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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문왕 일초(日招), 神文王
    신문왕은 남북국시대 통일신라의 제31대 왕이다. 재위 기간은 681~692년이며 문무왕의 장자이다. 즉위하던 해에 일어난 귀족세력의 반란을 진압하고 철저히 숙청함으로써 왕권을 공고히 했다. 이를 바탕으로 중앙관제의 정비, 5소경제와 9주 및 군현제의 완성 등 지방통치체제 정비를 통해 전제왕권 중심의 통치질서를 ...
    유형 :
    인물/전통 인물
    분야 :
    역사/고대사
  • 신라 31대 왕, 신문왕 神文王
    신라 제31대 왕. 문무왕의 장자로 이름은 정명 또는 명지, 자는 일초. 재위 초반인 681년에 김흠돌 등의 모반을 평정하고 귀족들에 대한 대규모 숙청을 단행하여 절대왕권을 확립했고, 국학을 세워 유교적 정치 질서를 수립했으며 관리제도를 정비했다. 지방통치제도도 9주5소경으로 개편했다. 이러한 정책 기조 위에서 ...
    출생 :
    미상
    사망 :
    692(신문왕 12)
    국적 :
    신라, 한국
    종교 :
    불교
    재위 :
    681년∼692년
    능묘 :
    경주 신문왕릉(慶州 神文王陵)
    도서 다음백과 | 태그 한국인물 , , 한국사
  • 신문왕 Sinmun of Silla, 神文王
    왕 정보 신문왕 ~ 692년 8월 22일(음력 7월 2일, 율리우스력 8월 19일))은 신라의 제31대 왕이다. 김(金)이고, 휘는 정명(政明)이며, 자는 일초(日怊) 혹은 일소(日炤)이다. 문무왕(文武王)의 차남이며, 어머니는 자의왕후 김씨(慈儀王后 金氏)이다. 665년 8월 태자에 책봉되었고, 음력 7월 2일에 선왕(문무왕)이 사망한...
    도서 위키백과
  • Sinmun of Silla 신문왕, 神文王
    Sinmun of Silla (r. 681–692) was the thirty-first king of Silla, a Korean state that originated in the southwestern Korean peninsula and went on to unify most of the peninsula under its rule in the mid 7th century. He was the eldest son of Silla's unifier-king, Munmu and Queen Jaeui. Sinmun's re...
  • 통일신라 시대의 정치 전개와 쇠퇴
    한풀 꺾였고, 이후 설인귀 함대가 천성(泉城)을 함락하는 데 실패하면서 신라가 승리를 거뒀다. 통일신라의 새로운 서막 문무왕이 재위 21년 만에 죽자 신문왕이 왕위에 올랐다. 삼국통일 전쟁과 대당 전쟁을 치른 직후에 즉위한 신문왕은 문무왕의 유조에 따라 정국을 안정시키고, 국가 체제 정비를 시작하려고 하였다...
  • 신라 31대 신문왕 즉위
    삼국 통일을 완성한 30대 문무왕이 죽고 그의 아들인 김정명이 신문왕(재위 681년~692년)이 되어 왕위에 올랐다. 국학을 창설해 학문을 장려하고 9주를 정비하며 귀족들의 녹읍을 폐지하는 등 삼국 통일 이후의 체제 정비와 왕권 강화에 힘쓴 왕이다. 참조
    시대 :
    681년
    재위 :
    681년~692년
    국가/대륙 :
    한국
  • 통일신라의 경제
    군현에 묶어 지급하였을 가능성이 크며 매우 낮은 직급의 관리들에게는 녹읍을 지급하지 않고 일정한 곡물을 지급하였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그러나 신문왕은 9년(689), 이 녹읍을 폐지하고 월봉(月俸)을 지급하였다. 그런데 신문왕은 녹읍을 폐지하기 2년 전(687)에 관료들에게 관료전을 차등있게 지급하기도...
  • 후신라의 정치 변동
    맞이하여 권력을 강화했다. 하지만 무열왕과 문무왕의 가장 큰 지지세력이던 가야계 김씨세력은 673년 김유신이 죽은 후 크게 몰락했다. 이후 문무왕의 아들 신문왕은 681년 외척 김흠돌의 반란을 진압하여 보다 강력한 왕권을 확립했다. 신문왕은 684년 고구려 유민들이 세운 보덕국을 완전히 해체하고, 685년과 689년...
    시대 :
    676년~8세기
  • 통일신라
    삼국통일 후 신라는 9주 5소경을 설치하고 고도의 중앙 집권 체계를 확립하였다. 집사부 장관인 시중의 권한이 강화되어 왕권의 전제화가 실현되었다. 신문왕은 녹읍을 폐지하였으며, 유학 교육을 위해 국학을 설립하였다. 진골 귀족과 대결 세력이었던 득난세력(6두품)이 왕권과 결탁하여 상대적으로 부각되었으나...
    도서 다음백과 | 태그 한국사 , 통일신라
  • 경주 신문왕릉
    신라 31대 신문왕(재위 681~692)의 무덤이다. 신문왕(681~692년)은 삼국통일의 대업을 이룬 문무왕의 아들로 귀족들의 반란을 진압하고 신라 중대의 전제왕권을 확고히 했다. 또, 국립교육기관인 국학을 설립하고, 지방통치를 위해 9주5소경 제도를 설치하였고, 고구려·백제·말갈인을 포함한 중앙 군사조직인 9서당을...
    위치 :
    경상북도 경주시 배반동 453-1
    문화재 지정 :
    [경주 신문왕릉] 사적 제181호(1969.08.27 지정)
  • 달구벌 천도 계획 達句伐 遷都 計劃
    역사적 배경 신문왕은 진골귀족세력을 대표하는 김흠돌(金欽突)의 난을 진압한 후 전제정치를 뒷받침하는 정치 · 군사제도를 정비하였다. 681년 10월에 시위부(侍衛府)를 개편하여 장군 6명을 두었고, 이어 국왕의 직속부대인 9서당(九誓幢)을 설치하였다. 682년에는 국학(國學)을 설치하여 관료의 양성을 통해 왕권의...
    시대 :
    고대/남북국/통일신라
    유형 :
    사건
    분야 :
    역사/고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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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신라 신문왕릉 좌측면
경주 신라 신문왕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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