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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선왕조실록과 사고(史庫) 朝鮮王朝實錄
    좌절되고 말았다. 이처럼 조선왕조실록은 외국의 실록에 비해 상대적으로 공정하게 기술되었다는 점에서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완성된 실록은 4곳의 사고(史庫)에 각각 1부씩 보관하였다. 조일전쟁과 조만전쟁을 치르면서 많은 실록이 소실되기도 했지만 그때마다 다시 만들어 보존하였다. 특히 조일전쟁 때는 서울...
    시대 :
    1392년~1863년
  • 사고 사각(史閣), 史庫
    내용 사고(史庫)는 사각(史閣)이라고도 한다. 고려시대에는 국초부터 실록(實錄)을 편찬했으나 거란의 침입으로 모두 소실되었다. 이에 고종은 1227년(고종 14)에 『명종실록(明宗實錄)』을 완성하여 한 질은 개경의 사관(史館)에 보관하고 다른 한 질은 해인사(海印寺)에 보관하였다. 고려 조정은 1270년(원종 11...
    시대 :
    고려
    유형 :
    제도/법령·제도
    분야 :
    역사/조선시대사
  • 전주사고 全州史庫
    뒤, 보현사의 전주사고본 실록을 다시 영변의 객사로 옮겨두었고, 1603년 5월에는 등서(謄書)와 재인(再印)의 편의를 위해 다시 강화도로 옮겼다. 임란 후, 전주사고본 실록과 이를 바탕으로 재 인쇄된 4질을 합한 5질의 실록을 봉안하기 위한 5사고가 정비되나 전주사고는 계승 복구되지 못하였다. →사고(史庫) 참고문헌
    유형 :
    제도
    분야 :
    역사/조선시대사
  • 충주사고 忠州史庫
    내용 충주사고(忠州史庫)는 충청북도 충주시 동량면 하천리에 설치되었던 고려 말 · 조선 전기의 서고(書庫)이다. 충주사고가 고려시대에 처음 설치된 것은 왜구의 침입에 대한 염려 때문이었다. 1379년(우왕 5) 9월 왜구가 단계(丹溪) · 거창 · 합천 등지까지 침입해 오자 해인사(海印寺)의 역대 실록을 선산의...
    시대 :
    고려 , 조선
    유형 :
    제도/법령·제도
    분야 :
    역사/고려시대사 , 역사/조선시대사
  • 사고 사각, 史庫
    경우가 많아 후기부터는 전쟁의 피해를 입지 않을 만한 안전한 장소에 이를 보관하고자 했다. 조선에서도 이를 계승하여 초기부터 충주와 서울의 춘추관에 사고를 두었다. 1439년(세종 21년)에 경상도의 성주, 전라도의 전주에 새로 사고를 증치했다. 〈세종실록〉 이후의 실록은 모두 활자로 출판하여 이 4사고에 1부씩...
    도서 다음백과 | 태그 조선
  • 성주사고 星州史庫
    내용 성주사고는 조선 전기에 실록(實錄)을 비롯한 국가의 주요한 역사 기록물을 보관 · 관리하던 외사고(外史庫)의 하나이다. 성주에 외사고가 설치된 것은 1439년(세종 21)의 일이었다. 이해 6월 사헌부가 상소한 사적(史籍) 분장지책(分藏之策)의 건의에 따라, 한 달 뒤인 7월 춘추관에서 성주와 전주에 사고를 설치...
    시대 :
    조선
    유형 :
    제도/법령·제도
    분야 :
    역사/조선시대사
  • 전주사고 全州史庫
    건의로 지금의 전라북도 전주시에 있던 경기전 안에 설치되었다. 처음에 실록들을 여러 차례 옮겨 보관하다가, 1445년 12월 서울 춘추관, 충주·전주·성주 사고에 각 1부씩 봉안하게 했다. 따라서 세종실록부터 편찬할 때마다 주자로 인쇄하여 각 사고에 1부씩 보관하도록 했다.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이 일어나...
    도서 다음백과 | 태그 조선
  • 오대산 사고사 五臺山 史庫寺
    묘향산·태백산·강화도 등과 함께 이 오대산에 사고를 지었던 것이다. 1717년(숙종 43) 당시에 사고의 운영에 관한 응원(應元) 등의 상소문이 『사고절목(史庫節目)』 속에 남아 있는데, 그에 따르면 사고에는 화재의 위험이 따르기 때문에 봄·가을로 20명씩 수직(守直)을 세워야 한다는 것과 그들에 대한 처우가 개선...
    시대 :
    조선
    유형 :
    유적
    분야 :
    종교·철학/불교
  • 사고사 史庫寺
    4교구 본사인 월정사의 말사이다. 임진왜란 때 실록을 나누어 보관할 것을 결정한 뒤에 원래 영감사라는 절이 있던 자리에 세워졌다. 이곳에 봉안되었던 실록은 일제강점기에 일본인들에 의해 반출되고 현재는 페허가 된 사고의 터만 남아 있다. 1961년 절을 중건해 오늘에 이르고 있는데 당우로는 원통전과 요사채뿐이다.
    도서 다음백과 | 태그 강원도
  • 태백산사고 太白山史庫
    1930년 규장각도서와 함께 경성제국대학(京城帝國大學)으로 이장(移藏)하였다. 국사편찬위원회에서는 1955년부터 1958년까지 이 태백산사고본 실록을 저본으로 해 축쇄영인본 48책을 간행해 학계에 보급하였다. 그 뒤 태백산사고본 실록은 1985년 3월 부산의 정부기록보존소에 옮겨져 보존되고 있다. →사고(史庫) 참고문헌
    시대 :
    조선
    유형 :
    제도
    분야 :
    역사/조선시대사
  • 마니산사고 摩尼山史庫
    내용 본래 강화부 봉선전(奉先殿) 서쪽에 있던 사고(史庫)를 1606년(선조 39) 마니산 기슭 덕포리로 옮겨 설치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마니산사고가 설치된 경위는 다음과 같다. 1593년 7월 임진왜란의 병화를 피해 내장산의 암자에 보관되고 있던 전주사고본 실록을 접수한 조정은 이를 『선원보(璿源譜)』 등의 자료와...
    시대 :
    조선
    유형 :
    제도/법령·제도
    분야 :
    역사/조선시대사
  • 적상산사고 赤裳山史庫
    舊皇室文庫)로 편입해 장서각에 보관시켰다. 그러나 산질(散秩)이 많이 생겨나게 되었고, 그 뒤 6 · 25전쟁 중에 분실되어버렸다. 실록전과 선원각의 건물이 언제 어떻게 없어졌는지는 자세히 알 수 없다. 다만, 선원각은 부근 안국사(安國寺) 경내로 옮겨져 천불전(千佛殿)으로 전해오고 있다. →사고(史庫) 참고문헌
    시대 :
    조선
    유형 :
    제도
    분야 :
    역사/조선시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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