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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 殿試문제는 시험 당일에 왕이 자리에 앉은 뒤 독권관이 내는 것이 관례였으나 연산군 이후로는 시험 하루 전에 출제하도록 바뀌었다. 시험보는 날에는 문과전시의(文科殿試儀)를 거행한 뒤 시험으로 들어갔다. 무과전시의 고시 과목은 처음에는 기격구(騎擊毬)·보격구(步擊毬)였으나 뒤에는 11기(技) 중 1∼2기를 시험보도...
- 시대 :
- 조선
- 성격 :
- 시험
- 유형 :
- 제도
- 분야 :
- 역사/조선시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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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묘삼월 문무과전시방목 신묘전시방목(辛卯殿試榜目), 辛卯三月 文武科殿試榜目두 장의 표지를 각각 앞뒷면에 대어 끈으로 꿰맨 선장본(線装本)으로 만들어졌다. 1책으로 이루어졌으며, 총 6장이다. 표제는 '신묘전시방목(辛卯殿試榜目)'이다. 문과전시방(文科殿試榜)에서는 문과 급제자 김흔 등 9명을, 무과방(武科榜)에서 무과 급제자 17명의 명단을 순서대로 수록하였다. 명단 뒤에는 조빈이 작성...
- 시대 :
- 조선 전기
- 유형 :
- 문헌/문서
- 분야 :
- 역사/조선시대사
도서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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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공거 좌주(座主), 知貢擧독권관(讀券官)으로 삼았는데, 이는 친시에서 왕이 지공거가 되었기 때문이다. 다만 독권관의 사례는 이때를 제외하고 보이지 않는다. 친시는 복시(覆試), 전시(殿試)라고도 하는데, 예부시로 선발한 급제자들을 국왕이 재심하는 형식이다. 이것은 지공거가 관장한 시험에 국왕이 개입하여 시관을 견제하는 동시에...
- 시대 :
- 고려
- 유형 :
- 제도/관직
- 분야 :
- 역사/고려시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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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시 회시(會試), 覆試고려시대 과거는 초시나 전시 없이 한 단계의 시험으로 최종 합격자를 가렸는데, 이 시험을 예부시(禮部試)라고 불렀다. 조선시대에서는 초시(初試)와 전시(殿試) 제도를 도입하여 시험이 두 단계 혹은 세 단계로 늘어났는데, 두 번째 단계에 시행하는 시험을 복시(覆試) 또는 회시(會試)라고 불렀다. 복시(覆試)라는...
- 시대 :
- 조선
- 유형 :
- 제도/법령·제도
- 분야 :
- 역사/조선시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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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성시 알성과, 謁聖試극히 짧아 응시자들이 충분한 실력을 발휘할 수 없었고, 시관은 과차(科次)에 정밀을 기할 수 없었다. 또, 즉일방방(卽日放榜)하여 시관의 수도 다른 전시(殿試)에 비해 훨씬 많았다.『속대전( 續大典)』에는 그 시관의 수를 독권관(讀卷官) 10인, 대독관(對讀官) 20인으로 정하고 있다. 과목은 매우 간단해 책(策)·표...
- 시대 :
- 조선
- 성격 :
- 과거, 인사, 관리선발제도
- 유형 :
- 제도
- 시행일 :
- 1414년(태종 14)
- 분야 :
- 역사/조선시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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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과 道科보고 그곳에서 방방(放榜)하는 경우와 어사를 보내어 시권(試券)을 거두어와서 서울에서 대제학으로 하여금 고열(考閱)하게 하는 경우가 있다. 합격자는 전시(殿試)에 직부(直赴)하게 하여 급제를 하사하였으며, 초시는 설행(設行)하지 않았다. 이때 전시의 시험방법은 주로 부 1편을 부과하였으며, 부의 시제는 순수...
- 시대 :
- 조선
- 성격 :
- 과거, 관리등용제도
- 유형 :
- 제도
- 시행일 :
- 조선시대
- 분야 :
- 역사/조선시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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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설 순명(舜命), 李偰점차 득세하고 척화(斥和)를 주장하는 사람들이 죄를 입게 되자, 1878년 화친을 주장하는 것은 매국하는 것이라는 내용의 상소를 올렸다. 1889년 전시(殿試)에 급제하여 홍문관 부수찬에 임명되고, 이듬해 4월 신정왕후(神貞王后)의 곡반(哭班: 國喪 때 곡을 하던 벼슬아치의 반열)에 나아가 교리·사간원정언을 역임...
- 시대 :
- 근대
- 출생 :
- 1850년(철종 1)
- 사망 :
- 1906년
- 경력 :
- 사헌부지평, 교리, 응교
- 유형 :
- 인물
- 관련 사건 :
- 제1차 홍주의거
- 직업 :
- 문신
- 성별 :
- 남
- 분야 :
- 역사/근대사
- 본관 :
- 연안(延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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