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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뒤주
    곡식을 저장하기 위한 주방용 가구.|담기는 곡식에 따라 쌀뒤주와 잡곡뒤주로 그 종류가 나뉘며, 크기도 쌀뒤주가 1~2가마들이로서 큰 반면, 잡곡뒤주는 훨씬 작다. 뚜껑은 천판의 앞쪽 반이 경첩없이 열리는 분리식이며, 높이는 일정하지 않으나 곡식을 퍼내고 담기에 편한 1m 내외가 보통이다. 또한 수장공간을 지면...
    도서 다음백과 | 태그 물품
  • 뒤주
    나무로 만든 곡식을 담는 궤(櫃).|내용 통나무로 만들거나 널빤지를 짜서 만든다. 통나무로 만드는 것은 밑동과 머리에 따로 널빤지를 대어 막고, 머리 부분의 한쪽을 열도록 문짝을 달아 낟알을 넣거나 퍼낸다. 널빤지를 짜서 만드는 뒤주는 네 기둥을 세우고 벽과 바닥을 널빤지로 마감하여 공간을 형성하고 머리에 ...
    유형 :
    물품
    분야 :
    생활/주생활
  • 뒤주
    뒤주는 쌀 등의 곡식을 담아 두는 나무로 만든 궤로 세간의 하나다. 곡식이 습기나 쥐, 해충의 피해를 입지 않도록 바람이 잘 통하는 통나무나 널빤지로 짜서 튼튼하게 만든다. 뒤주의 재료로는 회화나무가 가장 좋고, 무쇠나 놋쇠로 장식하기도 한다. 쌀뒤주는 보통 쌀 1∼2가마, 잡곡뒤주는 3-4말 정도가 들어가는 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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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뒤주 (영화)
    영화 정보 뒤주는 2024년 개봉 예정인 대한민국의 미스터리, 공포 영화로, 김지운 연출을 맡았다. 작가로서의 성공과 정교수가 되길 원하는 아진과 그녀의 제자이자 대학원생인 현아와 우수는 한번 갇히면 죽기 전까지 나올 수 없는 유목민들의 감옥 ‘뒤주’ 전시프로젝트 맡게 된다. 저주가 걸렸다는 이야기는 뒤로 한...
    도서 위키백과
  • 뒤주설화 미궤설화
    계략을 써서 관리를 유혹하고는 자기 집으로 오게 하였다. 주연을 파하고 동침하려는데 여자의 남편이라는 사람이 찾아오자 여자는 당황한 척하면서 관리를 뒤주에 숨겼다. 남편은 현재 별거중이지만 자기 소유물인 뒤주를 가지러 왔다면서 운반해 가려고 하였다. 기생이 강하게 반대하자 결국 원님에게 가서 판결을...
    저작자 :
    미상
    성격 :
    설화
    유형 :
    작품
    분야 :
    문학/구비문학
  • 장화리 쌀뒤주 長華里 쌀뒤주
    내용 1976년 전라북도 민속문화재(현, 전북특별자치도 민속문화유산)로 지정되었다. 장화리 뒤주는 쌀을 저장해 두던 용구로서, 1864년(고종 1) 정준섭(鄭峻燮)이 제작하였다. 전북특별자치도 김제시 장화동 210-1(后長마을)에 있으며, 정종수(鄭鍾洙)가 소유하고 있다. 가로와 세로는 각각 210㎝로 정방형이며, 높이는...
    유형 :
    유적
    분야 :
    생활/주생활
  • 나락뒤주 나락두지
    한 귀퉁이에 세우고 나락을 갈무리하는데, 겨우내 조금씩 꺼내므로 봄이 되면 자연히 철거하게 된다. 곳간과 같은 수장공간이 부족한 집에서 세우는 임시 뒤주인 것이다. 근래에 와서는 쥐의 피해를 막기 위하여 함석판으로 만들기도 한다. ② 나락을 갈무리하기 위하여 한 칸 내지 서너 칸의 독립건물을 짓기도 한다...
    유형 :
    물품
    분야 :
    생활/주생활
  • 뒤주대왕신 ─大王神
    비극적인 죽음을 당하였던 사도세자(思悼世子, 莊憲世子)를 신격화한 것이다. 영조는 1762년 윤5월 13일에 창경궁 휘녕전(徽寧殿) 앞뜰에서 사도세자를 뒤주 속에 넣은 뒤 궁중 한 모퉁이에 방치하여 7일 만에 굶겨 죽였는데, 이 때문에 사도세자에게 뒤주대왕이라는 별칭이 붙여졌다. 그는 왕세자로서 당연히 왕의 지위...
    유형 :
    개념용어
    분야 :
    종교·철학/민간신앙
  • 융릉 장조와 현경왕후의 능
    칼을 들고 자결을 재촉하자 사도세자는 부모 앞에서 자결하는 것이 효에 어긋난다고 항변했고, 영조는 당시 11세였던 정조가 지켜보는 가운데 사도세자를 뒤주 속에 가두어 죽게 했다. 그런 후 사도(세자를 생각하며 추도한다)라는 시호를 내리고, 나라의 앞날을 위해 그것이 부득이한 조치였음을 내외에 알렸다. 흔히들...
  • 사도세자 장조, 思悼世子
    잃고 애간장이 끊어지지 않겠는가. 그런데 조선 왕실에서는 그런 고통스러운 슬픔을 스스로 실행한 임금이 있다. 조선의 최장수 임금 영조가 아들 사도세자를 뒤주 속에 가두어 죽인 임오화변이 바로 그것이다. 한데 이 비극적인 사건 이후 뒤늦게 자신이 무슨 짓을 저질렀는지를 깨달은 영조는 죽은 아들에게 ‘사도...
  • 사도세자사건 임오옥(壬午獄), 思悼世子事件
    儀) 등의 부자간의 이간책 등이 작용하였음을 지적할 수 있겠다. 이러한 일들로 인해 영조는 세자를 폐하여 서인으로 하고, 세자와 영빈의 간청에도 불구하고 뒤주에 가두어 죽게 하였다. 영조가 뒤에 이를 후회하고 사도(思悼)라는 시호를 내린 것으로 보아 사건의 계기가 된 부자간의 불신과 이간은 노소론의 당쟁에서...
    시대 :
    조선
    유형 :
    사건
    분야 :
    역사/조선시대사
  • 뒤주
    강남구 압구정동에 있던 마을로서, 압구정 아래에서 정자를 등지고 있었던 데서 마을 이름이 유래되었다.
    유형 :
    동명
    도서 서울지명사전 | 태그 서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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