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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내셔널 갤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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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로드 로랭

〈성 우르술라의 승선〉

요약 테이블
저작자 클로드 로랭(Claude Lorrain, 1600~1682)
제작시기 1641년

클로드 로랭은 푸생과 함께 17세기 프랑스 출신의 대표적인 풍경화가로 손꼽힌다. 두 사람 다 프랑스 출신이지만 이탈리아에서 머물면서 서로 교류를 하기도 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두 화가는 실제 풍경이라기보다는 자연을 재조합해 그린다는 점, 고전문화에 대한 깊은 애정을 표현하기 위해 주로 고대 건축물을 배경으로 한다는 점, 또 성서나 고전문학에서 따온 여러 일화들을 소개한다는 점에서는 비슷하다. 하지만 푸생의 풍경화가 눈이 아니라 정신으로 읽는 것이라면, 로랭은 철저하게 시각적 즐거움을 추구하였다는 점에서 큰 차이를 보인다.

로랭의 이름은 ‘로랭 지방 출신’이라는 의미에서 붙여졌다. 1617년 로마로 처음 건너갈 때 제빵기술자였던 그는 나폴리로 이주한 뒤 풍경화를 그리기 시작했고, 다시 로마로 돌아와 자신만의 독특한 화풍을 전개하면서 스페인 왕실을 비롯한 수많은 후원자들로부터 그림을 주문받는 국제적인 스타가 되었다.

클로드 로랭 〈성 우르술라의 승선〉

캔버스에 유채 / 113×149cm / 1641년 제작 / 내셔널 갤러리 20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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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바 여왕의 승선〉(윌리엄 터너 〈카르타고를 세우는 디도〉 외 항목 참조)과 거의 흡사한 구도로 그려진 〈성 우르술라의 승선〉에서 보듯이 그는 장엄한 풍경에 주로 고대 건축물을 그려 넣으면서도 빛과 색의 느낌을 잘 살려 대기의 변화를 신비롭게 펼쳐내는 이른바 ‘그림 같은 풍경’을 화폭에 담아냈다. 은은한 황금빛의 중간톤 색조, 안개 같은 몽환적인 그의 그림은 ‘픽처레스크(Picturesque) 회화(그림 같은 풍경 그림)’의 모범이 되었고, 후대 풍경화가들에게 큰 영향을 끼쳤다. 특히 영국에는 자신들의 정원을 로랭의 그림처럼 자연스럽고도 낭만적인 정서로 가득한 공간으로 꾸미는 이른바, ‘픽처레스크 정원’이 크게 유행하기도 했다.

성녀 우르술라는 4세기경 영국의 한 기독교 왕국 공주였는데, 이교도 왕자와 결혼을 앞두고 자신의 신앙을 견고하게 하기 위해 1만 1,000명의 처녀들을 거느리고 순례 여행을 떠났다. 로마까지 무사히 도착한 그녀와 일행은 마침내 고향으로 돌아오는 길에 쾰른에서 훈족의 공격을 받게 되었다. 당시 훈족의 왕 아틸라는 그녀의 미모에 반해 청혼했지만 거부당하자 그녀를 무참히 살해했다는 전설이 있다. 피로회복제로 유명한 어느 약품의 이름에서 연상되듯이 우르술라는 ‘작은 곰’을 의미하며, 강하다는 뜻을 가지고 있다. 이 그림 역시 성녀 우루술라가 순례를 위해 배에 오르는 일화를 소개하고 있지만 이 주제는 풍경을 위한 부수적인 장치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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