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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세상을 바꾼
다섯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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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항해를 촉발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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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후추, 의료용으로 쓰이다
  2. 금가루보다 비쌌던 중세의 후추
  3. 후추무역의 중심지, 베네치아
  4. 대항해시대
  5. 유럽인은 왜 비싼 향신료를 그토록 선호했을까?
  6. 후추 수입으로 떼돈을 벌다
  7. 역사를 바꾼 대항해의 시작
  8. 유럽을 깨운 향신료

후추, 의료용으로 쓰이다

후춧가루 등 향신료는 경제사에서 상상 이상의 중요성을 갖고 있다. 콜럼버스의 아메리카 대륙 발견, 바스코 다 가마(Vasco da Gama)의 인도항로 개발, 마젤란(Ferdinand Magellan)의 세계일주 등이 모두 후춧가루를 구하기 위한 것이었다. 당시 동양의 향신료가 부의 원천이었다. 이를 계기로 대항해가 시작되었다.

각종 향신료들

ⓒ 행성비 | 저작권자의 허가 없이 사용할 수 없습니다.

향신료의 역사는 인류의 역사와 그 시작을 같이했다. 향신료가 언급된 5천 년 전 수메르인의 두루마리가 발견되었다. 고대 이집트에서는 미라를 만들 때 방부 처리를 하려고 혼합 향신료를 사용했다고 한다.

인도에서는 기원전 3000년경부터 이미 후추와 정향 등 많은 향신료가 사용되었다. 이러한 향신료들은 살균력이 있어 재료 저장에 필수품이었다. 또한 부패를 방지하는 효능은 그 향기가 병마를 퇴치한다고 믿게 되어 향을 피워 사용하는 용도로 쓰는 경우도 많았다.

기원전 330년경 알렉산더 대왕(Alexander III)이 페르시아를 정복했을 때 다리우스 2세(Darius II)의 궁전에서 300명에 가까운 요리사와 향신료만을 담당하는 수많은 노예들을 보았다. 그 뒤 알렉산더 대왕이 인도의 인더스 강 유역까지 정복해 그때 동양의 향료가 유럽에 전해졌다. 특히 그는 원정 때 친구인 식물학자를 대동해 점령지의 많은 향신료를 수집하게 했다.

이후 후추를 유럽에 판매한 것은 아랍 상인들로 추정되는데, 이들은 다마스쿠스를 지나 홍해를 건너는 고대 향료길을 이용한 것 같다. 이렇게 해서 전래된 후추는 당시 그리스에서 요리용이 아닌 의료용, 그것도 대개 해독제로 쓰였다.

금가루보다 비쌌던 중세의 후추

유럽인들이 인도산 후추와 계피 등 향신료를 본격적으로 사용하기 시작한 것은 로마가 이집트를 정복한 뒤부터다. 인도에서 무역풍을 타고 인도양과 홍해를 거쳐 이집트에 오는 항로가 개발되었기 때문이다. 1세기에 유럽 수입품의 반 이상은 향신료였고 대부분은 인도에서 들여온 후추였다.

후추는 실크로드나 해로로 상업 중심지 호르무즈나 아덴에 옮겨진 후 그곳에서 다시 베네치아와 알렉산드리아로 운반되었다. 당시 후추는 너무 귀해 로마에 도착하면 같은 무게의 금과 가격이 같았다.

중세에 이슬람이 실크로드와 바닷길을 장악해 8세기경부터 지중해는 이슬람의 바다가 되었다. 그 뒤 향신료는 모두 아랍 상인의 손을 거쳐 공급됐다. 술탄이 과도한 관세를 부가해 더욱 비싸졌다. 게다가 이를 베네치아의 유대인 상인들이 아랍 상인들로부터 사서 막대한 이윤을 붙여 유럽 각지에 팔았다. 그러다 보니 후추의 소비자 가격은 금가루와 같았다. 그래서 금의 무게를 잴 때 후추가 사용되기도 했다. 매우 귀했기 때문에 화폐로 통용된 때도 있었다. 이쯤 되자 후춧가루는 베네치아를 제외하고는 유럽 각국에서 왕실의 전매품이 되었다.

후추무역의 중심지, 베네치아

중세에 아시아와 교역할 때 바그다드를 지나 흑해의 남부 해안을 경유해 콘스탄티노플에 이르는 경로를 이용했다. 향신료는 콘스탄티노플에서 항구도시 베네치아로 운반되었다. 15세기 말에 중세가 끝날 때까지 400년 동안 거의 모든 무역은 베네치아에서 이루어졌다.

6세기부터 베네치아는 인근 갯벌에서 생산한 소금을 갖고 동방무역을 시작했다. 당시 소금 역시 귀하고 비쌌다. 이후 베네치아는 수 세기 동안 동방무역으로 번영을 누렸다. 베네치아 상인들은 11세기 후반에 시작해 거의 200년간 진행된 십자군 원정 덕분에 세계 향료 시장에서 제왕의 지위를 공고히 할 수 있었다. 동방무역을 독점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베네치아 공화국은 서유럽에서 온 십자군에게 수송선, 전함, 무기, 자금을 직접 공급해서 바로 이득을 챙길 수 있었다.

유럽의 무역업자들은 향신료 특히 후추를 사려고 베네치아로 몰려들었다. 15세기 향료무역은 베네치아 상인들의 독점으로 다른 나라들이 비집고 들어갈 틈이 없었으며 베네치아 상인들이 챙긴 이윤은 어마어마했다.

대항해시대

다른 나라들은 인도에 갈 수 있는 새로운 길 특히 아프리카를 빙 둘러가는 바닷길의 개척 가능성을 진지하게 검토하기 시작했다. 포르투갈 왕 주앙 1세(John I)의 아들 엔리케 왕자(Infante Dom Henrique)는 해양학교를 설립해 운영하면서 크고 튼튼한 상선을 대규모로 만들어 선단을 조직했다. 바야흐로 대항해시대의 시작이었다.

리스본 타호 강변에 있는 발견 기념비

맨 앞이 엔리케 왕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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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세기 중반 포르투갈 탐험가들은 아프리카 서해안의 베르데 곶까지 내려가서 콩고 강 어귀까지 도달했다. 4년 뒤인 1487년 포르투갈 항해가 바르톨로뮤 디아스(Bartolomeu Diaz)는 희망봉을 돌았다. 2년 뒤 1498년에는 포르투갈 탐험가 바스코 다 가마는 디아스가 개척한 항로를 따라 인도에 도착했다.

인도 남서 해안을 다스리고 있던 캘리컷 지역의 지배자는 후추열매를 주고 금을 받기를 원했다. 세계 후추무역을 지배할 꿈에 부풀어 있던 포르투갈인들은 후추를 사기 위해 금이 필요할 줄 꿈에도 몰랐다. 5년 뒤 총과 군대로 무장한 바스코 다 가마는 캘리컷을 정복해 후추무역을 포르투갈의 지배하에 두었다. 이것이 포르투갈제국의 시작이었다. 이로써 후추교역에서 포르투갈시대가 전개된다. 이후 포르투갈제국의 영토는 아프리카를 포함해 동쪽으로 인도와 인도네시아에 이르렀고 서쪽으로 브라질에 이르렀다.

스페인도 향료무역 특히 후추에 관심을 두고 있었다. 1492년 크리스토퍼 콜럼버스는 서쪽으로 항해하면 인도에 도달하는 더 짧은 항로를 찾을 수 있을 거라 확신하고 스페인의 이사벨라 여왕(Isabella I)을 설득해서 재정지원을 받았다. 이후 콜럼버스는 신대륙을 발견한다.

이렇듯 후추는 베네치아를 거대한 도시국가로 만들었고 대항해시대를 주도했으며 콜럼버스가 신대륙을 찾아 나서도록 했다.

유럽인은 왜 비싼 향신료를 그토록 선호했을까?

당시는 냉장고가 없던 시대라 주식이 빵과 감자 그리고 소금에 절인 저장육과 생선 정도였다. 소금에 절인 염장식품에 신물이 난 귀족과 세도가들은 후춧가루를 친 신선한 스테이크를 좋아했다. 또 맛없는 음식에 정향이나 육두구 같은 향료를 넣으면 맛있게 먹을 수 있었다. 당시 육두구는 후추보다도 비싼 아주 귀한 재료였다. 영어 이름 ‘너트맥(nutmeg)’은 사향 향기가 나는 호두라는 뜻이다. 고기음식을 즐기는 서구인들은 고기 비린내를 제거하고 육류를 저장하는 데 향료를 사용했다. 또한 서양인들은 육식을 많이 해 몸에서 나는 체취가 문제였다. 이것이 조미료의 강한 향기를 요구하는 요인이기도 했다.

육두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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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료는 음식의 풍미를 더하는 데 머물지 않고 성욕을 돋우는 강장제와 의약품으로 여겨졌다. 특히 전염병을 예방하는 살균효과가 있다고 알려져 부유층들이 앞다투어 샀다. 전염병이 돌 때는 후추가 악취를 없애고 소독하는 약품으로도 쓰였다.

후추 수입으로 떼돈을 벌다

후추는 로마시대부터 귀하게 여겨져 은제 항아리에 넣어 소중하게 다뤘다. 인도 남부에서 생산되는 후추는 유럽 귀족의 입맛을 완전히 바꿨다. 중세 게르만 사회에서는 세금이나 관료의 급료, 땅의 매매나 임대, 결혼 지참금 등에 후추가 쓰였다.

후추는 열대성식물이라 유럽에서는 재배가 어려워 동서무역을 하는 대상들로부터 비싼 값에 사들일 수밖에 없었다. 대상들은 동양으로부터 후추를 사들여 비싼 값에 되파는 중개무역으로 큰 부를 쌓았다.

후추가 이처럼 귀하고 비싸지자 사람들은 대상을 거치지 않고 목숨을 건 모험을 감행했다. 당시 인도 현지에서 산 향신료를 싣고 배가 무사히 돌아오면 보통 100배 이상의 시세차익을 보았다. 선장과 선원들은 고향에서 영웅이 됐고, 항해에 자금을 댄 상인들은 떼돈을 벌었다.

역사를 바꾼 대항해의 시작

14세기 초 동서교통로를 보호해주던 원나라의 힘이 약해진 틈을 타 오스만제국이 발흥해 유럽과 동방의 무역로를 차단했다. 그러자 유럽에서 후추 가격이 폭등했다. 생산지 가격의 100배는 보통이고 육두구의 경우 600배까지 치솟았다. 동양의 향신료만 얻을 수 있으면 그야말로 대박이었다. 그러자 유럽 각국들은 동방 향료를 구하기 위해 혈안이 되었다. 인도로 가는 새로운 항로 개척이 시급해진 것이다.

지리상의 발견이 시작된 것도 바로 후추를 구하기 위해서였다. 향신료무역을 이슬람을 통하지 않고 직접 하려고 시도한 것이 스페인과 포르투갈의 대항해였다. 그 촉발제는 마르코 폴로의 《동방견문록》이었다. 이 책이 《성경》 다음의 베스트셀러였다. 그만큼 당시 사람들은 동방에 대한 관심이 지대했다.

마르코 폴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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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에는 향신료 산지에 대한 기록이 자세히 적혀 있었다. “중국보다 동쪽에 황금의 나라가 있다. 그곳 사람들은 후추를 물 쓰듯 한다”는 대목을 읽은 유럽인들의 눈은 휘둥그레졌다. 황금과 후추가 그렇게 흔하다니 모험가들이 몸이 달아오를 수밖에 없었다. 마르코 폴로는 항저우 시 하루 후춧가루 소비량이 4,740킬로그램이나 된다고 그 놀라움을 적었다. 《동방견문록》에는 과장되거나 불확실한 부분도 있으나, 베네치아 상인답게 향신료 산지에 대한 기록은 비교적 정확히 남겼다. 이렇게 되자 신항로 개척의 필요성은 한층 절실해졌다.

스페인과 포르투갈의 향신료 획득전쟁에서 결국 항로를 동쪽으로 향한 포르투갈이 서쪽으로 향한 스페인을 이기고 무역권을 독점하게 된다. 그들은 인도의 고아에 식민기지를 마련하고 말라카 왕국과 향료의 주산지인 몰루카 제도를 점령해 단번에 향료무역을 독점했다. 반면 항로를 서쪽으로 잘못 잡은 스페인은 신대륙을 발견했다. 콜럼버스는 지구가 둥글다고 믿었기 때문에 서쪽으로 가도 인도에 도달할 수 있다고 믿었다. 그 역시 후춧가루를 찾아 나섰던 사람이다.

포르투갈 사람들이 구한 향료는 인도 말라바르 해안의 후추와 스리랑카의 계피를 비롯해 몰루카 제도의 정향, 반다 섬의 육두구 등이었다. 포르투갈이 가져간 향료가 큰 인기를 끌고 엄청난 이윤을 내자 네덜란드와 영국도 동인도회사를 속속 설립해 향료무역에 뛰어들었다. 유럽의 발전은 후추가 이끈 셈이다.

유럽을 깨운 향신료

십자군 전쟁을 일으킨 교황 우르바노 2세(Urbanus II)는 검소한 교황이었지만 육식을 즐겼다. 이슬람의 세력 확대로 지중해 동쪽이 이슬람에 넘어가자 후추 수입에도 큰 타격이 있어 품귀 현상이 일고 값도 엄청나게 올랐다. 어쩌면 교황이 십자군 전쟁을 일으킨 이유가 성지 탈환 뿐 아니라 후춧가루에도 그 원인이 있을지 모른다. 종교 이념이 지배하고 육체와 감각이 천시되었던 중세 유럽의 어둠을 향신료가 깨우기 시작했다.

중국의 정화 함대가 서양과 비교할 수 없는 대함대를 이끌고 먼저 세계를 누볐다. 하지만 당시 중국 왕조는 지방의 토호 세력들이 그 무렵 막강했던 해상 세력과 손잡고 반란을 일으킬 것을 우려해 해금령을 내렸다. 일절 바다 출입을 금한 것이다. 게다가 모든 배를 파괴하고 불살라버렸다. 섬에 사는 사람들도 모두 육지로 불러들여 섬들을 모두 무인도로 만들었다. 조선도 해금령에 동참했다. 이로써 동양은 바다와 벽을 쌓고 동양의 시대는 막을 내렸다.

이를 계기로 서양의 대항해가 세계의 해상무역을 주도하게 되고 서양이 동양을 추월하게 된다. 세계사에서는 이를 기점으로 중세와 근대를 나눈다. 세계사적으로 대변혁기였던 시기, 육류를 즐긴 서양의 향신료에 대한 욕구가 서서히 유럽을 깨우기 시작해 세계사의 운명을 바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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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익희 집필자 소개

한국외국어대학교 스페인어과 졸업. 1978년 KOTRA에 입사. 보고타, 상파울루, 마드리드 무역관을 거쳤다. 배재대학에서 유대인의 창의성과 서비스산업에 대해 가르친다. 지은 책으로는 《21세기..

출처

세상을 바꾼 다섯가지 상품 이야기
세상을 바꾼 다섯가지 상품 이야기 | 저자홍익희 | cp명행성비 도서 소개

소금, 모피, 보석, 향신료, 석유의 공통점은 의식주와 연관된 것으로, 대부분 살아가는 데 필수불가결한 것들이다. 인류의 삶이 좀 더 풍요로워지고 문명이 발달하는 데 영향을 끼친 상품들의 과거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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