를 통해 제 마음속에 있는 무의식적 충동을 제어한다. 그것이 자율적 주체의 모습이다. 자발적인 리비도가 있고 그것에 대한 내면적 통제를 통해 스스로의 자율성을 확립하는 자아가 있는 것이다. 이처럼 초자아와 이드라는 상반된 힘을 견제하고 매개함으로써 자아는 상대적 자율성을 확보한다.

그런데 억압적 탈승화 곧 즐기라는 초자아의 명령은 자아라는 매개를 우회하여 초자아가 직접 이드와 접합되는 것을 뜻하며, 종국에는 자아의 영역을 위축시켜버린다. 억압적 탈승화를 통해 자아는 상대적 자율성을 상실하고 무의식으로 퇴행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경기를 즐기라는 명령은 무의식의 상태에 머물러 있으라는 뜻이며 몸의 언어에 집중해야 할 운동선수에게는 최고의 지침이 된다.

이런 점에서 억압적 탈승화는 자아를 희생 삼아 이루어지는 초자아와 이드 사이의 기묘한 화해이다. 금지와 충동의 화해라는 이 기묘한 틀 속에는 자아의 영역이 없으므로 죄의식도 있을 수 없다. 하지만 문제는 죄의식이 사라지는 순간 그것에 의해 가려져 있던 불안이 솟아나온다는 것이다. 죄의식은 참회를 통해 경감시킬 수 있지만, 사라져버린 죄의식 너머에서 다가오는 불안은 대책이 없다. 자아의 입장에서 볼 때 방어기제를 찾기 힘든 불안은, 그 자체가 방어기제인 죄의식에 비길 수 없는 무시무시한 상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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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영채 집필자 소개

1961년 목포에서 태어나 서울대 국문과와 같은 과 대학원을 졸업했다. 한신대학교 문예창작학과에서 문학과 이론을 가르치고, 계간 『문학동네』 편집위원으로 일하고 있다. 주요 저서로는 『소설의 운..

출처

인문학 개념정원
인문학 개념정원 | 저자서영채 | cp명문학동네 도서 소개

모르는 사람에게는 보이지 않고 아는 사람에게는 ‘아름답게’ 보이는 것, 그게 바로 인문학이다. 한번쯤 들어보거나 읽어본 개념어는 많은데 그 개념의 어원이나 구체적 쓰임 같은 맥락에 어두웠던 독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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