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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콥슨은 언어의 기능을 그 요소에 따라 여섯 가지로 분류했다. 의사소통이 이루어지기 위해서 언어에는 다음 여섯 가지 요소가 필요하다. 1) 발신자(addresser): 말하는 사람. 2) 수신자(addressee): 듣는 사람. 3) 맥락(context): 대화가 이루어지는 구체적인 상황. 4) 전언(message): 말 그 자체. 5) 접촉(contact): 대화자 쌍방 간의 직간접적인 만남. 6) 코드(code): 대화가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쌍방이 문법이나 방언 같은 동일한 언어적 코드를 공유하고 있어야 한다.
야콥슨은 이 여섯 가지 요소들의 연장에서, 언어가 지니고 있는 기능을 다음과 같이 여섯 가지로 분류했다. 1) 표현적(expressive) 기능: 발신자의 생각이나 감정을 표현하는 것. 2) 사역적(conative) 기능: 수신자에게 영향을 미치는 것. 3) 지시적(referential) 기능: 대상이나 상황을 가리키는 것. 4) 시적(poetic) 기능: 전언 그 자체를 경제적이거나 아름답게 전달하고자 하는 것. 5) 친교적(phatic) 기능: 특별한 의미 없는 인사말처럼 접촉 그 자체를 위해 봉사하는 것. 6) 메타언어적(metalingual) 기능: 언어의 의미에 관한 기능.
언어가 지니고 있는 이런 기능들에 주목할 때, 똑같은 말이라 하더라도 서로 다른 의미를 지닐 수 있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이 방에 들어서며, “아, 덥다”라고 말했다고 하자. 자기가 더위를 많이 타는 체질임을 알리는 말일 수도(표현적 기능), 에어컨을 틀어달라는 말일 수도(사역적 기능), 거기 도착하기까지 더운 길을 걸어왔다는 말일 수도(지시적 기능), 뭔가 덥지 않게 해달라는 말을 우회적으로 표현하는 말일 수도(시적 기능), 어색한 분위기를 깨뜨리기 위해 별 뜻 없이 하는 말일 수도(친교적 기능), 혹은 한국어를 잘 모르는 외국인에게 ‘덥다’라는 말의 뜻과 쓰임을 가르쳐주기 위해 해본 말일 수도(메타언어적 기능) 있는 것이다.
요컨대, 똑같은 말이라도 어떤 맥락에서 기능하느냐에 따라 다양한 의미를 지니게 된다. 한 사람의 입 밖으로 음성이 되어 나온 말과, 그 말이 지니고 있는 진짜 뜻 사이에는 이렇듯 커다란 격차가 있을 수 있다. 말뜻을 정확하게 몰라서 그 뜻에 대해 묻는 것을 야콥슨은 메타언어적 기능이라고 표현했다. 메타언어라는 말은 ‘언어에 대한 언어’라는 뜻으로(메타라는 접두어는 두 가지로 사용된다. 첫째, 포괄하거나 넘어선다는 의미의 ‘초-’ 예를 들어, 메타심리학은 심리학에 이론적 토대를 제공하는 초심리학 체계를 지칭한다. 둘째, 첫째 용법이 변개되어 ‘~에 대한 ~’의 뜻을 지닌다. 예를 들어, 메타비평은 비평에 대한 비평이고 메타소설은 소설에 대한 소설이다), 대상언어와 짝이 되는 말이다.
언어가 지니고 있는 이와 같은 다양한 기능과 의미에 대해 주목하게 된다면, 말의 의미를 파악하는 일이 단순한 것이 아님을 알게 된다. 똑같은 말이라 하더라도 어떤 상황에서 누가 하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의미를 지닐 수도 있는 것이다. “죽어서라도 갈 거야”라는 말은 반드시 가겠다는 의지의 표현일 수도(이것은 간다는 말이다), 살아서 갈 수 없다는 사실에 대한 절망의 표현일 수도(이것은 가지 못한다는 말이다) 있다. 이렇듯, 주어져 있는 기호의 표면적 의미에 국한하지 않고 기호와 그 사용자의 관계에 따라 변화하는 의미에 대해 주목하는 이론을 언어학이나 기호학에서는 화용론(pragmatics)이라고 부른다.
통사론(syntax)이 기호와 기호 사이의 관계(예를 들자면, 단어와 단어 간의 문법적 측면 같은 것)에 주목하고 의미론(semantics)이 기호와 의미의 관계에 주목한다면, 화용론은 기호와 그 사용자 또는 실제적 상황 사이의 관계에 대해 주목한다. 말 그 자체가 아니라 말을 둘러싸고 있는 맥락과 말의 주체가 누군지에 대해 따져묻고, 각각의 상황에서 다른 형태로 발생하는 의미에 대해 고찰하는 것이다.
이와 같은 화용론적 태도는 언어에 대한 것뿐 아니라, 사고방식 일반으로 확장될 수 있다. 겉으로 드러나 있는 뜻만이 아니라 감추어져 있는 뜻에도 주의를 기울이는 태도가 그런 것이다. 똑같은 말이라 해도 누가 어떤 상황에서 누구에게 말하는지에 따라 뜻은 전혀 달라질 수 있다. 니체의 『도덕의 계보』 같은 저술은 이런 태도의 대표적인 예가 된다. 여기에서 니체는 선과 악의 개념이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는지가 아니라, 선과 악에 대해 말하는 사람이 누구인지에 대해 주목했다.
어원학적인 고찰에 근거하여 니체는, 강자가 좋아했던 것이 선이고 싫어했던 것이 악임을 보여주었다. 선악은 보편타당한 것으로 고정되어 있는 개념이 아니라, 현실적 힘을 누가 소유하고 있느냐에 따라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는, 가변적임을 보여주었던 것이다. 화용론적인 사고는 이처럼, 주어진 의미의 이면을 탐색하는 사고 일반으로 확장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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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1961년 목포에서 태어나 서울대 국문과와 같은 과 대학원을 졸업했다. 한신대학교 문예창작학과에서 문학과 이론을 가르치고, 계간 『문학동네』 편집위원으로 일하고 있다. 주요 저서로는 『소설의 운..
출처
모르는 사람에게는 보이지 않고 아는 사람에게는 ‘아름답게’ 보이는 것, 그게 바로 인문학이다. 한번쯤 들어보거나 읽어본 개념어는 많은데 그 개념의 어원이나 구체적 쓰임 같은 맥락에 어두웠던 독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