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의 세비야에서 태어난 디에고 벨라스케스(Diego Rodriguez de Silva y Velazquez, 1599~1660)는 스승이자 훗날 장인이 된 미술사학자이자 화가인 프란시스코 파체코(Francisco Pacheco)로부터 그림을 배운 뒤, 마드리드로 건너가 펠리페 4세의 왕실 전속 화가로 활동했다. 펠리페 4세는 합스부르크 왕가 출신으로, 왕가의 혈통과 영토를 합스부르크 가문 치하에 두기 위해 공공연하게 행해진 근친결혼의 후유증인 턱관절 병을 앓고 마흔을 조금 넘긴 젊은 나이에 사망한다. 그의 초상화에서 보듯 왕족 초상화라 한껏 이상화했을 것이 뻔한데도 아래턱이 훨씬 튀어나와 있다. 왕은 이 턱관절 병 때문에 죽 이외엔 어떤 음식도 제대로 삼킬 수 없었다고 한다.

〈마르타와 마리아의 집에 있는 그리스도〉는 그가 세비야에 머물던 시절 그린 작품으로, 그의 초기작에 해당한다. 이 그림은 정물화가이자 장르화가, 그리고 역사화가로서 벨라스케스의 능력이 최고에 달했음을 증명한다. 그림 왼쪽의 노파는 요리를 하면서 물끄러미 화면 밖을 응시하는 소녀를 손가락으로 가리키고 있다. 탁자 위에는 물고기와 계란, 마늘과 말린 붉은 고추, 그리고 물병이 그려져 있다. 식탁만 따로 떼어내면 한 편의 정물화가 되고, 두 인물까지 포함시키면 부엌일을 하는 일상의 모습을 담은 장르화가 된다. 그러나 그림의 상단에는 또 다른 그림인지 혹은 거울에 비친 어떤 장면인지, 아니면 창 너머 건넌방에서 일어나는 일인지 모를 다른 이미지가 그려져 있다.

이 신비로운 이미지는 《루크의 복음서》 10장에 적힌 마르타와 마리아의 일화를 그린 것이다.(요하임 베케라르 〈공기〉 외 항목 참조) 아마도 무릎을 꿇고 예수의 발치에 앉아 있는 이는 동생 마리아일 것이다. 마르타는 선 채로 예수의 말을 듣고 있다. 아마도 그녀는 자신을 접대하느라 수고하는 것보다는 차라리 마리아처럼 자신의 말에 경청하는 것이 더 옳다는 예수의 다소 섭섭한 말을 듣고 있는지도 모른다. 따라서 이 그림은 종교적 주제의 역사화라고 볼 수 있다.

자연스레 이 이미지는 그림 전면, 소녀의 표정과 겹쳐진다. 금방이라도 눈물을 흘릴 것 같은 소녀는 마르타의 심경을 대변하는 것일 수도 있다. 물론 소녀는 그저 재빨리 부엌일을 하지 못해 할머니로부터 핀잔을 듣고 있는 중일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