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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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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성의 궤도를 찾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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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에 나타난 핼리 혜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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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광법, 사물을 보는 새로운 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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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 우주를 탐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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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의 온도와 색깔
카시니는 행성까지의 거리를 계산하고 태양의 크기를 측정한 것으로 유명하다. 그 이전에 태양까지의 거리를 측정한 사례는 기원전 280년의 아리스타쿠스뿐이었다. 코페르니쿠스의 이론에 따르면 태양에서 각각의 행성까지 거리를 태양에서 지구까지의 거리에 대한 비율로 알아낼 수는 있었지만, 정작 지구에서 태양까지의 거리를 측정할 방법이 없었다. 그러나 1671년 기막힌 기회가 찾아온다. 태양, 지구, 화성이 일직선으로 위치하면서 지구에서 화성까지의 거리가 최소가 되는 순간을 맞이한 것이다.
그해 문을 연 파리 천문대장이었던 카시니는 동료인 장 리셰르를 남아프리카의 카이엔으로 보내 관측임무를 맡기고 자신은 파리에서 관측을 계속했다. 당시 프랑스의 왕이던 태양왕 루이 14세는 이 프로젝트를 적극적으로 지원했다. 파리와 케이언의 거리는 1만km이므로 카시니는 삼각측량법에 따라 지구에서 화성까지의 거리를 측정한 후 케플러의 법칙을 이용해 지구에서 태양까지의 거리가 1억 3천8백만km라는 답을 얻어냈다.
이 값은 현재 우리가 알고 있는 1억 5천만km보다 불과 9%의 차이를 보일 뿐이다. 또한 태양의 크기도 계산할 수 있었는데, 이에 따르면 태양은 지구보다 지름이 110배 정도 큰 것으로 나타났다. 뉴턴의 저서 《프린키피아(Principia)》에 수록된 중력에 대한 설명에 따라 태양의 질량이 지구의 33만 배라는 것도 알 수 있었다.
혜성의 궤도를 찾아서
핼리와 뉴턴의 친분 덕에 혜성의 운동에 대해서도 많은 것이 밝혀지게 되었다. 뉴턴은 《프린키피아(Principia)》에서 혜성의 운동을 두 달 정도 관측하면 혜성의 궤도를 구할 수 있다고 했으며, 실제로 스물세 개의 혜성 관측 자료를 모으기도 했다. 뉴턴은 혜성이 포물선 궤도를 따라 움직인다고 생각했으므로, 혜성이 태양계로 들어왔다가 나가면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다고 믿었다(이런 궤도를 가진 혜성을 비주기성(非週期性, non-periodic, 혜성이라고 한다). 그러나 뉴턴은 관측 자료를 갖고 씨름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기 때문에, 가지고 있던 자료를 모두 핼리에게 넘겨주었다.
핼리도 케플러가 관측한 1607년 혜성의 궤도가 자신이 직접 관측한 1608년 혜성의 궤도와 매우 유사하다는 것을 발견할 때까지는 혜성의 궤도가 포물선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나중에 이들 혜성의 궤도가 1531년 혜성의 궤도와 일치한다는 것을 발견하고는 이것이 모두 같은 혜성이며, 포물선 궤도가 아니라 매우 납작한 타원 궤도를 따라 움직인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를 근거로 핼리는 이 혜성의 주기가 76년이며 1758년에 다시 나타날 것이라고 예측했다. 지금은 핼리 혜성으로 알려진 이 혜성은 그가 죽은 지 16년 뒤인 1758년 크리스마스에 다시 나타났다.
태양을 가로지르는 금성
영국의 천문학자 제레미아 호록스는 카시니보다 먼저 금성이 태양을 가로지르는 현상을 지구 여러 곳에서 정확하게 측정한다면 지구와 태양 사이의 거리를 측정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호록스는 죽기 2년 전인 1639년에 직접 이 현상을 관측했고 같은 현상이 1761년과 1769년에 일어날 것으로 예측했다. 핼리는 삼각측량법을 이용하여 지구와 태양 사이의 거리인 1AU(천문단위)를 밝혀냈고 이를 바탕으로 태양계의 크기를 알아내고자 했다. 삼각측량법은 두 지점에서 한 지점을 관측해서 측정 위치 두 곳 사이의 거리, 두 지점을 이은 선과 관측점의 각도를 이용해 관측점까지의 거리를 계산하는 방법이다. 이 방법을 이용하면 건물이나 산의 높이도 잴 수 있다.
핼리는 금성이 태양을 가로지르는 현상이 다시 일어날 것으로 예측한 1761년이 되기 19년 전에 죽었으므로 이 일은 후배들의 몫이 되었다. 그날이 다가오자 천문학자들은 세계 곳곳에서 관측을 준비하고 기다리고 있었다. 관측은 상당히 어려웠고 정확하게 측정하기도 힘들었지만 여러 곳에서 이루어진 많은 관측 자료를 종합한 결과 태양까지의 거리 1AU는 1억 5천3백만km라는 결과를 얻었다(지금 알고 있는 1억 5천만km와 별 차이가 없다). 18세기 말 무렵이 되자 천문학자들은 태양계의 크기를 상당히 정확하게 알 수 있었고, 이렇게 얻어진 정보를 바탕으로 가장 멀리 떨어진 천체조차도 연구의 대상이 되는 현대 천문학의 토대를 쌓을 수 있었다.
역사에 나타난 핼리 혜성
핼리 혜성에 대한 기록은 기원전 467년의 고대 그리스와 중국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혜성이 빛나며 하늘에서 짐수레만 한 크기의 유성이 떨어지는 현상은 500년이 넘도록 그리스에서 호기심과 흥미를 자아내는 일일 수밖에 없었으며, 중국에는 기원전 240년 핼리 혜성을 유령으로 묘사한 기록이 남아있다. 그다음 핼리 혜성의 방문은 바빌론의 점토판에 기록되었다. 아르메니아의 티그라네스 대왕을 기념하는 주화에서는 서기 87년의 핼리 혜성이 그려진 왕관을 볼 수 있다. 핼리 혜성은 서기 837년에 지구에 가장 가깝게 다가왔으며 이때의 거리는 고작 0.03AU로 혜성의 꼬리가 밤하늘을 60도(밤하늘의 1/3 크기)에 걸쳐 덮고 있었을 것으로 여겨진다. 베이유 벽걸이와 이탈리아의 화가 지오토가 그린 〈동방박사의 경배(Adoration of the Magi)〉에서도 핼리 혜성의 모습을 찾아볼 수 있다(하지만 핼리 혜성은 기원전 12년에 나타났으므로 설령 동방박사가 있었다 해도 핼리 혜성을 볼 수는 없었을 것이다).
1910년에도 핼리 혜성은 0.15AU까지 지구에 근접하며 멋진 모습을 보여주었다. 이때 핼리 혜성의 모습이 최초로 촬영되었고 혜성의 꼬리를 분광법(기체의 화학 성분을 가스에서 방출되는 주파수의 특성을 이용하여 분석하는 방법)을 이용해 분석했다.
분석 결과 여러 성분이 검출되었지만 그중에서도 독성이 있는 사이아노젠(cyanogen)이 검출되어 눈길을 끌었다. 이를 근거로 천문학자 까미유 플라마리옹은 혜성의 꼬리가 지구를 스친다면 지구의 생명체는 모두 죽고 말 것이라고 주장했고, 많은 사람들은 이 말에 속아 가스 마스크, 혜성 방독제, 혜성 방독 우산 같은 물건들을 사들였다. 물론, 혜성 때문에 죽은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1986년에 다시 지구로 다가온 핼리 혜성은 지구에서뿐 아니라 두 개의 탐사선, 지오토(Giotto)와 베가(Vega)로 우주에서도 촬영되었다. 사진에 나타난 혜성의 모습은 길이가 15km, 폭이 8km 정도로 땅콩과 비슷한 모양이었으며 혜성을 둘러싼 대기의 폭은 10만km에 달했다. 또한 대기 중에서는 고체 상태의 일산화탄소와 이산화탄소가 태양광에 의해 기체로 변하고 있었다. 핼리 혜성은 한 덩어리가 아니라 느슨하게 결합된 돌무더기인 것으로 여겨지며 대략 52분의 자전주기를 가지고 있다. 두 탐사선은 혜성 표면의 4분의 1 정도를 촬영했고 사진을 보면 언덕과 산, 계곡, 크레이터 등을 찾을 수 있다.
올 때도 갈 때도 혜성과 함께
나는 핼리 혜성이 왔던 1835년에 태어났다. 내년에 핼리 혜성이 온다는데, 내년에 죽는다면 좋겠다. 핼리 혜성과 함께 죽지 못한다면 내 인생에서 가장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신은 분명히 말했다. “자, 여기 설명하기 어려운 두 가지 쇼가 있다. 둘이 같이 왔으니 같이 가는 것이 마땅하리라.”
- 마크 트웨인각주1) 의 자서전에서, 1909
분광법, 사물을 보는 새로운 방법
19세기 말에 개발된 분광법(分光法, spectroscopy)은 별빛을 이용해 별을 분석하는 완전히 새로운 방법이었다. 빛이 기체를 통과할 때 기체의 성분에 따라 특정 주파수 성분은 기체에 흡수되므로 빛의 주파수 분포 그림은 빛이 통과한 기체의 조성 때문에 특징적인 형태를 보이게 된다. 그러므로 별에서 나오는 빛의 주파수 분포인 스펙트럼을 분석하면 별의 화학적 성분을 파악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천문사진의 개척자로 불리는 미국의 천문학자 헨리 드레이퍼는 1872년 최초로 별의 스펙트럼을 촬영했다. 그가 촬영한 직녀성(Vega)의 스펙트럼은 매우 특징적인 모습을 보여주었고 드레이퍼는 1882년에 죽기 전까지 100개가 넘는 별의 스펙트럼을 촬영했다.
1885년에는 하버드 대학 천문대장이던 에드워드 피커링이 그의 뒤를 이어 다양한 별의 스펙트럼을 모아 보다 자세한 항성 목록을 작성하는 과제를 맡았다. 그리고 드레이퍼의 미망인이 자금을 지원해 탄생한 것이 《헨리 드레이퍼 항성 목록(Henry Draper Catalogue)》이다. 1890년에 발간된 초판에는 별 10,351개의 스펙트럼이 수록되어 있다.
피커링은 평소 자기 조수의 업무 능력에 대해 못마땅하게 생각하고 있었는데, 우연히 집의 가정부가 범상치 않은 일 처리 능력을 갖추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녀는 스코틀랜드 출신의 윌리어미나 플레밍으로 남편과 함께 미국에 이민을 왔으나 이혼을 했다. 그러다 피커링의 집에서 일자리를 찾은 상태였다. 피커링은 그녀에게 별을 분류하는 일을 맡겼으며, 플레밍은 각각의 별에 수소의 함량에 따라 알파벳을 부여하는 방법을 고안해냈다(수소가 가장 많은 별에 A를 붙임).
플레밍은 9년에 걸쳐 1만 개가 넘는 별의 목록을 완성했는데 그녀가 정리한 목록에는 59개의 가스 성운, 310개의 변광성(變光星, variable star), 10개의 신성(新星, nova), 말머리성운 등이 포함되어 있었다. 피커링은 그녀를 여성으로만 이루어진 ‘계산팀(computers)’의 리더로 임명해 별을 분류하고 목록을 만드는데 필요한 모든 계산을 맡겼다(이들이 받던 시간당 25~50센트 정도의 급여는 일반적인 비서들의 급여보다 낮은 수준이었다). 오늘날 플레밍을 비롯해 팀원이었던 헨리에타 스완 리빗, 헨리 드레이퍼의 조카였던 안토니아 모리는 당당하게 천문학자로 대접받고 있다.
피커링의 작업에 참여한 또 다른 여성으로 애니 점프 캐넌을 들 수 있다. 그녀는 플레밍의 분류 방법을 개선해 별의 온도에 따라 별을 분류하는 방법을 제시했으며, 플레밍과 달리 피커링과 일을 시작할 때 이미 물리학을 전공한 천문학자였다. 게다가 성홍열을 심하게 앓아 청력을 거의 잃었음에도 플레밍과 모리가 별의 분류법을 놓고 심하게 다툴 때 둘 사이를 중재하기도 했다. 지금도 쓰이고 있는 캐넌의 분류법은 하버드 분류법이라고 불리며 별을 종류에 따라 O, B, A, F, G, K, M (외우기 쉽게 보통 ‘Oh Be A Fine Girl, Kiss Me’로 부른다)으로 분류한다. 이 방법을 좀 더 다듬은 것이 모건-키넌(Morgan-Keenan)의 분류법으로, 0에서 9까지의 숫자를 뒤에 붙이고 로마숫자 I에서 V를 이용해 별의 밝기를 표시함으로써 더욱 상세하게 별을 분류한다. 그러나 여전히 기본적인 구조는 캐넌이 고안한 그대로이다. 캐넌은 결국 항성 목록 작성 프로젝트를 완전히 넘겨받게 되었다.
드레이퍼 목록에는 총 359,083개의 별이 분류되어 있고 캐넌이 개인적으로 분류한 별이 230,000개에 이르는데, 이는 이전의 천문학자들이 분류한 모든 별의 개수보다도 많은 것이었다. 이후 그녀는 여성 최초로 옥스퍼드 대학에서 명예 박사 학위를 받았고 당당히 미국 천문학회의 임원이 되었다.
먼 우주를 탐구하다
17세기에 화성까지의 거리를 계산하기 위해 카시니가 사용한 삼각측량법은 상대적으로 가까운 곳의 별까지의 거리를 측정할 때 지금도 사용되는 방법이다. 6개월마다 지구는 공전궤도의 반대편에 있게 되므로 삼각측량법에 필요한 기저선(基底線, baseline)의 길이가 가장 길게 된다.각주2) 지구에서 태양까지의 거리가 1AU(천문단위, astronomical unit)이므로 기저선의 길이는 2AU가 되어, 어지간한 별까지의 거리를 측정하기에 충분한 길이의 기저선이라고 할 수 있다. 6개월 간격으로 촬영한 사진에서 상대적으로 가까운 별의 위치는 보다 먼 별들에 비해 움직인 것처럼 보인다.
하위헌스는 시리우스 별까지의 거리를 태양빛과 별빛 밝기의 비율에 근거해 구하려 했다. 만약 시리우스가 태양과 밝기가 같다면, 태양보다 27,664배 먼 곳에 있어야 한다. 하지만 밝기의 차이를 측정하는 것은 낮에 햇빛의 밝기를 측정하고, 밤에 별빛의 밝기를 측정해 비교하는 것이었으므로 쉽지 않은 일이었다.
삼각측량법으로 별까지의 거리를 측정한다는 발상 자체는 나무랄 데 없는 것이었지만, 실제로 측정에 필요한 장비가 없었던 초기의 천문학자들에게 삼각측량법은 매우 어려운 기술이었다.
시차(視差)
시차(Parallax)를 이용하면 두 위치에서 대상을 관측하여 대상까지의 거리를 측정할 수 있다. 별을 6개월 간격으로 촬영하면 뒤에 있는 별에 비해 앞에 있는 별의 위치가 움직인 것처럼 보이므로 삼각측량법을 이용하여 별까지의 거리를 계산할 수 있다.
연필을 들고 한쪽 눈만으로 번갈아서 바라보면 마치 배경은 그대로인데 연필이 좌우로 움직인 듯 보인다. 이것은 양쪽 눈이 연필을 바라보는 위치가 양 눈 사이의 거리만큼 다르기 때문에 일어나는 현상이다.
이 방법을 최초로 정밀하게 시도한 것은 독일의 과학자 프리드리히 베셀로, 1838년 시그너스61 별까지의 거리를 측정하여 10.3광년이라는 결과를 얻어냈다. 실제로는 스코틀랜드의 토마스 헨더슨이 1832년에 알파 켄타우르스 별까지의 거리를 측정했지만, 그는 1839년까지도 이것을 발표하지 않았다. 한편 별까지의 거리를 알게 되자, 하위헌스의 방정식을 역으로 이용해 별의 밝기를 계산할 수 있었다.
하지만 당시는 사진술이 천체 관측에 이용되기 전이어서 맨눈으로 관측을 해야 했으므로 측정은 여전히 쉽지 않은 일이었다. 1900년까지도 별까지의 거리가 측정된 것은 고작 60개뿐이었다. 사진의 발명과 함께 측정은 새로운 전기를 맞이하게 되고, 50년 만에 1만 개 이상의 별까지의 거리가 측정된다.
1989년에서 1993년 사이에는 유럽우주국(ESA: European Space Agency)이 발사한 히파르코스 위성이 11만 8천 개의 별과의 거리를 추가로 측정했으며 이 결과를 정리한 티코-2(Tycho-2) 항성목록은 우리 은하에 있는 2백5십만 개 이상의 별에 대한 자료를 담고 있다.
하지만 아주 멀리 있는 별까지의 거리를 삼각측량법을 이용해 측정하기는 어렵다. 이런 별까지의 거리는 헨리 피커링의 여성 계산팀의 일원이었던 헨리에타 스완 리빗이 개발한 방법에 의존한다. 그녀는 케페우스자리에 있는 별의 밝기가 주기적으로 변하는 것을 이용해 이 방법을 고안해냈다. 이런 종류의 별을 세페이드(Cepheid)형 변광성(變光星) 또는 그냥 세페이드라고 하며, 밝기가 하루에서 수백일 간격으로 변한다. 특정 세페이드까지의 거리를 알고 있다면 리빗의 방정식(밝기의 주기와 거리의 관계)을 이용해 다른 세페이드까지의 거리를 계산할 수 있다. 이로 인해 우리 은하 바깥의 아주 멀리 있는 별까지의 거리도 측정할 수 있게 되었고 그때까지 생각했던 것보다 우주가 훨씬 더 크다는 것이 분명해졌다.
1918년 미국의 천문학자 할로우 샤플리는 이 방법을 이용해 우리 은하 내부에 있는 구상성단(球狀星團, globular cluster)까지의 거리를 계산했다. 계산 결과 우리 은하의 크기는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크고 태양계도 우리 은하의 중심에 있을 것이라던 통념과 달리 가장자리에 있다는 것이 밝혀졌다. 1923년 겨울, 미국의 천문학자 에드윈 허블이 우리 은하 바깥에 있는 안드로메다은하에서 세페이드형 변광성을 발견하고 안드로메다은하까지의 거리가 1백만 광년이라는 결과를 얻었다. (실제로는 2백5십만 광년)
우주 망원경
1990년에 스페이스 셔틀에 실려 발사된 허블 우주 망원경은 천문학자 허블의 이름을 딴 것으로 지구 궤도에서 지구 주위를 돌며 우주를 관측하는 망원경이다. 지구 대기권 밖에서 우주를 바라보기 때문에 허블 망원경이 촬영한 영상은 대기의 흔들림이나 광해(光害)에서 자유로우므로 지구에서 촬영한 사진에 비해 엄청나게 선명하다. 우주 망원경의 개념은 1923년에 처음 등장했지만, 이를 기술적으로 실현하기 위해서는 오랜 시간을 기다려야 했다.
별의 온도와 색깔
덴마크의 화학 엔지니어 에즈나 헤르츠스프룽은 취미로 천문관측과 사진촬영을 하던 중 별의 밝기와 색깔 사이에 일정한 관계가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나중에는 천문학자가 되었지만, 1905년과 1907년에 이러한 내용을 사진 잡지에 발표할 때까지만 해도 그는 아마추어 천문가에 불과했기 때문에 천문학자들은 그의 발견을 알 수 없었다.
미국의 천문학자 헨리 노리스 러셀도 똑같은 발견을 했다. 그가 이 내용을 발표한 것은 1913년이었는데, 물론 잘 알려진 천문학 학술지를 통해서였다. 게다가 러셀은 이 내용을 그래프로 표현했다. 다행히 헤르츠스프룽의 발견도 늦지 않게 알려짐으로써 이 그림은 헤르츠스프룽-러셀 다이어그램이라고 불리게 되었다.
별의 색깔, 정확히는 별이 방출하는 빛의 파장은 별의 온도를 나타낸다. 하지만 최종적인 밝기는 별의 크기와도 관련이 있다. 마치 난방기가 성냥보다 더 많은 열을 방출하듯, 별의 크기는 밝기에 있어 온도만큼이나 중요한 요소이다. 따라서 푸른 별의 표면 온도가 붉은 별보다 훨씬 높다 해도 엄청난 크기의 적색거성(赤色巨星)은 작고 푸른 별보다는 훨씬 더 많은 에너지를 내보낼 수 있는 셈이다. 헤르츠스프룽-러셀 다이어그램은 별 내부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을 알려주는 중요한 정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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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1967년 케임브리지의 트리니티 대학에서 중세 문학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케임브리지 대학과 뉴욕 대학에서 중세 영어와 프랑스 문학을 가르쳤으며, 지금은 프리랜서 작가로 활동하고 있다. 과학과..
출처
원자론의 개념을 처음 제안했던 고대 그리스에서부터 그 후 아랍의 과학을 거쳐 르네상스, 계몽주의 시대 그리고 마침내 우주 물질의 기원을 밝힌 현대의 과학에 이르기까지 사물의 본질과 근원을 찾으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