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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의식이라는 말은 그 자체로 형용모순(oxymoron)이다. 의식이 있거나 의식이 없는 상태거나 하면 말이 되는데, 무의식이라는 것이 있다는 말은 ‘없음’이 있다는 말처럼 이상하게 들린다. 프로이트가 누구인지도 모르고 무의식이라는 말도 처음 듣는다고 가정해보자. 의식할 수 없는 의식이나 무의식적인 마음이 있다는 사실이 쉽게 수긍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무의식이라는 말을 사용하기 시작했을 때 프로이트는 이런 비판에 직면했다. 그럼에도 그는 신경증 치료에 관한 다양한 임상 자료를 통해 명백한 정신활동으로서의 무의식 존재를 확인해냈고, 다양한 실례와 이론화 과정을 통해 사람들에게 이를 납득시켰다.
우리의 심리적 현실 속에서 명백하게 활동하면서 힘을 발휘하고 있지만 표면적인 의식 속에는 떠오르지 않고 있는 것을 프로이트는 무의식이라 불렀다. 그런 것이 어떻게 존재할 수 있는가. 프로이트에게는 무엇보다도 꿈의 존재가 무의식의 명백한 증거이자 무의식의 활동을 추적해볼 수 있는 대상이었다. 매일매일 사람의 마음속에서 상연되는 꿈이라는 드라마의 연출가가 바로 무의식인 것이다. 다시 한번 강조해두자. 무의식은 꿈이 아니라 그 꿈을 만들어내는 힘이다. 꿈 자체가 무의식이라는 생각은 프로이트에 대한 오해에서 비롯된 것이다. 꿈이 무의식이 아닌 것은 꿈에 관한 프로이트의 이론이 해몽 체계가 아닌 것과 같다. 꿈은 다만 무의식을 위한 극장일 뿐이다.
무의식을 규정함에 있어, 단지 의식의 표면에 등장하지 않고 있다는 속성만을 지칭하여 무의식적이라고 하는 것은 아니다. 프로이트가 말하는 무의식은 무엇보다도 자기 자신에 대한 억압과 자체 검열에 의해 통상적인 접근이 차단되어 있다는 점에서 특징적이다. 지금 의식 속에서 활동하지는 않고 있지만 계기가 주어지면 언제든 의식에 떠오를 준비가 되어 있는 것은, 프로이트의 용어에 따르면 전의식이다. 이에 비해 무의식은 어떤 특별한 이유 때문에 의식의 표면으로 떠오르는 것이 억제되어 있어, 우리로서는 쉽게 접근하거나 확인해볼 수 없는 어떤 것이다.
예를 들어보자. 컴퓨터에서 현재 작동되고 있는 프로그램이나 파일이 의식이라면, 현재 가동되지는 않고 있으나 하드에 저장되어 있어 불러내고 싶으면 언제든지 화면을 통해 확인해볼 수 있는 파일이나 프로그램은 전의식이다. 이에 비해 무의식은 지워져버리거나 덧씌워져버린 파일들이다. 이들은 보통 방법으로는 불러내기 어렵고, 아주 복잡한 과정을 통해서나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야 가까스로 복구를 시도해볼 수 있는 것들이다. 이처럼 그 어떤 이유로 인해, 마음속에 존재하고 있으면서도 겉으로는 쉽게 드러나지 못하고 있는 마음의 영역이 무의식이다. 말을 바꾸면, 내면화된 금지와 억압이 있는 곳에는 어김없이 무의식이 생겨나는 것이다.
프로이트가 ‘무의식, 의식, 전의식’의 구분을 강조하고 무의식의 작동방식을 규명하는 데 힘을 썼던 것은, 그의 메타심리학 이론의 전개 과정에서 보자면 첫번째 시기에 해당하는 기간 동안이었다. 1920년을 전후하여, ‘이드, 자아, 초자아’라는 정신의 새로운 모델이 프로이트의 메타심리학 체계에 도입되고, 그럼으로써 무의식의 특징으로 간주되었던 많은 속성들이 이드의 몫으로 돌려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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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1961년 목포에서 태어나 서울대 국문과와 같은 과 대학원을 졸업했다. 한신대학교 문예창작학과에서 문학과 이론을 가르치고, 계간 『문학동네』 편집위원으로 일하고 있다. 주요 저서로는 『소설의 운..
출처
모르는 사람에게는 보이지 않고 아는 사람에게는 ‘아름답게’ 보이는 것, 그게 바로 인문학이다. 한번쯤 들어보거나 읽어본 개념어는 많은데 그 개념의 어원이나 구체적 쓰임 같은 맥락에 어두웠던 독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