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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립자인 디올의 꽃과 예술에 대한 열정은 고스란히 컬렉션에 표현되었다. 1947년 첫 컬렉션에서 꽃봉오리라는 뜻의 코롤라 라인을 선보였으며, 장미에 대한 사랑은 주얼리를 통해 드러났다. 또한, 크리스찬 디올의 예술적 재능은 오늘날 오트 꾸뛰르 작품으로 재현되고 있다.
디올의 꽃에 대한 뛰어난 감각은 그랑빌 저택의 정원에서 시작되었다. 그랑빌 저택은 20세기 초 디올이 유년 시절을 보냈던 집으로 훗날 크리스챤 디올의 영감의 원천이 되었다. 1947년, 디올은 첫 패션쇼가 열렸던 크리스챤 디올 부티크를 꽃으로 화려하게 장식했으며, 폭이 풍성한 꼬롤(Corolle) 스커트를 선보였다. 1997년, 그랑빌 저택은 크리스챤 디올 박물관으로 재탄생했다.
디올이 가장 사랑한 꽃은 그랑빌 저택의 정원에서 어머니가 키우던 장미였다. 디올의 첫 컬렉션에서도 활용된 장미는 크리스챤 디올에 지속적인 영감을 주며 오늘날 주얼리로 재해석 되고 있다.
디올과 우정을 나눈 이들은 패션 디자이너가 아니라 대부분 예술가들이었다. 디올은 부모님의 반대로 예술학교가 아닌 정치학교에 입학했으나, 당대 최고의 예술가들과 교류하며 지냈다. 당시 친구였던 자끄 봉장(Jacques Bonjean)이 갤러리를 열면서 디올에게 갤러리 디렉터를 맡아 달라고 제안했다. 디올은 갤러리에 전도유망한 예술가들의 작품을 전시하며 예술에 대한 자신의 재능을 펼쳤다.
여성 컬렉션 아트디렉터인 라프 시몬스(Raf Simons)는 2012년 7월 자신의 첫 크리스챤 디올 패션쇼에서 디올과 예술가들의 밀접한 관계를 다시금 확인시켜주었다. 일부 오트 꾸뛰르 드레스에 스털링 루비(Sterling Ruby)의 추상화를 재현했고, 프레타 포르테 컬렉션 의상과 액세서리에는 앤디 워홀의 드로잉 작품을 그대로 재현하기도 했다.
꽃에 대한 열정이 가득했던 디올에게 향수는 최고의 액세서리였다. 1947년, 크리스챤 디올이 오트 꾸뛰르 의상과 함께 미스 디올을 선보인 이후, 크리스챤 디올의 향수는 최고의 원료와 명성으로 전설이 되었다. 60년이 지난 지금, 디올의 퍼퓨머 크리에이터 프랑소와 드마시(Francoise Demachy)가 미스 디올의 명성을 이어가고 있다.
1994년에 탄생한 레이디 디올은 크리스챤 디올의 상징적 모델이다. 당대에 지배적이었던 유행과는 달리 기품있는 우아함과 대담한 스타일을 선보인 이 백은 일명 '슈슈(Chouchou)'라고 불렸고, 2년 뒤 파리에 방문한 영국 다이애나비에게 경의를 표하고자 '레이디 디올(Lady Dior)'이란 이름이 붙여졌다.
1953년, 루즈 디올은 '당신의 미소에는 그에 맞는 컬러가 필요합니다. 디올이 여러분의 피부에 걸맞은 드레스를 선사합니다'라는 캐치프레이즈와 함께 출시되었다. 파리의 콩코르드 광장을 상징하는 오벨리스크 모양의 뚜껑으로 제작되어 인기를 얻었다. 2003년 제작된 루즈 디올 999는 '가장 디올 다운 레드(Red)'라고 평가받으며 시그니처 아이템으로 자리 잡았다.
참고
- ・ 크리스챤 디올 공식 홈페이지 : http://www.dior.com/home/ko_kr
- ・ Vogue Korea : http://www.vogue.co.kr
- ・ 《최고의 명품, 최고의 디자이너》 명수진 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