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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일상적으로 쓰는 말들은 그 자체가 하나의 행위이다. 그런데 말을 하는 행위에 수반되는 행위도 있다. 이를테면 명령이나 지시 질문 선언 약속 축복 등이 그런 것이다. 언어행위이론(speech act theory)을 연구했던 오스틴(J. L. Austin, 1911~1960)은 이처럼, 말을 하는 것 자체를 발화행위(locutionary act)라 하고 말에 수반되는 행위를 발화수반행위라 했다. 또 발화효과행위(perlocutionary act)라는 말도 썼는데, 이는 명시적인 수행문이 아닌데도 그 말이 듣는 사람에게 어떤 효과를 가져왔을 때를 지칭하는 말이다.
여기에서 수행문(performative sentence)이란 진술문(constative sentence)과 구분되는 말이다. 진술문은 “머리가 아프다”나 “하늘이 맑다”와 같은 문장들에 해당된다. 대상의 어떤 상태를 기술하는 것이다. 이에 비해 수행문은 “죽을 때까지 사랑할 거야”나 “그게 무슨 말이지?”와 같이 약속이나 질문 등의 행위를 수행하고 있는 문장이다. 그런데 여기에서 문제는 우리들의 언어행위 속에 과연 순수한 진술이 존재하는지의 여부이다. 예를 들어, “나 지금 너한테 경고한다”라는 말은 경고 행위를 하는 수행문이다.
그러나 “나 지금 너한테 경고하고 있는 중이야”라는 말은 자기 자신의 상태를 기술하고 있다는 점에서 진술문에 해당한다. 그럼에도 이 두 문장은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크게 차이 나지 않으며, 여기에서 수행문과 진술문을 구분하는 것은 큰 의미가 없다. 현재형으로 발화된 경고가 명시적 수행문이라면, 진행형으로 기술된 것은 겉으로는 진술의 형식이지만 역시 마찬가지로 경고 행위를 하고 있는 암시적 수행문이다. “사랑해, 너를”이라는 말은 고백이라는 행위이고, “너를 사랑하는 것 같아”라는 진술은 고백이 아니라고 할 수는 없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이런 이유로 오스틴은 뭔가 행동을 하는 수행문과 진리치를 갖는 진술문을 구분할 수 없다는 결론에 도달하고, 결국 말을 한다는 것은 그 자체가 행위이면서 거기에 수반되는 또 하나의 행위를 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발화수반행위라는 말은 바로 그것을 지칭한다. 말을 한다는 것, 곧 발화(utterance) 행위는 발화수반행위와 발화효과행위를 내포하고 있다고 오스틴은 생각했다.
일요일 아침, 창밖을 보던 아내의 입에서 나온 “아, 하늘이 맑다”라는 말은 그 자체로 발화행위이다. 그 발화행위 속의 문장은 비록 진술문의 형태를 지니고 있지만, 그 말을 듣는 남편에게는 외출에 대한 권유나 은근한 압박, 혹은 움직이지 않을 경우 보복이 가해질 것이라는 경고나 협박, 명령 등의 다양한 발화수반적 힘(illocutionary force)을 지닌 문장이다. 아내의 말을 듣고 남편이 허겁지겁 외출 준비를 한다면 그 문장은 발화효과적 힘을 충분히 발휘한 셈이다. 그런 말을 듣고서도 움직일 준비를 하지 않는 무모하거나 용기 있는 남편이 있을 수도 있다. 그의 마음속에서 시시각각 짙어지고 있는 불안의 그림자도 또한 발화효과적 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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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1961년 목포에서 태어나 서울대 국문과와 같은 과 대학원을 졸업했다. 한신대학교 문예창작학과에서 문학과 이론을 가르치고, 계간 『문학동네』 편집위원으로 일하고 있다. 주요 저서로는 『소설의 운..
출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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